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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어고 유치지역 선정을 둘러싸고 군산과 전주간 유치경쟁이 더욱 가열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 와중에 지역언론은 오히려 소지역주의 갈등을 증폭시킬 뿐 아니라, 외고 유치와 관련 어느 지역에 유치하는 것이 옳은가라는 지역배정문제에만 집중함으로써, 정작 필요한 특수목적고로서의 외국어고 본래의 취지를 살리기 위한 방안 등의 의제 설정에는 전혀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전북일보, 전라일보, 전북도민일보, 새전북신문 등 도내 일간지들은 외국어고 설립문제가 공론화되기 시작한 7월 이후부터 군산과 전주간 유치논쟁이 불거지고 있는 10월 말까지 관련문제에 대해 매체당 평균 20여건 이상의 보도량을 보이고 있다. 초기 신문들의 보도방향은 군산지역에서 추진되고 있는 외국어고 설립운동의 현황을 단순중계하는 방식이 주류를 이루었지만 9월 6일, 장영달, 정동영의원과 김완주시장의 교육인적자원부장관 면담과 전주시의 외국어고 유치선언이 있었던 9월 24일을 계기로 지역간 유치경쟁에 초점을 맞춘 보도를 진행하고 있다.

전라일보의 보도태도

이후 보도된 모든 기사에는 '지역갈등 양상으로 치닫고 있는'이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었고, 표제는 '전주-군산 갈등심화' 등 지역간 갈등을 증폭시키는 제목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런 지역갈등구조는 오히려 언론이 더욱 증폭시켜왔다는 지적이다.

먼저, 전라일보는 9월 7일자 <외국어고 유치지역 대립> 이라는 특집기사에서 "전북 외국어고 설립이 시작단계부터 지자체와 정치권의 이전투구로 소지역주의 양상을 빚고 있어 도민분열등 심각한 부작용이 우려되고 있다"면서 "특히 설립주체인 전북도교육청이 학교설립에 따른 재원조차 마련하지 못한 가운데 지자체와 정치권이 마치 다 된 밥인양 제앞에 상을 차리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지역간 감정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며 지역간 대립구도가 형성되고 있는 외국어고 유치문제를 비판했다.

하지만 이런 전라일보의 비판은 이어진 기사들에 의해 스스로를 무색하게 하고 있다.

전라일보는 9월 25일자 <전주시, 외국어고 유치 본격 선언> 제하의 기사를 통해 '외국어고 설립부지 무상제공'이라는 전주시의 유치입장을 비판없이 게재하면서 두 지역간 갈등양상을 확산시킨데 이어 10월 19일자 <전주시 외국어고 유치노력 물거품 공산>이라는 기사에서는 노골적으로 지역경쟁구도를 증폭시키는 보도태도를 보인다.

"외국어고 설립위치 결정이 내달말로 예정된 가운데 유치를 선언한 전주시의 유치계획이 물거품이 될 공산이 커 비난을 면치못할 것으로 보인다"고 시작된 이 기사에서 전라일보는 "특히 지난 3월부터 시작됐던 군산시의 유치노력보다 훨씬 뒤늦은 9월에서야 시작된 전주시의 유치활동이 최근 시민들과 시가 합세해 펼치고 있는 군산시에 비해 전혀 진전된 결과가 없는 실정이다"면서 "더욱이 도교육청 관계자는 '외국어고 유치를 놓고 자치단체간 감정싸움까지 벌어질 것에 대비해 최종 적합지 선정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며 하지만 시장과 시민들이 함께 나서 유치를 위한 헌신의 노력을 다하고 있는 군산시의 유치노력과 예산확보가 심사 우위확보에서 우선시 되지 않겠냐'고 밝혀 사실상 전주시 유치계획은 물 건너 간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며 전주시를 비판했다.

또한 이틀 후인 22일자 기자수첩 <책임없는 부서장 없다>에서는 전주시가 당면한 현안사업을 둘러싸고 지나치게 무관심하고 무사안일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면서, 외국어고 유치경쟁에서 '지리적 타당성'등의 우위에만 안주한 채 결과만 기다리는 태도를 비판하고 있다.

심지어 10월 30일자 기자수첩 <완주, 외국어고 동참 여론> 에서는 지금까지 침묵하고 있던 완주군의 유치경쟁 참여를 독려하면서 전주-군산간 갈등양상으로 전개되던 유치경쟁에 새로운 지역을 추가시키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더 큰 문제는 완주군의 참여를 독려하는 기사가 스스로 비판해 마지 않았던 지역간 갈등구조 심화문제에 있어, 이율배반적일 뿐만아니라 정치논리를 동원해서라도 이를 관철시켜야 한다는 식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점에 있다.

