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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지하철 참사사건과 관련한 보도에서 우리는 정식 재판을 통해 범죄사실이 확인되기 전까지 피의자의 인권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확인한 바 있다. 그런데 도내에서 발생한 경관피살사건과 관련한 용의자검거 이후 우리언론이 보여준 보도태도를 보면 이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는 느낌이다.

"99명의 범인을 놓쳐도 1명의 무고인을 만들어서는 안된다"는 문구는 형사사건 등에서 피의자의 인권보호문제를 가장 직설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특히 최근 몇가지 사례 등에서 '억울한 옥살이'에 대해 여론이 움직이고 있기는 하지만, 현실에서 이러한 경구는 흔히 외면당하기 일쑤다.

이런 원칙적인 명제를 제기하는 것은 최근 우리 지역에서 드러나고 있는 경관피살사건 용의자 검거와 관련한 언론보도 탓이다.

오늘자 도내 일간지 사회면에는 크기는 다르지만 경관피살 보도관련 보도와 관련 전주 북부경찰서 형사 등 52명이 모 신문사를 명예훼손혐의로 소송을 제기했다는 기사가 다뤄졌다. 해당 신문인 새전북신문을 제외한 나머지 신문들은 수사팀의 명예훼손 소송내용을 자세히 다루면서 "경찰이 보도와 관련 언론사를 상대로 집단으로 손해배상과 정정보도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하기는 도내에서는 처음이며 전국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일이다"는 해석을 더하고 있다.

물론 '강압수사의혹'에 대한 보도와 이 보도에 대한 경찰측의 대응문제는 법정에서 가려질 것이고, 어떻게 든 진위여부가 가려질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그동안 백경사 피살사건과 관련한 언론보도에서 검거된 용의자들이 진범이 아닐 수 있다는 데 초점을 맞춘 새전북신문과 진범임을 확신하고 있는 타 언론사들의 보도태도에 관련돼 있다.

실제로 지난 1월 백경사 피살사건의 용의자로 조모씨 등 3명이 검거되면서 경찰은 자칫 영구미제사건으로 남을 뻔한 사건을 해결했다면서 크게 환호했고, 언론들도 다들 이에 호응하는 보도를 내보냈다. 경찰에서는 용의자를 검거하는데 공을 세운 관련 경찰의 1계급 특진을 상신하는 등 사건이 해결되었다는데 전혀 의심이 없었다.

도내 대부분 언론, 경찰측 입장 중심 보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국면은 이상하게 전개되기 시작했다. 용의자들이 모두 범행일체를 자백한 상태에서 이를 입증할 물증이 전혀 확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범행당시 탈취당한 것으로 알려진 권총이나 살해에 사용되었다는 흉기 등이 경찰뿐 아니라 군병력까지 동원되어 수색작업에 나섰지만 발견되지 않은 것이다.

세간의 관심이 온통 특히 권총의 행방에 집중되었고, 이는 이번 사건의 결정적 물증일 뿐 아니라, 제2의 범죄를 예방하기 위하여 반드시 확보되어야만 하는 것으로, 잇따른 수색작업으로도 권총의 행방을 알수 없자 여러 가지 해석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이런 가운데 일부 언론이 검거된 용의자가 범인이 아닐수도 있다는 시각에서 사건경위나 용의점 등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이번 소송에 휩싸인 새전북신문과 연합뉴스, 그리고 YTN 등이 관련 보도의 당사자들이었다.

이들 가운데 특히 새전북신문은 크게 1) 용의자들이 살인혐의는 인정하면서도 권총의 행방을 대지 않는 데 대한 의문과 2) 우발적 범행이었다는 경찰의 설명과는 다른 정황들이 여러 가지 드러나고 있다는 점-가령 우발적 범행이었다면서도 평서 칼을 휴대하고 있었다는 설명이나 현장에 지문 등이 전혀 발견되지 않는 다는 점, 그리고 이번 소송과 관련된 문제이기 도 한 3) 용의자들이 관련혐의를 부인하고 있고 관련 자백이 강압수사에 연원하고 있었다는 점 등을 제기했다.

