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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생활] 습관

여은정( 1) 2003.07.29 23:08 추천:3

사람마다 습관이 있다. 나는 술 마시면 꼭 걸어서 집에 가는 습관이 있다. 아무리 멀어도. 휘황찬란한 도시의 한 중심을 터벅 터벅 걸어서 - 이 습관은 대학 때부터 생겼다. 차비가 없어서 걸어 다닌 게 지금은 습관이 돼서 그냥 별일이 없으면 아무리 늦은 시간이라도 술을 마시면 밤거리를 걷는 것을 즐긴다.

물론 이것은 전주에서 술 마실 때 보통 그렇다는 것이다. 군산에서는 술 마시고 그렇게 가기란 쉽지 않다. 왜냐면 집으로 가는 빠른 길이 사람이 드문 월명산의 한 자락인 산책로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내가 겁이 없고 얼굴이 무기라 해도 한 밤중에 그곳을 즐길 만큼은 아니다. 물론 가끔 미친 듯이 걷고 싶을 때는 그냥 걸어서 가기도 하지만 사실은 무섭다. 어둠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사람이 무섭다.

수많은 아담들에 대한 괴담들을 익히 들어오고 겪어온 터라 밤중에 낯선 남자와 마주치는 것은 아무리 안 그런 척 해도 두렵다.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있는 것 같아"

어제는 한 선배랑 기분 좋게 술을 마시고 습관대로 걸어서 집에 갔다. 술 자리에서 오간 얘기들 중 기억에 남는 말을 곱씹으며...

"넌 너무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있는 것 같아."
남들을 볼 줄 아는 마음, 호기심이 없으면 그 어떤 것도 재미가 없다고. 선배의 그 말이 내 맘속에 들어왔다. 그 말은 전혀 서운하지도 뜨끔하지도 않았다. 선배가 지금의 내 상태를 정확히 본 것이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아니까.

사회에 처음 나왔을 때 나는 참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사람에 대한 관심도 많고, 배우고 싶은 것도 많고...해서 늘 술자리든 뭐든 빠지지 않으려 했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꼭 아는 체를 하고 이름을 기억하려고 노력하면서 나 자신을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무던히도 애썼다. 하지만 조금씩 조직과 사회의 생리를 알게 되면서 그럴 필요를 거의 못 느끼게 되었다.

그렇게 자신을 드러내려고 하는 것이 아무 의미도 없는 것처럼 느껴졌고 그런 생각이 들자 금새 모든 것이 시시하게 느껴졌다. 즐겁게 여겨졌던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어느새 어색하고 불편한 것으로 여겨졌고 때로는 구태의연한 절차를 중요시 하는 그런 속성들이 지겨워 차라리 눈에 띄지 않게 살아가는 것이 오히려 낫겠다 싶었다.

나의 오만은 드디어 사람들은 시간만 흘렀다 뿐 늘 그곳에 비슷한 생각으로 머물러 있다는 데까지 이르렀고 그런 멈춤은 나에게 참기 힘든 답답함으로 느껴졌다.


새로운 것을 찾는 습관

그래서였을까? 나는 새로운 것을 찾고 있었다. 나에게 신선한 자극이 될 만한 나를 들뜨게 하고 나에게 설레임을 줄 만한 그 어떤 것을 찾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찾게 된 것이 지금 내가 배우고 있는 암벽 등반이다.
황석영의 입석부근이라는 소설 속의 한 문장을 빌려 말하자면 [내게는 자신을 잊을 정도의 강렬한 몸짓만이 평온한 마음을 가져다 주는 것이었다] 가 가장 적절한 표현이 될 것이다.

암벽등반은 생각했던 것보다는 쉽지 않다. 기초체력도 있어야 하고 운동도 꾸준히 해야 한다. 몸만큼 정직한 것은 없다고 운동을 하는 만큼 실력도 는다. 물론 난 아직 왕초보라 기초체력을 키우고 있는데도 헥헥 댄다. 그러나 언젠가는 바위에 오르면서 진정한 자신을 만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습관이 된다는 것은 위험하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어떤 흥미도 느끼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면 더더군다나. 자신만의 세계에 빠지는 것도 위험하지만 너무 넘의 세계에만 끌려 다니는 것도 위험하진 않을까?


"지금은 내가 나만의 세계를 만들기 위하여 싸우고 있는 시간이다. 눈에 보이는 세계가 아닌, 가슴 속 깊숙한 곳 어디선가 들려오는 내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인 것이다. 그런데 가끔 친구들의 시끄러운 소리가 밑에서 들려오면, 내 이런 탐색은 산산이 깨어져 버렸다. 그 소리는 이런 외로운 시간 위에 던져진 나를 깨우쳐 주고, 내가 자유스러운 것과 나 밖에는 믿을 곳이 없다는 불안감을 느끼게 했다. 다음엔 자꾸 초조해 지는 것이었다. 외계에서 들려오는 소리들은 자신을 깨닫게 하고, 그러면 움직여야 한다던 마음이 약해질까 두려웠다. 내게는 자신을 잊을 정도의 강렬한 몸짓만이 평온한 마음을 가져다 주는 것이었다."
- 황석영의 立石附近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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