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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산티아고순례길 1편_생장 피에드포트와 발카로스

시작하는 순례자들의 설렘

윤창영( ycy6529@hanmail.net) 2024.01.08 12:15

 20230311_183334.jpg<순례자여권과 55번 알베르게에 입실을 완료한 후 내일 먹을 간식을 사서 다시 숙소로 돌아가고 있다. 뒤편 왼쪽에 있는 건물이 55번 알베르게다>

 

 어제(3월 11일) 오후 4시쯤, 생장 피에드포트에 도착했다.

 바욘을 출발해 생장까지 2칸짜리 지역 기차를 타고 이동했다.

 그 날 지역기차에는 10여명이 승차했는데, 이 중 7명이 한국인이었다.

 화가 이승희씨(55)와 농어촌공사를 퇴직하고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기 위해 왔다는 두분, 부부, 장종혁 회장님, 그리고 나였다.

 20여분 정도 생장 중심부로 걸어 가니 익숙한 성벽이 나타났다.

 저기를 올라 왼쪽으로 돌아가면 순례자사무실이 있음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20230311_152036.jpg<생장에 내리면 정면으로 보이는 건물. 여기가 생장임을 알려주고 있다.>

 

“저기 알아요. 저 따라 오세요. 저 성문으로 들어가 쭉 올라가면 성당이 나와요. 거기서 왼쪽으로. 그리고 다시 올라가면 순례자 사무실이 나와요.”

 

 순례자사무실에 우리 7명이 함께 들어 갔다.

 사무실 직원분들이 우리들의 크레덴시알을 발급해 주었고, 그 후에 한마디 하셨다.

 “today’s mini korean day”-오늘은 작은 한국인의 날이다는 뜻이다.

 모두가 55번 알베르게에 배정받았다.

 55번 알베르게는 생장 시내를 내려다보는 멋진 경치를 즐길 수 있기로 유명하다.

 3월 중순은 아직 비수기라 침대 선택도 넉넉해, 베드버그가 무서운 나는 밝은 창가 침대를 선택했고, 장 회장님은 현관쪽 1인용침대를 택했다.

 알베르게의 1층은 식사와 휴게공간으로, 2층은 침실과 세면실, 화장실 등 숙박을 위한 장소로 구성돼 있다.

 짐을 정리한 후 1층에 내려오니 시끄러웠다.

 외국인분과 이승희씨와 농어촌공사분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바욘에서 만난 한국 청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20230311_153858.jpg<우리랑 함께 도착했던 분들. 맨 오른쪽 이승희씨와 농어촌공사 은퇴한 분들이 순례자사무소에서 크레덴시알을 발급받고 있다. 나는 이분들이 끝난 후 오른쪽 안경쓴 분에게 순례자여권을 발급받았다.>

 

 바욘에서 생장에 오기 전, 그들은 청년 한 명을 만났다고 한다.

 그 청년은 순례 배낭을 맡겨놓고 바욘 시내를 다녀온다고 했단다.

 그러나 생장으로 출발하는 기차 시간이 다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 청년이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외국인을 포함한 이들 4명은 배낭을 바욘역에 두고 올 수 없어 생장으로 가져오기로 결정했다.

 이제 다시 그 청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이야기를 듣다 ‘까미노친구들’이라는 네이버카페의 소속 회원 중 3,4월 산티아고순례길 대화방에서 ‘배낭이 사라졌다’는 청년의 글을 본 기억이 났다.

 그래서 카톡방에 ‘가방이 여기 있으니 찾아가라’는 메시지를 보냈고, 그 청년은 택시를 이용해 생장으로 와서 배낭을 전달받았다.

 

‘사람이 살아가는 곳에는 언제나 흥미진진한 일들이 생기는구나!’

 

 이 날은 비가 억수로 쏟아져 우비를 입어도 하의와 신발은 축축이 젖었다.

 생장에는 성모승천성당으로 불리는 주교좌성당이 있다.

 일요일 밤인 오늘 저녁은 7시가 미사시간이다.

 미사를 드리기 위해 성당에 들어가니 생장 주민들로 보이는 노인분들 10여명이 있었다. 순례자로 보이는 사람은 우리 뿐이다.

 이 날 나이가 지긋한 주교님과 신부님 2분이 미사를 집전했다.

 주교좌성당임에도 미사참여자 수가 이렇게 적다는 것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고, 한국교회의 미래를 보는 것 같았다.

 미사 끝에 우리는 순례자를 위한 축복기도를 받았다.

