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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희망/생태/평화의 마을, 제주 강정에 평화를 지키려는 사람들의 마음이 모아지고 있다. 9월 3일 평화비행기를 타고 뭍의 사람들이 오기 전에 섬의 사람들의 마음을 모으려는 날라리 유랑이 시작된다. 이름하야 ‘날라리 평화유랑단’.

 

이들은 전국에서 모임 평화 및 인권지킴이들로 미리 제주 곳곳을 돌며 평화의 씨를 뿌리려 한다. 평화유랑단은 지난 8월 30일에 시작해서 9월 2일까지 제주 곳곳을 꽃마차를 타고돌 예정이다.

 

참소리는 ‘날라리 평화유랑단’의 유랑일기를 앞으로 9월 2일까지 연재할 예정이다.

 

▲<사진제공 - 날라리 평화유랑단>

 

육지사람, 섬사람, 모두 모여 놀자 놀자 강정 놀자

 

                                                            날라리 평화유랑단 (수진, 경계를넘어 활동가)

강정마을로 가는 여정은 생각보다 짧게 느껴졌습니다. 김포에서 제주공항까지 50분, 다시 버스를 타고 강정마을 입구에 닿는데 1시간. 따져 보니 서울에서 대전 가는 거나 진배없는 셈이더군요. 그런데도 왜 그동안 미안함과 안타까움에 발만 동동 구를 뿐, 한 번도 찾아와보지 못했던 걸까. 발걸음에 채여 굴러가는 작은 돌멩이 소리에 화들짝 놀랄 정도로 고요한 한 밤의 마을길을 걸으며 생각해봤습니다.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 비싼 비행기 삯, 머릿속으로 갖가지 이유들을 떠올려봤지만, 모두 변명일 뿐이었습니다. 예전에 강정의 한 활동가가 이메일에서 얘기했듯, 결국은 가슴과 삶으로 느끼는 평화보다는 ‘입으로 말하는 평화, 머리로 생각하는 평화’에 길들여져 있던 탓이겠지요.
 
저희가 와 있는 이곳 제주도 강정마을에서는 이번 주말 평화한마당 ‘놀자 놀자 강정놀자’가 열립니다. 서울에서 평화비행기를 타고 온 시민들과 섬 곳곳에서 출발하는 평화버스에 탄 도민들이 모두 모여 올레길도 같이 걷고 난장과 콘서트를 함께 즐기면서 이 아름다운 마을의 평화로운 일상과 붉은발 말똥게 같은 뭇생명들을 해군기지 건설로부터 지켜내기 위한 행사입니다. 저희는 그날의 행사와 해군기지 건설의 폭력성과 부당함을 제주 시내 곳곳에 알리고 있는 “날라리 평화유랑단”에 함께하기 위해 온 것이고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진으로만 보았던 구럼비 바위에 올라 하얗게 파도가 치는 바다를 만나고 풀숲을 가득 채우는 풀벌레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우리가 정말로 지켜야할 평화가 어떤 모습인지를 온 마음으로 배우기 위해 강정마을에 온 것입니다.

 

날라리 평화유랑단의 첫 날 일정은 예정보다 30분 정도 늦게 시작됐습니다. 이 날 아침에도 어김없이 사업단 정문 앞에서 주민들과 경찰 사이에 작은 충돌이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급히 현장으로 뛰어갔다 돌아온 평화바람의 활동가는 이정도 충돌은 거의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이라며 그다지 대수롭지 않은 표정이었습니다. 나흘간의 선전전을 위해 마련한 버스와 평화바람의 꽃마차가 주차되어있는 강정의례회관 앞에는 과감히 개강 첫 주를 포기하고 강정마을에 찾아온 시대여행의 대학생들과 서울에서 내려온 한국진보연대 활동가들이 선전전에 나설 채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미처 인사를 나눌 겨를도 없이 서둘러 올라탄 버스는 먼저 제주대학교에 날라리 평화유랑단과 한국진보연대 활동가들을 내려주고는 구좌읍 오일장으로 떠났습니다. 마침 장날이라 주민과 여행객들이 많이 모여들 거라 생각해서죠.

 

제주대학교에 내려진 팀에게 주어진 미션은 학생회관 정문과 후문에서 유인물 나눠주기, 토요일 행사 홍보하기, 당일 행사 진행을 도울 자원 활동가 모집하기, 제주대학교에서 출발하는 평화버스 홍보하고 승차권 팔기, 공권력 투입 반대-해군기지건설 백지화 도민선언 서명받기였습니다. 간이 테이블 하나를 펼쳐두고 하기엔 너무 많은 일을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지만, 역시 꾼들은 달랐습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알아서 착착 움직여 곧바로 선전전을 개시하더니 점심시간이 되기도 전에 준비해온 유인물을 모두 나눠주는 쾌거를 올린 겁니다.

