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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오스트레일리아 하면 광활한 땅과 아름다운 해변에서 일광욕을 즐기거나 파도를 타는 사람들의 여유로운 모습을 먼저 떠올립니다.

하지만 지난 두 주동안 오스트레일리아의 대표적인 난민구금시설인 박스터, 우메라 등 다섯군데 수용소에 억류되어 있는 난민신청자들은 정부의 비인도적이고 가혹한 처우에 분노해 시설에 불을 지르며 저항하고 있다고 합니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습니다.

작년 크리스마스 전 주에 전기고장으로 인한 작은 불이 박스터 수용소에서 일어난 후 12월 26일 자정 경에 또다시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다행히 아무도 다친 사람은 없었는데, 29일 자정에 세 번째 화재가 일어났고, 수용자들이 있던 두 개의 건물이 연기로 가득차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화재가 시작된 12시 15분부터 2시 30분까지 사람들이 연기에 질식해서 쓰러지는데도 수용시설의 관리를 맡고 있던 <오스트레일리아 교정관리(ACM)>라는 민간회사의 직원들은 아무도 그들을 도우지 않았고 심지어 건물에 있던 사람들이 문을 부수고 나오려 하자, 욕설을 하면서 제지하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연기에 질식한 사람들이 겨우 빠져나오고 나서도 음식이나 담요도 없이 하루종일 사막의 태양 아래에 그대로 방치해 놓은 채 방화용의자를 색출한다면서 연방경찰은 구금자들의 소지품 검사만 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그동안 수용자들은 왜 아무런 증거도 없이 모두를 범죄자 취급하냐면서 분노를 폭발시키기 시작한 거죠. 실제로 시설 규정상 모든 수용자들은 일체 성냥이나 라이터, 스프레이 등을 소지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문제는 이런 사건이 단순히 우발적으로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는 겁니다.

오스트레일리아 정부는 자국 내 불법체류자가 점점 증가하자, 1999년 말 난민자격과 임시비자가 주어질 때까지 난민신청자들을 수용소에 구금하는 정책을 도입했습니다. 난민지위신청이 받아들여지면 풀려나게 되고, 받아들여지지 않은 사람들은 본국으로 강제송환되는 것이죠.

그런데 난민지위 신청 이후 정부와 법원의 결정이 나기까지 보통 수개월에서 몇 년이 경과되기도 하는데, 그 기간동안 불법체류자들은 꼼짝없이 감옥과 다름없는, 아니 더 열악한 수용소에서 외부와 연락이 차단된 채 죄인처럼 갇혀 지내야합니다. 이들 난민신청자들을 구금하는 수용시설은 정부와 계약을 체결한 <오스트레일리아 교정관리(ACM)>라는 민간회사가 맡고 있는데, 수용소의 경비원들은 서구문화와 다른 아시아, 아프리카 등의 문화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어서 걸핏하면 본국으로 송환하겠다고 협박하면서 수용자들을 멸시하고 구타하거나, 고문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고 합니다. 그들이 실제로 아무런 죄를 짓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아이들까지 범죄자 취급을 받는 거죠.

실제로 작년 초에는 우메라 수용소에 구금된 약 70여명의 아프가니스탄 출신 난민신청자들이 수용소의 비인간적인 처우와 자신들의 난민신청이 늦어지는 것에 항의해 스스로 입술을 실로 꿰매고 단식농성을 벌이거나 샴푸와 진통제를 삼켜 자살을 기도하는 바람에 70여명이 의식불명 상태에 빠진 적도 있었습니다.

지금의 상황에 대해 난민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오스트레일리아 인권운동가들은 아주 심각한 우려를 표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오스트레일리아의 난민강제수용정책이 자국이 서명한 유엔난민협약과 세계아동인권선언 등 국제협약을 웃음거리로 만들고 있으며, 지금 난민신청자들이 불을 지르며 저항하는 것은 전혀 놀랄만한 일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오히려 그들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상하다는 거죠.

현재 오스트레일리아의 인권운동가들은 난민수용시설에서의 인권침해에 대한 즉각적인 조사와 어른들 뿐만 아니라 어린이들까지 장기간 구금하는 현 하워드 총리 정부의 이주노동정책을 전면 수정할 것을 요구하면서 4월 18일부터 21일까지 대규모 집회를 준비 중에 있다고 합니다.


* 이 글은 CBS 라디오 '변상욱의 시사터치'의 '지구촌표정' 코너를 통해 국제민주연대에서 방송한 내용입니다. - 2003년 1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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