 ‘주님! 산티아고 순례길에 왔습니다. 설레기도 하고 두렵기도 합니다. 제가 잘 걸을 수 있도록 이끌어 주세요.’

 마음속으로 기도한 성당을 나와, 비와 함께 쏟아지는 축복을 느끼며 숙소로 향했다.

20230311_164450.jpg<생장 성모승천성당. 생장이 침략을 방어하기 위한 요새로 지어져서 요새성당이라고도 불린다. 이 후 설명하겠지만 성당을 부르는 이름이 다르다. 우리가 말하는 대성당은 카데드랄, 작은성당은 이글레시아 또는 바실리카로 구분한다. 주교좌 성당은 대부분 카데드랄이다.>

 

 다음 날 새벽 6시에 일어났다. 오늘부터 본격적인 순례의 시작이다.

 6시 30분에 출발하기로 했지만 막상 출발하려니 밖이 어두워 출발시간을 7시로 늦췄다.

 우리가 알베르게에서 제일 늦게 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사람들은 모두 27km 떨어진 론세스바야스까지 간다고 한다. 

 나와 장 회장님은 첫 날 무리하지 않기 위해 12km 떨어진 발카로스까지만 가기로 해, 일찍 출발하면 이른 시간에 도착할까봐 걱정했다.

 걷는다는 것은 그 날의 날씨와 관계가 깊다.

 어제 저녁부터 그치지 않고 쏟아지는 비는 반갑지 않았다.

 ‘앞서 출발한 분들 정말 힘들겠구나!’

 배낭을 멘 후, 그 위로 우비를 덮어쓰고, 비옷바지까지 완벽 무장을 했다.

 이렇게 싸매면 나면 걷는 모양도 이상하고, 습기 배출도 되지 않아 온 몸에 땀이 줄줄 흘러내린다.

 내 모습을 보며 오즈의 마법사의 양철 나무꾼 모습이 떠올랐다.

 오즈의 마법사는 도로시라는 소녀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마법사를 만나러 가는 길을 그린 판타지 소설이다. 똑똑해지고 싶어 뇌를 얻고 싶은 허수아비, 빈 깡통 소리가 싫어 심장을 원하는 양철 나무꾼, 용기를 얻고 싶은 겁쟁이 사자를 만나 함께 걷는 과정을 그렸다.

오늘 나는 도로시 옆을 걷는 양철나무꾼 캐릭터가 되어 버렸다.

 

20230312_100230.jpg<드디어 비가 그쳤다. 우비를 벗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 경치가 기가 막힌다.>

 

 첫날 생장부터 발카로스까지 걷는 12km의 거리도 결코 쉽지 않았다.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 장 회장님을 앞에 보내고 천천히 뒤따라 걸었다.

 그렇게 걷다 보니 어느새 장 회장님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고,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게 됐다.

 그런데 도로를 따라 걷다가 갑자기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순례길 표식이 없어 내가 가고 있는 길이 맞는지 의심이 들었다.

 길을 잘못 들었다는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큰 차들이 빠르게 달리는 도로를 따라 계속 걷는 것은 분명 잘못된 상황이다.

 구글 지도를 열어 내가 있는 위치를 확인했고, 비록 잘못된 길이지만 발카로스와 연결된다는 것을 확인했다.

 2시간 정도 도로를 따라 길을 걷다, 다리 건너 숲길쪽에서 내려오는 장 회장님을 발견했다.

 그 순간, 장 회장님이 걷고 있는 길이 진짜 순례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본 회장님이 반가워 큰 소리를 회장님을 부르며 달려갔다.

 그런데, 회장님의 첫 말은 나를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도로를 따라 왔어? 여기서 만나네! 난 여기까지 오면서 언덕을 몇 개 넘었어. 왜 이렇게 오르락 내리락 만든거야? 이럴 거면 도로 따라 걷는 게 더 편하겠어.”

편하게 걷자고 여기에 온 것이 아니지만, 막상 걷다 보면 좀 더 편한 길을 원한다.

언덕을 오를 때 힘들어 죽겠는데, 길을 내려가게 되면 또 올라가야 한다는 미래가 걱정된다.

이후에는 순례길 표식이 되어 있는 길을 따라 함께 걸었다.

회장님 말대로 오르락 내리락의 연속이다.

우리는 오늘 12km정도 걷기에 발카로스라는 마을에 금방 도착할 줄 알았다.

막상 걷다 보니 12km도 끝이 보이지 않는 먼 길이었다. 정말 발카로스까지 갈 일도 걱정됐다.