 

▲<사진제공 - 날라리 평화유랑단>

▲<사진제공 - 날라리 평화유랑단>

 

선전전 앞을 지나가는 학생들의 반응은 예상보다 훨씬 우호적이었습니다. 토요일 행사에는 아르바이트 때문에 못 온다는 학생들이 많아서 평화버스 승차권을 몇 장 팔지 못했지만, 거의 모든 학생들이 유인물을 받아갔고 서명에도 적극적이었습니다. 수업에 늦어 나중에 오겠다고 뛰어가던 학생이 수업이 끝나고 다시 찾아와 서명을 하기도 했었는데, 학생들은 서명을 작성하면서 지금 강정마을의 상황이 어떤지, 이장님과 문정현 신부님은 풀려나셨는지 물어오며 특히 공권력 투입 문제에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젊은 친구들에게도 어렸을 때부터 들어왔던 제주 4.3에 대한 기억이 여전히 큰 상처로 남아있어서인지 육지 경찰이 강정마을에 와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걱정이 되는 눈치였습니다. 한 남학생은 해군기지건설에는 찬성을 하지만 마을에 공권력이 투입되는 것에는 반대한다면서 서명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한참을 망설이더니 결국 서명인부에 자신의 이름을 적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선전전에는 갑작스런 작은 이벤트도 마련이 되었습니다. 때마침 오후에 제주도 출신인 한나라당 원희룡 의원이 강연 차 제주대학교를 방문한다기에 우리만의 방식으로 그를 맞이해주기로 했습니다. 학교 매점에서 급하게 사온 우드락에 몇 가지 구호를 적어 피켓을 만들고 강연이 열린다는 건물 입구로 향했습니다. 서둘러 걸음을 재촉했는데도 학교가 어찌나 넓은지 하마터면 그를 놓칠 뻔 했지만, 다행히 우리가 먼저 도착해 마치 오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지루한 표정으로 원희룡 의원을 맞았습니다. 그는 역시나 선수답게 미소를 지으며 “신경 쓰겠다”는 다분히 정치인스러운 말로 악수를 건넸고, 우리는 능숙하게 그의 악수를 거절했습니다.

 

▲<사진제공 - 날라리 평화유랑단>

 

한편, 제주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힌다는 구좌읍 오일장에 간다고 기대를 품었던 대학생들과 꽃마차를 맞이한 건 예기치 못한 파장분위기였습니다. 손님들과 상인들로 북적이는 시장을 상상했었지만, 구좌 오일장은 오전 9시부터 10반에 가장 활기가 넘쳤다가 날라리 평화유랑단이 도착한 11시에는 이미 손님들은 다 떠나고 상인들만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겁니다. 결국 학생들은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는 구좌읍 지역 주민대책위 분들의 만류로 야심차게 준비했던 문선을 선보이지 못한 채 네 명씩 조를 짜서 길가의 상점부터 뒤편의 주택까지 가가호호 방문을 다녔고 꽃마차는 강정마을 노래를 틀며 선전전을 벌였습니다. 그리고 오후 늦게 제주대학교 선전전 팀과 대학생들은 아파트와 상점이 많아 제주도의 ‘강남’이라 불린다는 신제주 연동에서 만나 해군기지건설에 반대하는 연동 주민 분들과 함께 시내 선전전을 벌였습니다.

 

시내 선전전의 특징은 지나가는 사람들, 그 중에서도 나이가 드신 분들이 날라리 평화유랑단에게 어디에서 왔는지를 자꾸만 물어본다는 것이었습니다. 제주도 사람인지 육지 사람인지를 확인하고 싶으셨던 것이죠. 상관도 없는 육지 사람이 왜 여기에 왔느냐고 호통을 치는 아저씨도 계셨고, 이발소에 유인물을 드리러 들어갔던 학생들은 그 곳에 있던 할아버지와 해군기지 문제를 두고 이야기를 나누고 나오면서 “육지 것들”이라는 욕설 아닌 욕설을 듣기도 했다고 합니다. 육지에 있을 때에는 한 번도 스스로를 “육지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육지에서 온 사람들이 완전한 이방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만큼 제주 사람들이 육지에 큰 거리감을 느껴왔었다는 거겠죠.

 

▲<사진제공 - 날라리평화유랑단>

 

선전전을 마치고 돌아온 강정마을은 다행히 하루 동안 큰 탈 없이 평화로움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풀벌레 소리도 어제와 같고요. 파도 소리를 잔뜩 머금고 드넓게 펼쳐진 검은 구럼비 바위가 아빠의 가슴처럼 든든하게 느껴지는 밤. 이번 주말, 더 많은 “육지 것들”이 바다를 건너와 섬사람, 육지사람 할 것 없이 함께 구럼비 바위를 마당삼아 뛰어 놀면서 평화를 만끽하기를 바래봅니다.

 

날라리 평화유랑단 (수진, 경계를넘어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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