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기획

강정마을 제주 해군기지 공사차량들이 무수히 들고 나는 사업기지단 앞은 그야말로 예술의 혼이 꿈틀대고 있다.

 

펜스를 가득채운 그래피티와 한 땀 한 땀 정성껏 바느질한 걸개그림들, 그리고 전국 무수한 단체에서 보내준 현수막들 때문이다.

 

 

어떤 이는 시로, 어떤 이는 낙서로, 어떤 이는 그림으로 강정천 앞, 이 아픔의 도로를 수놓는다.
그 곳, 삭막할 수 있는 까만 아스팔트에 소박하지만 따뜻하고, 화려한 기교없이도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는 이십대 젊은 화백, 장준후를 만나보았다.

 

▲장준후 화백


사람들은 쉽게 말한다. 내일 지워질 건데, 대충해라. 하지만 나에게는 하나하나가 소중한 작품이었다.
작년 7월 말에 강정에 오게 되었다. 한달간 구럼비 위에서 텐트를 치고 그곳에서 자며 생활을 하였다.
아침마다 새벽 5시면 강렬한 햇살이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일어날 때마다 바다의 짠내음과 찬 바람에 끙끙대며 일어나고, 백배를 하러 오는 분들이 모두 텐트를 한번씩 들여다 보며 지나갔었다.
홍보활동도 하고 목걸이도 만들어 팔고, 설명하며 그렇게 지냈었다.
사람들은 당시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작품 : 구럼비와 평화 (8월 28일)


해상팀에서 활동을 하지만, 물을 싫어하고 무서워한다는 장준후 화백.


강정마을 소식에 한번쯤 꼭 만나보고 싶었다던, 송강호 박사님의 권유로 해상팀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작품 : 대장 붉은발 말똥게와 (9월 11일)

 

그런 그가 해군기지 사업단 정문 앞 바닥에 그림을 그리게 된 이유는, 기지사업단 앞마당을 해군들이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기 때문이란다. 그곳은 아직 강정천 하천부지이고, 서귀포시에서 관리하며, 강정마을에서 책임을 질 수 있는 공공부지이다. 매일매일 레미콘 차량이 드나들며 공사를 위해 사람들이 고착을 당하는 싸움이 끊이지 않는 그 곳이 아직 누구나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공공부지임을 천명하기 위하여 자신의 캔버스로 삼게 되었단다.

 

▲작품 : 복희사망 (9월 7일)


그에게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 다른 방식의 투쟁이었던 것.

그의 많은 작품들이 아스팔드 바닥에 그려지고 지워지기를 반복하였지만, 가장 지워지는 것이 안타까웠던 것은, 구속되어 감옥에 갇힌 동료들에게 쓴 장문의 편지였다. 그 편지에 자신의 마음을 담았기에.. 아직은 스스로의 마음에 모자라다고 느껴지는 그림보다 제주해군기지 공사장으로 출퇴근을 하는 인부 아저씨들에게, 그 편지로 자신의 마음을 더 잘 전달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희망을 품었다고 한다. 장화백이 그림을 그리는 이유, 그리고 공사차량을 막아서라도 공사를 중단시키고 싶은 그 마음을 그렇게 나마 그들에게 전달하고 싶었던 것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기지 앞 정문부터 포구까지 그림으로 하나되게 이어내는 것이다. 생각해 보라. 어느 날 아침, 대문을 열고 상쾌한 아침 햇살을 느끼며 나왔을 때.. 끝없이 이어지는 그림들의 향연을.


이 어찌 아름답지 아니한가!

 

▲작품 : 돌고래 편지 (9월 4일)

 

지워진 편지전문

송강호 교수님.
김복철형. 동원. 

내가 강정에 와서 나에게 저항을 알려준 사람들 당신들은 지금 어디에 있나요 ?
당신들과 나와 우리와 구럼비는 어디로 사라지고 있을까요 ?
서로 마주보고 얘기하던 그때 구럼비에서 만나 그곳에서 모두 함께 쌓은 기억들은 나에게 행복과 슬픔이 함께 몰려오곤 합니다.

 

▲작품 : 검둥이 (10월 4일)


내가 이곳에서 길을 잃고 교수님과 동원에게 질문 한적이 있습니다.
" 내가 왜 여기에서 이렇게 바다에 나가고 무서움을 견뎌야 하는지요 ,?"
많은 말들을 듣고 수많은 대화 속에서 나에게 , 내 마음에 남은 것들은 교수님과 동원 그 자체입니다 
두 사람과 복철형. 갇혀있는 구럼비 밖에서 나는 또 다시 많은 고민들을 합니다.


밖에있는 저 보다 여러분들이 의지가 더 강해 보입니다. 그 의지들을 바라 보며 나는 싸우고 있고 그리고 있고 바다에 나가고 그리워 하고 있습니다. 그리운 그 날들도 너무나 힘들었는데 왜 그렇게 아름답게 느껴지나요.

 

▲작품 : 구럼비와 까마귀 (9월 18일)


우리가 동원과 교수님과 같이 바다에 나가고 구럼비에 갈 날들은 아직도 멀게만 느껴집니다. 
포구에서 구럼비로 수영하는 송강호 교수님을 바라봅니다. 
삼촌들의 두 손을 따뜻하게 잡는 김동원을 바라봅니다. 
공사장 정문에 든든하게 서있는 김복철 형을 바라봅니다. 
그때와 지금의 시간에 대하여 나는 마음에 지나가는 혹은 깨어지는 것들을 차곡차곡 쌓고 있어요.


시간이 지나 지금보다 약간 더 훗날에 지금처럼 지나간 시간들. 좋은 추억이었다며 웃으며 회상하는 날이 올거라 생각하니 슬픔이 조금은 사라집니다. 우리가 가장 많은 기억들을 쌓은 겨울이 오고 있습니다.

 

▲작품 : 말 (10월 9일)


올해 겨울은 얼마나 춥고 시릴까요? 
이곳에 남아 있는 우리들은 얼마나 따뜻할까요?
그리움에 기대어 오늘도 포구와 정문과 바다와 구럼비를 바라봅니다.


그리고 내 마음을 바라 봅니다.
이 곳과 사람 사랑 당신 죽어 떠나가는 존재들 살아가는 존재들을 바라봅니다.
바라보고 그려서 나는 올해 겨울을 따뜻하게 서 있겠습니다. 
이 편지가 교수님과 동원과 복철형을 지금 보다 더 따뜻하고 외롭지 않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당신들을 향한 그리움 우리라는 모든 사람들이 슬프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들이 슬퍼지는, 우리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데려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우리가 아끼고 좋아하는 모든 것들이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보고싶습니다.


송강호 김복철 김동원 구럼비.
듣고 싶은 맹꽁이 소리.
그리운 영롱한 반딧불빛들.


이곳에서 파괴되고 사라져 가고 끌려가는 모두 
보고 싶습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