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마을 제주 해군기지 공사차량들이 무수히 들고 나는 사업기지단 앞은 그야말로 예술의 혼이 꿈틀대고 있다.
펜스를 가득채운 그래피티와 한 땀 한 땀 정성껏 바느질한 걸개그림들, 그리고 전국 무수한 단체에서 보내준 현수막들 때문이다.
어떤 이는 시로, 어떤 이는 낙서로, 어떤 이는 그림으로 강정천 앞, 이 아픔의 도로를 수놓는다.
그 곳, 삭막할 수 있는 까만 아스팔트에 소박하지만 따뜻하고, 화려한 기교없이도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는 이십대 젊은 화백, 장준후를 만나보았다.
사람들은 쉽게 말한다. 내일 지워질 건데, 대충해라. 하지만 나에게는 하나하나가 소중한 작품이었다.
작년 7월 말에 강정에 오게 되었다. 한달간 구럼비 위에서 텐트를 치고 그곳에서 자며 생활을 하였다.
아침마다 새벽 5시면 강렬한 햇살이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일어날 때마다 바다의 짠내음과 찬 바람에 끙끙대며 일어나고, 백배를 하러 오는 분들이 모두 텐트를 한번씩 들여다 보며 지나갔었다.
홍보활동도 하고 목걸이도 만들어 팔고, 설명하며 그렇게 지냈었다.
사람들은 당시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해상팀에서 활동을 하지만, 물을 싫어하고 무서워한다는 장준후 화백.
강정마을 소식에 한번쯤 꼭 만나보고 싶었다던, 송강호 박사님의 권유로 해상팀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런 그가 해군기지 사업단 정문 앞 바닥에 그림을 그리게 된 이유는, 기지사업단 앞마당을 해군들이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기 때문이란다. 그곳은 아직 강정천 하천부지이고, 서귀포시에서 관리하며, 강정마을에서 책임을 질 수 있는 공공부지이다. 매일매일 레미콘 차량이 드나들며 공사를 위해 사람들이 고착을 당하는 싸움이 끊이지 않는 그 곳이 아직 누구나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공공부지임을 천명하기 위하여 자신의 캔버스로 삼게 되었단다.
그에게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 다른 방식의 투쟁이었던 것.
그의 많은 작품들이 아스팔드 바닥에 그려지고 지워지기를 반복하였지만, 가장 지워지는 것이 안타까웠던 것은, 구속되어 감옥에 갇힌 동료들에게 쓴 장문의 편지였다. 그 편지에 자신의 마음을 담았기에.. 아직은 스스로의 마음에 모자라다고 느껴지는 그림보다 제주해군기지 공사장으로 출퇴근을 하는 인부 아저씨들에게, 그 편지로 자신의 마음을 더 잘 전달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희망을 품었다고 한다. 장화백이 그림을 그리는 이유, 그리고 공사차량을 막아서라도 공사를 중단시키고 싶은 그 마음을 그렇게 나마 그들에게 전달하고 싶었던 것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기지 앞 정문부터 포구까지 그림으로 하나되게 이어내는 것이다. 생각해 보라. 어느 날 아침, 대문을 열고 상쾌한 아침 햇살을 느끼며 나왔을 때.. 끝없이 이어지는 그림들의 향연을.
이 어찌 아름답지 아니한가!
지워진 편지전문 송강호 교수님.
김복철형. 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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