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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은 2002 한일월드컵 당시 시청 앞을 가득 메운 붉은 악마들 중에서도 특히 열정적으로 응원을 펼친 여성 축구팬들을 기억하실 텐데요, 지난 1월 초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는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최초로 여성들의 축구장 출입이 허용되었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이란에서 운동경기장에 여성의 출입이 허용된 사례는 2001년 월드컵 예선 플레이오프 전 때 원정팀인 아일랜드의 여성 팬들에게 긴 코트와 스카프를 착용하는 것을 조건으로 허락한 것이 유일하다고 하는데, 물론 여성기자들과 선수들의 친척들에 한해서이기는 하지만, 이번 여성들의 경기장 출입허용은 이란 국민들 입장에서는 작지만 큰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공식적으로는 남성 팬들이 상대팀 선수들에게 불건전한 말과 무례한 행동을 하는 것으로부터 여성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경기장 출입이 금지되었는데, 사실은 보수적인 이슬람사회에서 여성들이 짧은 반바지를 입은 남자선수들을 보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고 하는군요.

일단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의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입니다. 처음 여성들을 출입시킨 페이칸 축구클럽 관계자에 따르면 경기장 스탠드에서의 여성들의 존재는 남성 축구팬들이 매너를 지키게 하고, 선수들의 경기력까지 향상시킬 거라고 하는군요.

그리고, 이번 조치가 주목을 받는 이유는 또 있습니다.

대통령과 의회 이외에 최고 지도자라는 뜻의 아야톨라라는 보수적인 종교 지도자가 사실상 나라를 다스리는 이원적 지배구조로 되어 있는 이란에서는 온건개혁파인 무하마드 하타미 대통령이 1997년에 이어 2001년에도 집권에 성공하고, 2000년 총선에서 개혁파가 의회를 장악하긴 했지만, 여전히 국가최고기구라 할 수 있는 헌법수호위원회와 법원은 보수파들이 장악하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지난 해 6월에는 테헤란의 한 사범대학 교수인 하셈 아가자리라는 사람이 대중연설에서 "국민은 이슬람 성직자를 흉내내야 하는 원숭이가 아니다"라며 이슬람 성직자 사회의 개혁을 주장했다가 사형선고를 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뉴욕타임즈의 칼럼니스트인 토머스 프리드먼이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재판'이라고 표현했던 이 재판은 결국 최고 종교지도자인 아야톨라 하메네이가 아가자리 교수의 사형선고에 반발한 학생들의 대규모 시위로 한발 물러서 결국 사형판결 재심을 명령했고, 현재 재판이 진행 중에 있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바시즈'라는 민병대를 필두로 한 보수파와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개혁파 간의 이른바 보·혁갈등이 이란에서는 아주 심각한 상황이라고 합니다.

어쨌든 이번 여성들의 제한된 경기장 출입허용조치를 포함한 개혁파들의 변화와 개혁정책이 보수파들의 반발 속에서 어떻게 진행될 수 있을지 많은 이들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 이 글은 CBS 라디오 '변상욱의 시사터치'의 '지구촌표정' 코너를 통해 국제민주연대에서 방송한 내용입니다. - 2003년 1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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