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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는 고시원이 많다. 일터가 있는 사람들과 일터를 갖기위한 사람들. 그리고 맘편히 등댈 곳없는 사람들. 그나마 그런 사람들 중 조금은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고시원을 찾는다.

어머니는 처음 서울에 오셔서 이일저일 안해본 일 없고 안들어본 소리 없을 정도로 많은 일을 하셨다. 그렇다고 삶을 풍족하게 만드는 돈을 벌어온 것도 아니다. 이것저것 하시면서 그나마 있던 가계까지 탕진해나갈 즈음해서 시작한 일이 이 곳 고시원 운영이다.

이른 아침 일찍 일어나셔서 청소를 하고 밥을 하고 국을 끊이신다. 그나마 서울에서 찾은 가장 안정된 직업이 바로 이것이다. 오빠의 도움을 받아 운영하고 있는 이 곳 고시원엔 두달에 한번쯤 시골스런 막내딸이 방문한다. 그 딸은 어머니가 기거하는 조그만 공간 바닥에 이불을 깔고 엄마품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잠자리를 갖는다.

아침엔 일어나기 전에 먼저 가져온 아침밥을 놓고 눈을 부비면서 식사를 한다. 그리고 정신이 날때쯤 그리 먹음직스럽지 않은 수박이 온다. 겨우겨우 한입을 베어물었더니. 갑자기 막내딸 손에 든 수박을 낚아채듯 당신이 든 수박과 바꿔치기하신다.

놀란 막내딸. "엄마~" 하고 어이없이 부른다. "왜그러는대요. 왜 먹는 것을 뺏어가는대요..."

어머니는 수박이 조금 금이 갔다고 하시면서 당신이 드신다고 하신다. 왜 딸한테는 안먹이면서 당신은 드시냐고 물었다.

"원래 엄마들은 다 그러는 것이란다..."
"에이. 엄마 솔직히 말해봐. 엄마 나 사랑하지....엉. 그렇지..에이 말해봐 말해봐..."


하며 막내딸 넉살을 떨며 엄마의 대답을 채근하다.

"내가 뭐 너를 사랑해서 그냐? 미워도 원래 모성애라는 것이 그러는 것이여. 내 속으로 나서 모성애가 발동을 하는 것이고 그것은 본능인 것잉게.."
"엥 그거시 뭔말이여. 그거시 나를 사랑한단 말이여 뭐여..."
"모릉게 얼렁 수박이나 먹어"


60을 넘긴 지 근 2년이 지났음에도 어머니의 얼굴엔 어린 소녀의 해맑은 웃음으로 가득하다. 어쩜 우리 어머니는 이처럼 아름다우실 수 있을까? 세상의 어머니는 다 그런가 보다. 못된 막내딸 엄마 이쁘다는 생각 들 때쯤 또 볼멘소리 한번 한다.

"근데 왜 나는 이렇게 못생기게 나논거여...웬만하면 자기 닮은 이쁜 딸 좀 낳지 그렸어...앙?"


Ⅰ. 2003년 7월 19일 , 비 개인 영등포

오랫만에 만난 어머니와 딸의 흐뭇한 아침 시간은 이렇게 채워진다. 퍼먹고 잠만 잔다고 오랫만에 반가운 잔소리를 들어보고 아 이런 잔소리 매일매일 듣고 싶다며 나중에 충분히 후회하고도 남는 바램 한번 가져본다. ^^*

하루종일을 자다가 꿈속에서 악당들을 만나 총을 쏘는데....글쎄 총알 넣는 법도 모르고 넣고 나서 쏘는 법도 몰라서 계속 헤리다가 잠에서 깼다. 언니랑 조카가 놀러오는 바람에 일어났다.

세살백이 조카가 갓일어나서 괴물이 되어버린 이모를 보고 놀라 멈칫한다. 몇달 사이에 뚱보가 되어버린 여동생을 갈구고 살빼라며 구체적인 방법까지 제시하면서 그렇게 언니와의 간만의 만남은 살찐 여동생의 참회의 시간으로 메워졌다. 약속했다.

그러고보니 엄마가 나 자는 사이 영등포역 근처 롯데백화점을 왔다갔다 하셨나 보다. 갑작스레 불어버린 막내딸의 외모를 감당하지 못하고 어떻게 한번 옷으로 가려볼까 맘을 먹은 모양이신데 바로 그것으로는 안된다는 것을 깨달으셨는지.....

