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뉴스

아는 후배가 나에게 선물해주고 싶은 책이 있다며 가난뱅이의 역습을 선물해 주었다. 책 머리에는 “마쓰모토 하지메 이야기를 듣는데 순간, 선배가 떠올라”라고 쓰여 있었다.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오히려 갈수록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말로만 자유인처럼 떠들고, 내 또래 사람들과 나를 비교하거나 그런 비교에 괜히 신경 쓰면서 스트레스를 받는 것 등 요즘 내 생활과 일치하지 않는 나의 말 때문에 부담스러워진 것이다.

마쓰모토 하지메는 나보다 한 살 적은 74년생이다. 그러나 일본이라는 나라는 한국보다 10년 정도 앞선다고 하니 이제 한국에서도 마쓰모토 하지메가 나타날 순간이 된 것 같다.

IMF 이후 10년의 불황 속에서 88만원세대로 살아가고 있는 젊은이들이 바로 마쓰모토 하지메의 탄생 배경이지 않을까?

마쓰모토 하지메의 생활이 어떤 독특한 한 젊은이의 생활양식에 불과한 것인가? 아니면 소비와 욕망의 재생산이라는 자본주의에 맞서는 적극적 저항인가?

저자는 자신의 삶에 어떤 저항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듯하다. 물론 나또한 강제적으로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단순히 어떤 독특한 젊은이의 생활양식이 있다는 것을 굳이 책으로 써내는 이유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것은 한 젊은이의 생활양식이 아니라 저항이며 삶의 재구성이다.

이상하고 불합리한 환경 속에서 봉준호 감독의 괴물 같은 변종만 생기는 것이 아니다. 마쓰모토 하지메는 혹시 변종이 아닐까? 너무나 반가운 변종 말이다. 마쓰모토 하지메 같은 변종이 넘쳐난다면 어떻게 될까? 상상만해도 즐겁다.

당위와 목적에 사로잡히지 않고 자연 선택과 적응을 통한 인간의 진화가 아닐까? 당당한 가난뱅이~ 즐거운 가난뱅이~ 함께 쓰고 재활용하는 것에서 전혀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 인간의 탄생~

혹시 인간은 이성을 통해 진화한 것이 아니라 이성이 진화를 방해하는 가장 큰 장애가 되어 버린 건 아닐까? 마쓰모토 하지메는 이런 통념에 삶으로 유쾌하게 저항하는 사람이다. 더 많은 마쓰모토 하지메가 많아지도록 나도 그의 친구가 되어야겠다.


[덧붙임] 전북평화와인권연대 소식지에 실린 글입니다. 유기만 님은 전북평화와인권연대 후원회원입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