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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산티아고순례길 코덱스 칼릭스티누스와의 인연

산티아고 순례가이드를 알다

윤창영( ycy6529@hanmail.net) 2024.01.06 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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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페라다에 있는 템플기사단성으로 순례자를 위험에서 보호하기 위해 조직된 교황청 산하 기사단이다.>

 

 2011년도 발생한 실제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스페인 전체가 큰 충격을 받았다.

코덱스 칼릭스티누스라는 중세 시기의 귀중한 문화 유산이 사라졌다.

코덱스 칼릭스티누스 필사본은 세계적으로 중요한 문화 유산이자 서양 최초의 여행 안내서이며, 가톨릭 교회의 순례지침서로 그 가치가 높게 평가받는다.

이 책은 일반적으로 교황 방문과 같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항상 금고 안에 보관되어 있었기 때문에 관리자가 아니면 접근조차 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없어졌기 때문에 '희대의 절도사건'으로 불리기도 한다.

코덱스 칼릭스티누스 필사본이 성당으로 다시 돌아온 것은 1년 후.

도난 당시 수석 사제는 필사본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이 자신을 포함한 보관소 담당자 3인뿐이었다고 증언했다. 경찰은 그의 증언을 토대로 교회 내부 보안 시스템을 잘 아는 사람을 용의자로 보고 수사에 착수했다.

범인은 산티아고 성당에서 25년간 전기기사로 일했던 남성과 그의 부인, 아들, 아들의 여자친구 등 4명이었다. 이들은 성당에서 마땅히 받아야 했던 충분한 보수를 받지 못해 필사본을 훔쳐 4만 유로(5,700만원)에 팔아 넘기려고 했다.

코덱스 칼릭스티누스는 산티아고 대성당 박물관으로 돌아왔으며, 완주한 순례자들은 언제든지 필사본을 감상할 수 있도록 전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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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덱스 칼릭스티누스 5권 산티아고순례안내서이다. 순례여정에 이 책을 만났다는 것 자체가 기적처럼 느껴진다.>

 

▸코덱스 칼릭스티누스(Codex Calixtinus)의 기적

나에겐 순례길 스승이 있다.

그 중 한명이 필리핀에서 온 순례자 벨(67)이다.

그는 이번이 산티아고 순례길 2번째 여정이다.

일본 선박에서 근무했던 그는 지난해 은퇴를 하고 가톨릭신자로서 의무를 다하기 위해 다시 왔다고 한다.

벨의 첫 번째 순례는 20대 시기로, 유럽과 일본을 오가는 일본 선박의 선원으로 근무하면서 피스테라와의 인연을 깊게 쌓았다. 피스테라 앞 바다는 '땅 끝'으로 불리며, 그곳을 여러 차례 항해했다.

첫 번째 순례땐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만 갔다고 한다. 그래서 이번 순례는 피스테라까지 갈 계획이라고 한다.

이번 순례를 위해 벨은 많은 준비를 해 왔다. 한 장의 보물지도처럼 신문 크기 종이에 사인펜으로 칸을 만들어 내용을 빽빽이 채웠다.

무엇인지 물어보니 ‘나를 위한 순례안내서’라고 한다.

프랑스길에서 어디를 방문하고 무엇을 봐야 하는지부터 순례길을 걷는 마음가짐, 자신이 행해야 할 보속 등이 상세히 담겨 있었다. 처음에는 개인적인 내용이라 보여주기를 주저하는 눈치였지만, 코덱스 칼릭스티누스 서책에 대한 이야기를 한 이후에는 적극적으로 보여주며 설명해 줬다.

벨에게 코덱스 칼릭스티누스는 순례자로서 지켜야 할 지침서로 여겨졌다. 그리고 나에게 꼭 그 책을 읽으라고 조언했지만, 이 이야기를 나눈 시기가 순례를 시작한지 달포쯤 지난 여정이어서, 내가 책을 읽을 가능성은 무척 희박했다.

 

구글에서 코덱스 칼릭스티누스 5권 ‘순례자를 위한 안내서’를 다운했지만, 한국어판은 찾을 수 없어 ‘그림의 떡’처럼 느껴졌다.

벨을 만날때마다 도착한 도시와 마을에서 ‘이것, 저것을 꼭 봐야 한다’ 말이 더 도움 됐다.

그 때마다 코덱스 칼릭스티누스를 한국에서 보고 오지 못한 것이 무척 후회됐다.

그러던 중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아스트로가 마을에 있는 공립알베르게에 들어갔을 때 코덱스 칼릭스티누스 5권이, 그것도 한글로 쓰여진 책이 놓여져 있는 것이다. 그 순간 나에게 기적이 일어난 것처럼 전율이 일었다.

‘대체 누가 여기에 이 책을 놓고 갔을까?’

그 날부터 그 책을 정독했고, 순례의 여정은 보다 풍요로워졌다.

이 책은 순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순례자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그리고 순례 여정에서 꼭 기도해야 할 장소(야보고와 관련된 22개의 기적이 있었던 장소와 내용), 4개의 프랑스길과 프엔테라레이나에서 합류하는 순례길 내용 등 다양한 정보가 정리돼 있었다.

 

순례길을 걷게 되면 배낭의 무게는 곧 내가 짊어져야 할 죄의 무게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누가 순례길을 걷겠다고 하면 ‘배낭은 8kg을 넘기지 말 것’을 꼭 조언하고 싶다.

물론 가능하면 더 가벼울수록 좋다.

이것저것 필요하다고 다 담는 순간, 배낭은 나를 잡아당겨 앞으로 한 발 한 발 내딛는 것이 힘들어진다.

 

‘왜 아르토르가에 내가 그토록 원했던 책이 있었을까?’

신앙인의 관점에서는 ‘구하시오 받으리라, 찾으시오 얻으리라, 두드리라 열리리라’는 요한복음의 말씀이 떠오른다. 비신앙인의 시각에서는 ‘책 한권만 없어도 내 배낭이 깃털처럼 가벼워진다’는 말에 공감할 것 같다.

이 책을 나에게 보내준 하느님께 감사기도를 드린 후, 주요 내용에 대해 밑줄치고, 생각을 주석으로 달아가며 읽었다.

읽으면서 부족한 시간에 조급함도 생겨났다.

철의십자가(Cruz del Ferro)에 머지않아 도착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책에는 순레자로서 철의십자가에서 수행해야 할 의무에 대한 내용도 있었는데, 이를 해내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몰리나세카라라는 마을에 도착했을 때다.

미국에서 간호사로 근무하다 은퇴해 새로운 인생을 설계하기 위해 순례길을 걷고 있던 한 여성분을 만났다.

오늘은 그 분의 생일이다. 혼자 생일맞이 식사를 하고 싶지 않다며 나와 장회장님과 함께 음식을 나누길 원했다. 우리는 그분의 생일 축하 겸 점심을 먹기 위해 보에나강 근처 카페로 갔다.

식사 후 장 회장님은 보에나강 물에 발을 담그러 내려갔다.

“회장님? 코덱스 칼릭스티누스에 보에나 강은 나쁜 강이라고, 가까이하지 말라고 소개되어 있어요”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지만 말하지 않았다.

장 회장님이 발만 담그고 나오시겠지! 설마 목을 축이시진 않을실거라 생각했다.

보에나강은 석회가 녹아있는 물이다.

중세시대 순례자들이 이 물을 마시고 탈이 많이 났던 것 같다. 그래서 그 강을 멀리하라고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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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리나세카 마을로 앞에 보에나강이 흐르며 뒤로 산니콜라스성당이 서있다. 우리는 가운데 보이는 카페이서 점심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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