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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그날의 아픔을 덮으려는 듯 눈은 그칠줄 몰랐다.

29일 14명의 목숨을 앗아갔던 군산 개복동 화재참사가 일어난지 딱 1년이 되던 날. 야외에서 진행되려던 1주년 추모제는 내린 폭설과 매서운 추위로 장소를 옮겨 개복동 성광교회에서 진행됐다.

희생자에 대한 추모와 함께 성매매방지법 제정촉구의 자리로 마련된 이 행사에는 개복동화재참사대책위 소속 회원들과 유족들이 참석했다.

지난 1년동안, 개복동 화재 전에 일어났던 대명동 화재참사에 대한 국가배상청구소송 1심에서 일부 승소판결을 받는 기쁨도 있었지만, 개복동 참사의 경우 화재업소 업주만이 실형을 선고받았을 뿐 성매매업소 유착자와 관련경찰비리 의혹 등은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상태.

▲폭설과 추위 때문에 실내에서 치러진 추모행사/이강실 대책위 대표의 추모발언/추모제에 참석한 유족들이 슬픔으로 고개를 떨구고 있다
"희생여성들에게 기필코 성매매방지법 제정을
추모의 선물로"


또 연이어 터진 연초 장수화재참사와 여종업원 4명의 사망. 화재 희생자를 위로하고 성매매 근절을 위한 길은 멀기만 해 보인다.

이강실 대책위 공동대표는 이날 추모집회에서 "1년전 우리 여성들이 힘을 모아 성매매를 근절하겠다는 약속을 했고 그동안 우린 많은 일을 했다. 그래서 국회에서 성매매방지법 통과를 앞두고 있다. 아직 해야 할일이 많지만 어느 정도 성과를 낳았기 때문에 희생당한 여성들에게 조금은 할말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소감을 밝혔다.

이 자리에는 탈성매매 후 성매매여성 인권단체인 새움터에서 활동하고 있는 여성이 함께 행사에 참석해 "이런 사고가 난 것을 TV에서 밖에 못봤지만 이자리에 참석하게 됐고 이렇게 참석한 여러분들이 참 고맙다. 앞으로 더욱 열심히 투쟁할 수 있도록 많은 힘을 모아달라"고 말했다.

대책위 활동을 활발히 벌인 군산여성의전화 회원들이 공동으로 작성한 추모시를 낭독하자 장내는 숙연해졌고 유족들은 흐르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시 전문 아래)

행사가 끝난 후 유족들과 추모제 참석자들은 화재참사가 일어났던 현장까지 행진한 후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헌화했다.

헌화가 끝난 후 몇몇 유족은 예전에 차마 제대로 보지 못했던 화재현장을 다시 돌아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성매매방지법의 제정을 외치는 참석자들


▲화재현장에 헌화하는 참석자들


▲화재현장에 헌화하는 참석자들


▲성매매없는 세상에서 다시 태어나소서...


▲성매매 인권유린 등이 쓰여진 깡통을 짓밟는 퍼포먼스


▲1년 전의 화재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개복동 화재현장



소금꽃
- 개복동 화재 참사 14명의 여성에게 부치는 글


너희 영혼이 바람에 날려
1월의 하늘이 서럽게 우는구나
차마 떠나지 못한 핏빛 억울함이
군산 거리를 이리저리 떠도는구나
내일모레 흰눈이 소복히 쌓이는 설 명절
가슴이 설레는 선물을 들고
총총히 고향으로 찾아가는 걸음을
엄마품에 안겨드는 따스함을
끝내 잃어버린 우리 딸들아
끝내 빼앗겨버린 우리 동생들아

아무리 보고 싶어도 만질수없는 얼굴
목타게 부르짖어도 돌아오지 않는 이름
칼날같은 차가움쏙에 두텁게 쌓여
세상의 억압이 해방되길 기다리는데
이제 이렇게 잊혀지는가
그냥 그렇게 팽개치는가

빛이 없어 암울한 쪽방이 아니라
벽을치고 발버둥쳐도 열리지 않는
철문에 감금된 성노예가 되어
박탈당한 유린이 더 무섭고 소름끼치던 그때
다시는 억울하게 죽어가는 이 없게 하겠노라 다짐했지만

이제 눈을 뜬 사람들도
14명의 아름다운 이름 기억 뒷저리에 묻혀버리고
휘영찬 조명이 가득 채워지는 성매매지역들들
너희 숨져간 그 자리 매캐한 냄새 사라지기 전
처절하게 자유를 그리워하다 절규해
신음조차 연기에 가리우고

보고픈 엄마 아빠, 사랑하는 동생, 친구들
애절함만 가슴속에 담아두고서
감금된 여관에서 다방에서 찜질방에서
가을꽃처럼 떨어져 버린 되풀이되는 참사

죽어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이 자유
쇠창살이 있어야만 거론되는 인권
불법을 행하면서도 점점 뻔뻔스러워
온갖 명목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족쇄
불법 소개업자 이기적인 포주업자와
피비린내 나는 종이 몇장이면
밤새 여성의 성을 사육할 수 있다고
자랑스럽게 웃어대는 성 구매자들
그리고 그들과 결탁하고 비호하는 부패한 공권력 위에

이제 뿌려라 너의 소금꽃
시궁창같은 세상에
썩은내 진동하는 거리에
부패로 얼룩진 저들의 거리 위로
아가리를 벌리고 뿌려라

성매매로 숨지는 영혼 없도록
감금으로 억압받는 세상없도록
죽은 몸으로 성매매 벗는 친구 없도록
더이상 인권유린 진물이 묻어나지 않도록
살아있어 부끄러운 이름을 가진 우리
1년이 되었지만 아무것도 바뀌지 못한 우리 앞에
너의 소금꽃 영혼으로 옷을 입혀라

저들과 적당히 타협하지 않고
죽음앞에 무너졌던 비통함이
불끈 쥔 주먹으로 생생해지기 까지
성매매 없는 세상
부활의 생명을 붙잡고
살아 펄덕이는 평등의 깃발 꽂도록
채워라 너의 소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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