실제로 기사에서는 "최근 전주시와 군산시가 정치권이 나서는 등 외국어고를 유치하기 위한 자체 유치위원회를 구성하면서까지 발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면서 "그러나, 지리적, 위치적 접근성 등이 뛰어난 완주군은 좀처럼 외국어고에 대한 관심이 미흡한 것 같아 매우 안타깝다"면서 "전주시와 군산시의 몫만은 아닐진데 이들 자치단체의 움직임과는 달리 마치 강건너 불보듯하며 뒷짐만 낀 체 먼산 바라보듯 수수방관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거기다 "뒤늦은 감은 있지만 지금도 늦지 않았다"면서 "그러나, 정치권이 나선다면 우리지역 출신인 김태식 국회부의장을 앞세워서라도 외국어고 유치작전에 돌입하길 기대해 마지 않는다. 지금이라도 당장 자체유치위원회를 구성해 능동적인 대처를 해주길 바란다"고 노골적으로 유치경쟁에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보도태도들은 결국 해당지역의 단체장이나 정치인들로 하여금 외국어고 유치문제를 정치적 문제로, 즉 자신의 지역구 이해관계로 전락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최근 군산지역으로 결정하기로 양해되덨다던 정치권의 논의가 백지상태에서 각 지역간 분쟁으로 이어지는 결정적 요인가운데 하나도 작용하는 셈이다.

전북도민일보와 전북일보의 보도태도

전라일보가 상대적으로 전주시로의 유치에 찬성하는 논조를 펼치면서 전주시를 압박하는데 반해 도민일보와 전북일보는 당초 외국어고 유치노력이 군산지역에서 발생했다는 점과 정치, 경제, 교육 등의 모든 영역에서 전라북도의 중심인 전주로만 모든 것이 몰리는 현상을 제어하기 위해서라도 군산지역에 유치되는 것이 타당하다는 논지의 주장을 펼치고 있다.

전북도민일보의 경우 10월 24일자 <외국어고 유치, 순리대로>에서 '자신에게 유리하게 판단, 행동하는 것을 빗대 흔히 '아전인수'라는 말을 쓴다'면서 전주시의 가세를 아전인수라고 몰아부치고 있다.

전북일보의 경우 아예 사설 등을 통해 이런 주장을 노골적으로 펼치고 있는데, 9월 10일자 사설과 10월 25일자 사설 <외국어고 입지 둘러싼 잡음> 등에서 외국어고 설립 후보지는 군산이어야 한다고 못박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도 역시 외국어고 설립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학교를 운영하느냐 등 외국어고 설립문제에서 정작 중요하게 취급되어야 할 의제설정에는 소홀히 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외국어고의 문제점이 제대로 논의되지 않아

현재 외국어고 설립문제에서 전혀 거론되지 않고 있는 것은 과연 외국어고가 정말 필요한가, 또는 바람직한 외국어고 운영을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등의 문제일 것이다. 실제로 고교평준화 정책이 추진되고 있는 조건에서 특목고 설립확대에 따른 전북외국어고 유치는 입시경쟁을 부추기고 고교평준화를 사실상 포기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또한 형행 대학입시 제도하에서는 외국어고가 설립된다해도 본래의 목적대로 교육과정이 운영될 수 없어 파행운영이 불가피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특성화라는 본래 취지는 무시된 채 입시용으로 활용되는 타지역 외국어고의 사례를 볼 때, 해결해야 할 문제가 더 많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

하지만 이와 관련한 도내 언론의 보도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전북도민일보가 작년 4월에 <전북외국어고 설립 '찬반논란'>에서 거론한 것을 제외하고, 외국어고 설립문제가 본격화된 올 들어서 이와같은 보도를 한 곳은 단 한곳도 없다는 점은 현재 지역언론이 이번 외국어고 설립문제와 관련 의제설정을 잘못하고 있다는 반증인 셈이다.

사실 어느 지역에 유치해야 되느냐 하는 점은 별반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데 대부분이 동의하고 있는 실정이다. 학생전원이 기숙사생활을 하는 등 지리적 접근성 등은 별반 문제가 될 것이 없는 상태이고, 전주나 군산 모두 각각의 입장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언론의 보도는 정작 필요한 외국어고의 필요이유와 현재 타지역 외국어고가 운영되고 있는 실태에 대한 진단,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제기되는 문제에 대해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의 문제를 중심으로 점검되고 검토되어야 마땅한 일일 것이다. 그것이 올바른 지역언론의 의제설정기능일 것이다.

설령 어느 지역에 유치해야 되냐는 문제가 불거진 마당에서 이와 관련한 보도가 필요하다면 지금처럼 특정지역을 편든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마치 전주신문이나 군산신문을 모는 듯한)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를 할 수 있는 심의위원회 구성 등에 초점을 맞춰 보도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 될 것이다.

언론이 언론으로서의 제 기능을 제대로 행사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가진 영향력을 사회전체의 이익과 발전방향에 부합되는 의제를 찾아 발굴하고 대안을 제시하는데 사용하는 것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 지금부터라도 과연 우리지역에 외국어고가 왜 필요한지, 그리고 설립되는 외국어고는 어떻게 운영되어야 하는지 진지하게 검토하고 넘어가는 보도태도가 필요할 것이다.

기껏 유치경쟁을 통해 만들어놓고 단순히 입시경쟁의 도구로 전락하던가, 효과적인 투자가 진행되지 못한채 일반고로의 전환을 고민하는 일부지역의 특목고와 같은 운명에 처한다든지 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기 때문이다.


전북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박민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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