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re going to San Francisco∼
샌프란시스코에 가게 되면 머리에 꼭 꽃을 꽂으세요.
샌프란시스코에 가게 되면 친절한 사람들을 만나게 될 거예요.
이 노래 '샌프란시스코' 는 그 경쾌한 곡의 느낌 만큼이나 나에게는 의미 있는 노래다.
96년 겨울, 21살
내가 유급을 당하고 그것을 알게된 부모님으로부터 거의 내팽겨져서 정신적·경제적으로 힘들어할 때 만난 따뜻한 사람을 생각나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 사람은 내가 아르바이트 하던 도서관의 사서 선생님이었다.
유급을 당하고 낮시간에 동아리방에 있기도 뭐해서 시작하게 된 아르바이트는 나에게 일종의 청량제같은 신선함을 주었다. 빽빽한 의학서적들 사이를 걸으며 책을 다시 꽂고 좋아하는 종류의 책은 그냥 그 책더미에서 읽기도 하는 여유가 있었으니까.
다소 냉소적이던 나는 그 도서관의 다른 아르바이트생과는 달리 근로장학생도 아니었고 더더군다나 그 학교의 학생도 아니었다. 그저 나를 악의 구렁텅이로부터 건져올리려던 친척분의 무한한 배려로 그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것이다.
시급 1500원, 하루 8시간, 무심한 듯 앉아있는 아이, 한 마디도 안하고 있다가 시키는 얘기만 하는, 그러다가 한 번씩 책 꽂으러 가면 감감 무소식인...
그러다가 어떻게 해서 그 선생님과 친해졌던가?
아마 그 일이 있고 나서부터 였을거야.
어느 날 선생님과 함께 커피를 타다가 우연히도 내가 운동권인 것을 알게 된 사서 선생님이 이 자기 얘기를 시작하면서부터 우리는 급속도로 가까워지게 됐지.
그 선생님은 종교 동아리에서 학습 소모임을 경험한 거의 마지막 세대라고 했어. 80년대 후반 학번, 고향은 대구고 말씨도 순하고 얼굴도 순하게 생겼었는데...
그렇게 친해진 그 선생님이랑 인권영화제를 보러 갔다가 난로가 켜지지 않는 합동강당에서 달달 떨면서 영화를 보다가 얼어죽을 뻔 했던 적도 있었고, 여수로 기차여행을 가기로 했다가 눈이 너무 많이 와서 취소하기도 했고.
그 때 한참 원대 조교들이 파업을 했었던 것 같은데 그 선생님은 참여를 안 했어.
왜 참여를 안 하느냐고 물었더니 그 선생님 자기는 계약직이어서 할 수가 없다고 그랬더랬지. 그 땐 조금 뜨악했는데 이젠 그 선생님 마음을 조금 이해할 것 같아.
계약직이라는 신분(?)의 한계를 알게 됐거든.
음, 암튼 그러다가 내가 아르바이트를 그만 두던 날 그 날은 첫눈이 내리는 날이었어.
그 때 그 선생님이랑 학교앞을 지나는데 이 노래 샌프란시스코가 나오는 거야.
그러자 그 선생님 갑자기 멈춰서더니 친구 생각이 난다고 그랬어.
자기 친구는 소아마비로 인해 다리를 져는데 샌프란시스코를 가는 게 꿈이라고...
샌프란시스코는 장애인의 도시라는 거야. 그곳에서는 장애인에 대해서 이상한 눈으로 보지도 않고 장애인이 살기에 편하다는 거야.
그 친구는 고등학교 선생님인데 사람들이 자신을 불쌍하듯 쳐다보는 눈빛이 너무 싫대.
그래서 동경하는 샌프란시스코로 가겠다고 했어.
그 친구분 지금쯤은 샌프란시스코에 갔을까?
장애인에 대한 차별도 멸시도 없는 세상이 정말 있을까?
이 노래만 들으면 그 때 그 삭막했던 내 21살에 따뜻함을 주었던 선생님 생각이 나.
그 꿈들이 다 이루어질 수 있었으면...근데 이 노래는 가만히 듣고 있으면 경쾌한 것 같지만 사실은 참 서글픈 노래 같아.
왜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그런 화창한 날이 없는 걸까?
장애인과 비장애인 함께 살아도 전혀 이상하지 않는 세상.
이름도 까먹고 얼굴도 가물거리는 그 선생님이 정말 보고 싶다.
샌프란시스코에 가게 되면 머리에 꼭 꽃을 꽂으세요.