연합뉴스와 YTN 등도 비슷한 시각에서 의문점 등을 보도하고 나섰다. 하지만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 신문, 방송은 오히려 이들 의문에 대한 경찰측 반박에만 초점을 맞춘 보도로 일관했다.

가령 'PC방' 알리바이 의혹에 대해서는 경찰측의 '제3의 목격자확보' 등의 반박내용을, 가혹행위 의혹에 대해서는 '일체 그런 사실이 없다'는 경찰측의 반박내용을 대신 보도했다. 심지어는 일부언론이 수사기밀을 누설한다거나 이들의 보도로 인해 관련 용의자들이 자백을 번복했다는 식의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여기서 문제는 다시 처음 제기했던 원론적 입장 즉 "99명의 범인을 놓쳐도 1명의 무고인을 만들어서는 안된다"는 대목으로 되돌아간다. 이는 경찰 등 수사기관과 사법기관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특히 언론의 보도태도와 직결된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비록 경찰측에 의해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고 있기는 하지만, 타 매체에서 보도한 것처럼 여러 가지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마당에-이는 경찰측이 새전북신문에 대한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하면서 강압수사문제만을 문제삼고 있는데서도 일정부분 확인할 수 있다-, 아니 자백을 제외하곤 범인이라는 물증이 하나도 나오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경찰측의 입장을 반영하는 보도를 내보내는 것은 언론의 기본 사명과 동떨어진 태도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관련 용의자들이 이번 사건의 진범일수도 있다. 또한 진범이 확실하다면 물증은 언제든지 확보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언론보도가 현재 상태에서 관련 용의자를 진범이라 확정하는 식의 보도태도가 옳다는 것을 입증해주는 것은 전혀 아니다.

오히려 혹시라도 진범이 아닐 경우, 이들의 인권이 심각하게 훼손당할 수 있다는 점과 실제 진범에 대한 수사가 전혀 이루어지지 못함으로써 사건 자체가 영원히 미궁에 빠져버릴 수 있다는 점 등을 생각한다면, 여러 가지 측면에서 관련 사건을 분석하고 보도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런점에서 새전북신문 1월 29일자 기자메모 <경관 피살사건 1% 의문도 풀어야>에 담긴 해당 기자의 호소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전주 금암 2동 파출소 백경사 살해 사건의 진실은 어디에 있는가. 경찰은 용의자 3명을 공개하면서 공소를 자신하고 있고 정작 본인들은 아니라는 상황. 여기에 상황을 판단할 수 있는 어떤 결정적 물증은 없다. 존재하는 것은 상호 말뿐이다. 누구 말을 믿어야 할 것인가. 기자들은 곤혹 스럽다.

일각에선 "지역 언론사간 보도경향의 차이, 왜곡된 경쟁심리의 산물"

일단 경찰의 말을 믿는다. 아니 믿고 싶,고 믿어야 한다. 경찰이 민중의 지팡이라는 원론적인 사안을 떠나 사건의 피해자다. 무엇보다도 경찰은 과학수사를 근간으로한 국민의 기관이라는 점에서 공신력이 크다.

그러나 경찰 공신력에 단 1%의 의문이 있다면 이를 제시하고 해소하는 것은 언론의 몫이다.

만일 단 1%의 의문이 무고 사범을 만든다면 이는 경찰과 언론의 책임이다. 이런 점에서 경찰과 언론은 사실 동지다. 이는 ‘99명의 범인을 놓쳐도 1명의 무고인을 만들어서는 안된다’는 범의 기본 정신과 맥을 같이 한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건에 대한 언론사간의 보도경향의 차이를 언론사간 왜곡된 경쟁심리의 산물이 아닌가하는 시각을 제기하기도 한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좁은 지역내에 7개의 신문이 난립해있는 지역신문의 현실속에서 언론사간의 왜곡된 경쟁심까지 자리한다면, 그런 신문을 보고 사회현실을 인식하는 전라북도민에게는 진정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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