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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산티아고순례길 야고보(산티아고)와 까미노 프란체스

별이 인도하는 길

윤창영( ycy6529@hanmail.net) 2024.01.05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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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대성당 뒷편으로 주변에 음식점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다.>

 

하나를 놓아 아라한 탄생하리

둘을 버리면 보살이 선하리

셋 다 떨쳐 부처가 되리

깨달음에 피어나는 길의 순례자여

     *불교의 탐진치 3독에 대한 이해를 통해 순례자로서의 의무를 다해야 함을 표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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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시의 프란치스코성당으로 산티아고대성당 왼쪽길로 200여미터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 있다. 성당 입구에는 아시시의 성프란치스코 동상이 세워져 있다.>

 

2019년, 문규현 신부님과의 재회!

문 신부님과의 인연이 다시 이어질 줄은 상상도 못했다.

나는 학생 시절 조용한 성격이었기에, 신부님이 나를 기억하고 계실 줄은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사단법인 생명평화마중물의 사무국장과 이사장으로서 신부님과 매우 가까운 관계로 이어졌다.

우리의 만남은 사소한 대화로부터 시작됐다.

최근 근황을 나누는 것으로 시작해, 삶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회칙을 알고 있니?”

신부님의 질문에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감을 못 잡았다.

학교 시절에 배웠던 내용이었지만 머릿속에서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산다는 것은 되어간다는 것!“

우리는 되어 가야 함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나는 무엇이 되어가고 있을까? 천사로 되어 가고 싶은데! 삶은 나를 괴물로 만들어가는 것은 아닌지!'

잠깐 생각해 본다.

 

 신부님은 또 탐(貪), 진(瞋), 치(痴)를 경계해야 한다고 하셨다.

탐은 정신적이고 물질적인 욕망과 욕심을 의미하며, 탐으로 인해 타인을 착취하고 자신만을 위한 삶을 살아간다. 진은 분노와 노여움을 나타내며, 이러한 감정 역시 극복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설명하셨다.

신부님은 특히 치에 대해 경계할 것을 강조하셨다.

치는 어리석음과 무지를 나타내며, 우리는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을 소홀히 하는 것도 어리석음이라고 하셨다.

나는 이제 한 명의 순례자로 성장해야 한다. 순례자로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대한 공부를 해야 한다. 치독(痴毒)을 이기기 위해 순례길을 배워야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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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대성당 지하에 야고보 성인의 무덤이 있다. 지하공간에 참배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 놨으며, 항상 사람들로 붐빈다. 코덱스 칼릭스티누스에 기록된 내용에는 전대사(모든 죄의 사함을 받음)를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야고보의 무덤을 참배해야만 한다고 쓰여 있다. 장종혁 회장님께 야고보의 무덤 위치를 알려드렸으나, 그 분은 여기에 가지 않았다. 기복적인 내용을 무척 싫어하시나 보다. 나는 당시 이탈리아사람 프레도의 도움을 받아 개방 전 시간대에 들어갈 수 있었다.>

 

▸예수님 제자 가운데 최초의 순교자인 야고보의 무덤으로 가는 길

산티아고 순례길은 9세기(813년)에 스페인 갈리시아 들판에서 은둔 수행자 펠라요가 천사의 목소리가 인도하는 빛나는 별 아래에서 산티아고(대 야고보)의 무덤을 발견한 것에서 시작됐다.

오늘날 그 장소는 '별이 빛나는 들판의 산티아고'라는 뜻으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불린다.

야고보는 '세상 끝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현재의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위치한 이베리아 반도에서 복음을 전파했다.

복음 전파를 마치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자, 유대왕 헤로데의 손자인 아그리파 1세에게 잡혀 44년 7월 25일에 12제자 가운데 최초로 참수형을 당했다.

야고보의 제자들은 한밤중에 스승의 시신을 빼내 배에 싣고 함께 도망쳤다.

제자들이 도착한 장소는 스페인 북서부 묵시아라는 곳이었으며, 이 곳에서 야고보의 시신을 장사지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은둔 수행자 펠라요가 발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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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의 시신을 태운 배가 도착한 장소로 이 곳이 묵시아다. 앞의 건물은 묵시아의 성모성당.>

 

▸1,000년의 순례 역사가 살아있는 프랑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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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마태오 16장, 19절)

이 성경 구절은 가톨릭에서 교회가 가진 권한이 얼마나 큰 지를 나타내는 대목이다.

로마교회의 주교이자 초대교황인 베드로에게 예수님께서 주신 권한이기 때문이다. 베드로 성상이 열쇠를 쥐고 있는 있유가 이것이다.

성지순례는 가톨릭교회가 대사(대죄의 사면)의 은총을 받을 수 있는 방법으로 선포해, 신자들은 하늘 나라에 가기 위해 반드시 행해야 할 행동으로 여겨졌다.

가톨릭의 3대 성지순례지는 로마, 예루살렘, 그리고 산티아고다.

이 가운데 산티아고는 1,000년동안 지속적인 방문이 이어지는데, 그 이유는 다른 길에 비해 안전했기 때문이다.

순례 초기인 950년, 프랑스 중남부 도시 르 퓌 앙블레의 주교 고테스칼크가 수행원들을 이끌고 산티아고로 순례하면서 이 길이 프랑스길로 시초가 됐다. 1,000년이 지난 지금도 생장피에드포트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연결하는 800km의 길이 가장 많은 순례자들이 걷는 길이다.

11세기부터 13세기 사이는 순례의 열풍이 시작됐다,

프랑스, 독일, 영국, 이탈리아, 북유럽, 심지어 지중해 건너편에서도 순례자들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기록에 따르면 11세기 초 산티아고 순례자 수는 로마 순례자 수와 비슷했다.

이 시기에 구호소뿐만 아니라 도로와 다리 등 이동 편의를 위한 시설도 많이 건축됐다.

순례의 절정기는 13세기에서 15세기.

이 시기에 대사를 받으려는 순례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이 때 아시시의 성프란치스코도 순례를 다녀간 것으로 기록에 남아 있다. 그러나 종교개혁이 있던 17세기부터는 잠시 주춤했지만 2,000년들어 다시 순례자 수는 크게 늘었다,

지난 2019년에는 연간 35만명이 순례한 것으로 집계됐다.

코로나 시국인 2020년 5만명, 2021년 18만명으로 줄었지만, 2021년에 이어 2022년까지 제266대 교황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콤포스텔라 희년을 연장 선포함에 따라 순례객이 다시 30만명으로 늘어났다.

 

"나도 1년전에 갔다면 대사(죄의 사함)의 은혜을 입었을텐데!~ 아쉽다. 나는 그런 기복적인 대사는 믿지 않으니 그 때 갔더라도 안주셨겠지?"

답은 그 분만 알고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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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시시의 프란치스코는 30세 전후 산티아고 순례길에 올랐으며, 이 곳에 수도원을 짓기 위해 지역 수도원장에게 매일 물고기를 잡아 바치며 땅을 달라고 했던 일화로 유명하다. 순례 이후 그는 아시시로 돌아가 베들레헴 예수 탄생을 재현한 성탄 구유를 최초로 만들었다. 우리가 지금 보는 아기예수와 구유는 프란치스코회가 시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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