아, 어머니 예전의 나의 모습을 상상하신다. 안뚱뚱해서 예뻤던 적이 언제였냐고 물었더니 초등학교를 갓졸업하고 중학교 들어갈 즈음이었다고 한다. 어찌나 이뻤던지 내가 낳은 딸 맞나하고 한참을 황홀경에 빠져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그 모습을 찾을 수 없이 나이만 먹어가는 딸의 모습에 자신이 많이 슬프신가 보다.

공원 가는 길에 조카는 언니의 손을 놓치 않는다. 이모가 한번 잡을락치면 금새 언니품으로 도망가 버린다. 어머니의 손을 덥썩 잡아 본다. 비둘기들에게 밥을 주며 즐거워하는 조카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흐뭇해진다.

비개인 후임에도 맑지 않은 하늘, 언니는 하늘이 맑은 곳에서 살고 싶다며 귀가를 재촉한다. 언니 배웅해주고 오는 길에 천원짜리 무우를 사서 그간 계속 해보고 싶었던 깍뚜기를 담가본다. 정말 맛있다. 으하하. 아버지 한통드리고 어머니 한통 드리고 한통은 사무실에서 도시락 까먹을 때 먹을 요랑이다. 어머니한테 드리는 이 한통은 고시원에 있는 분들도 드신다. 방금 담그면서 늦은 저녁을 라면과 함께하는 30대 후반의 이름모를 언니에게도 한접시 권해본다..


어머니의 앞니

어머니는 나름대로 하시는 일에 보람을 느끼신다. 객지에 사는 적지않은 이들에게 집같이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고 싶다....으하하...이 막내딸년 버리고 서울로 올라가버린 어머니의 말씀이시다. 그나마 이렇게라도 보람을 느끼시는 바람에 비록 내가 버림은 당했지만 꾹 참고 웃으면서 살고 있다.

어머니 앞니 하나가 빠지셨다. 전주에 내려가면 적금 부은 걸 깨려고 한다. 사람이 어눌하다보니 돈을 빌려줘버렸는데 그 돈 포기하는 것이 낫겠다 싶어 적금을 깨서 갚으려고 한다. 적금 깨서 어머니 이 해드리려고 한다. 엄마가 늙으면 다 빠진다고 하신다고 극구 거절을 하시는데.. 나는 이렇게 조건을 걸어 본다.

"엄마. 이빨 허믄 나도 살뺀다. 안허믄 안빼고 더 쪄불릴랑게나....앙? 돈을 주고 하라고 해도 안허믄 어찐대요..."

했더니 바로 빠진 이빨 꺼멓게 드러내보이며 하신다고 하신다. ^^*

어느새 밤 12시가 가까운 시간, 옆에서 오빠와 엄마는 늦은 저녁을 하신다. 나? 전 깍뚜기 담그면서 그거 먹으면서 배채우고 그것도 모질라 오이 한 개로 배를 채운다. 지금부터 어머니의 화려한 앞니를 위하여 실천에 들어간다.

뭐든지 사소한 일도 이렇게 의미를 부여하면 비장해지고 즐거워진다. ^^*

하고픈 말이 많은가 보다. 간만에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엄마를 만나 이렇게 행복한가 보다. 나도 엄마가 느끼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랑을 느껴보고 싶다. 언제쯤 그럴 수 있을까?

바램이다. 세상에서 제일 위대한 사랑을 실천하고픈 바램!

아. 그러고보니 노처녀, 어머니 만나면 당연히 하는 야그를 안했군요. 내가 그랬다. 엄마 나 믿어 안믿어 나만 믿고 이제 그만 나좀 괴롭혀....왜 안본다는 선을 자꾸 보라는 거야..결국 내 있지도 않은 능력을 과시하니까 어머니 웃으시면서 알았다 그믄 내가 너를 귀찮게하지 않으마..그러신다.

아. 나이가 꽉 차니 맘을 긁는 게 너무 많다. 주위 분들의 걱정이 산을 이루고도 남는다. 정작 당사자인 나는 그 산을 오르고 있는데도 말이다.

연일 비가 내린다. 부유하는 마음들 꼭 챙겨야겠다.


- 이어진 기사 : [어머니, 당신을 사랑합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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