샌프란시스코에 가게 되면 친절한 사람들을 만나게 될 거예요.
이 노래 '샌프란시스코' 는 그 경쾌한 곡의 느낌 만큼이나 나에게는 의미 있는 노래다.
96년 겨울, 21살
내가 유급을 당하고 그것을 알게된 부모님으로부터 거의 내팽겨져서 정신적·경제적으로 힘들어할 때 만난 따뜻한 사람을 생각나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 사람은 내가 아르바이트 하던 도서관의 사서 선생님이었다.
유급을 당하고 낮시간에 동아리방에 있기도 뭐해서 시작하게 된 아르바이트는 나에게 일종의 청량제같은 신선함을 주었다. 빽빽한 의학서적들 사이를 걸으며 책을 다시 꽂고 좋아하는 종류의 책은 그냥 그 책더미에서 읽기도 하는 여유가 있었으니까.
다소 냉소적이던 나는 그 도서관의 다른 아르바이트생과는 달리 근로장학생도 아니었고 더더군다나 그 학교의 학생도 아니었다. 그저 나를 악의 구렁텅이로부터 건져올리려던 친척분의 무한한 배려로 그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것이다.
시급 1500원, 하루 8시간, 무심한 듯 앉아있는 아이, 한 마디도 안하고 있다가 시키는 얘기만 하는, 그러다가 한 번씩 책 꽂으러 가면 감감 무소식인...
그러다가 어떻게 해서 그 선생님과 친해졌던가?
아마 그 일이 있고 나서부터 였을거야.
어느 날 선생님과 함께 커피를 타다가 우연히도 내가 운동권인 것을 알게 된 사서 선생님이 이 자기 얘기를 시작하면서부터 우리는 급속도로 가까워지게 됐지.
그 선생님은 종교 동아리에서 학습 소모임을 경험한 거의 마지막 세대라고 했어. 80년대 후반 학번, 고향은 대구고 말씨도 순하고 얼굴도 순하게 생겼었는데...
그렇게 친해진 그 선생님이랑 인권영화제를 보러 갔다가 난로가 켜지지 않는 합동강당에서 달달 떨면서 영화를 보다가 얼어죽을 뻔 했던 적도 있었고, 여수로 기차여행을 가기로 했다가 눈이 너무 많이 와서 취소하기도 했고.
그 때 한참 원대 조교들이 파업을 했었던 것 같은데 그 선생님은 참여를 안 했어.
왜 참여를 안 하느냐고 물었더니 그 선생님 자기는 계약직이어서 할 수가 없다고 그랬더랬지. 그 땐 조금 뜨악했는데 이젠 그 선생님 마음을 조금 이해할 것 같아.
계약직이라는 신분(?)의 한계를 알게 됐거든.
음, 암튼 그러다가 내가 아르바이트를 그만 두던 날 그 날은 첫눈이 내리는 날이었어.
그 때 그 선생님이랑 학교앞을 지나는데 이 노래 샌프란시스코가 나오는 거야.
그러자 그 선생님 갑자기 멈춰서더니 친구 생각이 난다고 그랬어.
자기 친구는 소아마비로 인해 다리를 져는데 샌프란시스코를 가는 게 꿈이라고...
샌프란시스코는 장애인의 도시라는 거야. 그곳에서는 장애인에 대해서 이상한 눈으로 보지도 않고 장애인이 살기에 편하다는 거야.
그 친구는 고등학교 선생님인데 사람들이 자신을 불쌍하듯 쳐다보는 눈빛이 너무 싫대.
그래서 동경하는 샌프란시스코로 가겠다고 했어.
그 친구분 지금쯤은 샌프란시스코에 갔을까?
장애인에 대한 차별도 멸시도 없는 세상이 정말 있을까?
이 노래만 들으면 그 때 그 삭막했던 내 21살에 따뜻함을 주었던 선생님 생각이 나.
그 꿈들이 다 이루어질 수 있었으면...근데 이 노래는 가만히 듣고 있으면 경쾌한 것 같지만 사실은 참 서글픈 노래 같아.
왜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그런 화창한 날이 없는 걸까?
장애인과 비장애인 함께 살아도 전혀 이상하지 않는 세상.
이름도 까먹고 얼굴도 가물거리는 그 선생님이 정말 보고 싶다.
* 여은정 기자는 현재 군산노동자의집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노동자 산업안전과 비정규직 문제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비정기적으로 주변에서 겪는 일들을 에세이 형태로 꾸밀 예정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