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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산티아고순례길 3편_론세스바야스에서 수비리

개가 사랑스러워지는 마을로

윤창영( ycy6529@hanmail.net) 2024.01.10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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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종혁 회장님과 성마리아성당 앞에서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출발을 시작한다.>

첫 외국인 친구들이 생겼다.

에스토니아에서 온 애니카(46)와, 덴마크사람 플란다(45)다.

어제 식당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이다.

우리 테이블은 그녀들, 장 회장님 그리고 나 이렇게 4명이다.

이날 순례자메뉴는 콩스프와 파스타로 시작해서, 본식은 치킨 또는 물고기 요리가 나오고, 후식은 아이스크림으로 마무리됐다.

나는 단백질 보충을 위해 콩스프와 치킨을 선택했다.

이날 아침에도 우연히 같은 테이블에 앉게 됐다.

오늘 조식은 식빵, 햄, 치즈, 사과, 그리고 쥬스와 커피가 제공됐다.

나는 샌드위치와 커피를 마셨고, 사과는 걷는 도중 당분 보충을 위해 챙겼다.

조식을 마치고 나왔더니 하늘이 이상하다. 한 방울 한 방울 바닥을 적시더니, 이내 세차게 빗방울이 쏟아진다. 생장 출발 때와 발카로스 때도 마찬가지였다. 론세스바야스 출발 때도 비가 내렸다.

프랑스에서의 흐린 하늘과 비가 그대로 스페인에도 이어졌다. 뜨겁고 정열적인 나라인 스페인의 이미지가 완전히 무색하다.

 


 

‘역시 오늘도 이렇게 시작하는구나!’

‘하루의 시작을 잘하기 위해 빗속에 축복의 기운을 넣어주시는 것인가!’

 

오늘 목적지는 주비리다.

장 회장님과 론세스바야스 수도원 성당인 성마리아 성당앞에서 화이팅을 하고, 다음 숙소인 주비리에서 만나기로 하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길을 가고 있는데 에스토니아에서 온 애니카가 풀을 뜯고 있는 말을 스마트폰에 담고 있었다.

“내가 사진 찍어 줄까?”

내가 묻자 그녀는 나에게 스마트폰을 맡긴다.

나도 찍어준다고 하길래 사양하며 먼저 가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함께 가자고 한다.

“어디서부터 걸었어?”

“생장에서 걷기 시작했어.”

“와! 대단하다. 정말 힘들었겠네. 부럽다.”

애니카는 어제 팜플로나에서 론세스바야스로 버스로 왔다고 한다.

피레네산맥을 넘지 않고 론세스바야스에서 출발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애니카의 이런 저런 말을 들으며 함께 길을 걸었다.

그러다 갑자기 나에게 질문 세례가 쏟아졌다.

어떻게 대답해서 말을 이어가야 할지 고민됐다.

그녀의 영어가 길어진다.

한국에서 왜 산티아고가 유명한지! 팜플로나에서 어떻게 보낼 것인지를 물어오니 멍해졌다.

애니카의 유창한 영어에 잔뜩 주눅 들었다.

“애니카? 먼저 가. 난 담배 한 대 피고 천천히 갈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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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카와 대화 후 혼자 남은 상태. 나는 담배를 태운 후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을 사진에 담았다.>

 

너무 우리말에 익숙한 탓일까?

해외에 나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첫날과 둘째날은 영어가 잘 들리지 않는다.

영어 회화 능력이 부족한 나에게 실망스러웠다.

‘영어를 좀 더 잘했으면, 순례길이 더 재밌고 풍요로울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망감은 곧 나를 위로하는 마음으로 변했다.

‘네가 순례길에 왜 왔는데? 너 하느님과 대화하러 온 것 아니었어? 너 자신이 더 단단해지고 싶다며! 영어를 못하면 어때? 하느님과 대화하는 데는 문제 없자나!’

이렇게 나를 격려하며 발걸음을 내디뎠다.

 

12시쯤 에로(Arro)라는 마을에 도착해 또르띠야와 커피를 시켜 점심을 즐겼다.

그 후 에로고개를 넘었다.

에로고개는 깔딱고개로, 한 순간 고도를 높여야 하는 지점이다.

론세스바야스로부터 15km를 걷게 되면 만나는 오늘의 최대의 난코스다.

이 고개를 넘어야 수비리에 도착할 수 있다.

수비리에 도착했을 때 먼저 보이는 것은 다리였다.

이 다리의 이름은 푸엔테 데 라 라비아(Puente de la Rabia)라는 멋진 이름이다.

다리 이름을 우리말로 번역하면 광견병다리가 된다.

‘미친개다리’ 피식 웃었다.

광견병다리라는 이름으로 불려지게 된 연유는 다음과 같다.

수비리로 들어가기 위해 다리를 설치하는 과정에서 튼튼한 다리를 만들기 위해 강 주변 흙을 파내는 작업이 진행됐다. 그러자 그곳에서 광견병에서 보호해 주는 수호성녀 키테리아의 유해가 발견된 것이다. 이후로 교각 주변를 돌면 광견병을 치유 받게 된다는 이야기가 전해졌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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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견병다리앞에 섰다. 이 다리를 건너면 수비리로 들어간다.>

 

광견병다리를 건너 숙박을 위해 공립 알베르게로 향했다.

지금은 2시 30분이지만, 공립 알베르게가 벌써 만원이라고 한다.

'벌써 꽉 찼다니.‘

알베르게 주인은 나와 장 회장님에게 오스탈(호스텔)에 머물 것을 제안해 왔다.

가격을 물으니 45유로를 제시한다.

공립 알베르게에 입실하기 위해 1인당 15유로를 내야 하니, 2인이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오스탈이 45유로면 이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That's sound good" - "네, 말 너무 좋아."

우리가 호스텔에 입실하니 2022년도에 왔다 간 사람들의 쪽지가 있었다.

쪽지의 내용은

Buen Camino Peregrinos, Ci Uediamo Alla Fine Del Mondo - Nicoco-Maria-Viola, Zoe(la perrita)

라고 적혀 있었다.

해석하면 반가워 순례자들아! 우리는 세상의 끝을 보고 왔다. 니코코, 마리아, 비올라, 죠(개)

la perrita라는 말은 개라는 단어였다. 이 때문에 한참을 생각했다.

그리고 결국 해석해 냈다.

니코코와 마리아, 비올라가 죠라는 애완견과 함께 순례길을 완주했던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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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묵을 호스텔 내부 모습. 2층 침대_아래는 장 회장님, 위는 나. 이렇게 두밤을 보낸 후 1인용 침대를 보니 마냥 기쁘다.>

 

수비리는 '개 판'이다.

마을입구부터 숙소까지 개 이야기뿐이다.

이런 생각을 하며 저녁 9시 꿈나라로 향했다.

20230314_151810.jpg<숙소에서 보는 수비리의 모습. 도로 건너편 목장에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양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내 마음도 같이 평화로워졌다. 이 목장엔 양떼를 지키고 있는 개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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