 ‘프랑스길은 첫 날이 제일 힘들다더니! 와 장난 아니네!’

이곳에 오기 위해 한국에서 걷기를 열심히 해 준비해왔지만, 막상 현장에서 부딪히는 어려움은 내가 초보순례자임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20230312_182151.jpg<산 중턱에 있는 발카로스 마을전경.>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2시간 정도를 더 걸었다. 산 능선 위로 발카로스라는 마을이 보였다.

 발카로스로 올라가는 길은 등산이다.

 올라가는 길의 경사가 70도는 될 정도로 수직에 가까워, 무거운 배낭을 욕하며 마지막 온 힘을 다해 올랐다.

 거친 호흡을 하며 발카로스 마을에 들어섰다. 오후 2시다.

 생장사무소에서 일러준 공립 알베르게에 갔더니, 문이 닫혀 있었다.

 ‘겨울 비수기라 열지 않을 것일까! 생장사무소 정말 너무하네! 이런 정보를 주다니!’ 

 내 몸 상태를 생각하면 더 이상 갈 수도 없다.

 이 마을에서 출발하면 론세스바야스까지 가야만 노숙을 피할 수 있다.

 문 닫힌 공립 알베르게 앞에 앉아 근처 다른 숙소를 찾아보는데, 갑자기 알베르게 안에서 사람이 나왔다.

 처음엔 그가 알베르게 주인이라 생각했지만, 그도 자신을 순례자라고 우리에게 소개했다. 그러면서 그는 현관문에 붙어 있는 종이를 가리키며 이 곳에 전화를 하라고 말했다.

 종이에 적힌 번호에 전화를 했더니 알아들을 수 없는 스페인어가 울려 퍼진다.

“알라 불라 불라 알라~” 전화기 넘어 들려오는 소리는 도무지 무슨 말인지!

 내가 영어로 얘기해도 되돌아오는 소리는 스페인어 일색이다.

 에라 모르겠다 생각한 나는 영어로 “나 여기 있어. 너 방 있니? 여기서 머물거야” 이 말만 반복했다.

 전화기 넘어 딱 한마디는 알아 들었다.

 “기다려!” 

 발카로스 공립 알베르게에서 크레덴시알에 첫 번째 스탬프를 찍었다.

 우리가 입실할 땐 전화하라고 알려줬던 필리핀 분 홀로 입실해 있었다.

 우리는 그 분께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 분은 여기까지 올라오는 길이 무척 힘들었다는 표정과 미소를 띄우며 말씀하셨다.

 그러고는 바로 침대로 돌아가 누워 휴식을 취하셨다.

 

 알베르게에 도착하면 첫 번째 해야 할 일이 샤워와 빨래다.

 이 알베르게에는 세탁기가 있었다.

 장 회장님은 세탁기를 열어 비와 땅에 젖은 옷들을 넣고 세탁을 시작했다.

 세제도 넣지 않고 그냥 돌리신다.

 30분이 지나 세탁물을 가지러 갔는데 세탁기 문이 열리지 않았다.

 문을 열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잡아 당기기도 하고, 옆에 있는 도구를 이용해 문을 뜯기도 해봤다.

 ‘실패다. 환장할 일이다.’

 결국 다시 한번 돌리면 열릴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한번 더 세탁을 했다. 

 세탁이 끝나자 문이 열렸다.

 ‘사람은 참 똑똑하다’

 

 세탁을 마친 후 장 회장님은 피곤하셨는지 침대로 가서 휴식을 취했다.

 나는 발카로스라는 마을을 둘러보기로 하고 마을 언덕에 올라 웅장한 피네레산맥을 감상했다.

20230312_184453.jpg<사진으로 담을 수 없는 경치가 자연의 웅장함인듯하다. 눈 앞에 다가오는 거대한 산군으로 둘러쌓여 있는 모습이 담기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쉽다.>

 

‘정말 멋진 곳이다. 내가 여기를 왔구나!’

 

저녁이 되자 이탈리아 가족 4명이 들어왔다.

오늘 발카로스 공립 알베르게에서 잠을 자는 사람은 나와 장회장님, 필리핀분, 부부와 아들, 딸 4명이 함께 온 이탈리아 가족 등 7명이 함께 잠을 잔다. 이탈리아 가족은 침낭도 없다. 그리고 4명이 거의 벗고 잔다. 민망하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했다.

숙소안에 다양한 국적의 문화가 사람들이 어우러져 자는 첫 번째 특별한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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