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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을 벼르고 벼른 끝에 드디어 이번 휴가는 안면도행으로 결정했다. 참으로 모처럼만에 가보는 여름 해수욕장이다.

그런데도 젊은 날(?) 그때처럼 바닷물에 몸을 담고 물장난을 치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았다. 그보다는 아이들에게 어떤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해줄까 하는 생각이 앞서기만 했다. 그에 대한 해답은 여름 피서지를 소개해주는 신문에서 찾을 수 있었다.

마음에 뒀던 안면도행을 결정한 며칠 후, 신문을 뒤적거리던 찰라 눈에 번쩍 뜨이는 기사가 있었다. 안면도 해수욕장에 대한 소개가 있었고 그 가운데 몇몇 해수욕장에 가면 해수욕 말고 약간의 준비만으로 또 다른 재미(?), 다시말해 조개나 맛, 낙지를 맨손으로 잡을 수 있다는 기사였다. 그거였다.


한여름 땡볕에 짜디짠 바닷물, 후회가 고개를 내밀고...

휴가 물품을 준비를 하면서 후레쉬도 구입했다. 한밤중 물 빠진 갯벌에서 조개를 잡기위한 필수품 중에 하나였다. 집에 있던 미니 야전삽도 휴가품목에 첨가했다. 아들놈이 둘이니, 야전삽 외에 다른 도구도 함께 종이에 싸서 차에 실었다. 여름 바닷가에서 색다른 재미를 만끽하기 위한 준비는 대충 끝난 셈이었다.

서해안고속도로를 한시간 40분여를 달려 한달여전에 예약한 민박집에 들어 섰다. 벌써부터 2박3일간 뙤약볕 아래서 고생할 일이 아득하기만 했다. 괜히 여름 휴가를, 한여름 땡볕과 짜디짠 바닷물이 넘실대는 바다로 정했는가 하는 후회(?)가 고개를 들기도 했다.

인천에서 내려오는 동생가족도 곧 도착한다는 전화가 걸려왔고 곧이어, 동생 가족이 민박집에 도착했다. 동생 역시, 여름 휴가를 모든 게 불편하게만 느껴지는 바닷가에서 보낼 일이 걱정스럽기만 한 표정였다. 별로 달갑지 않은 표정을 속으로 읽으면서, 어차피 해변으로 왔으니 고생하다 가라는 말로 대충 얼버무렸다.

아침 일찍 출발하면서 허기진 배를 우선 준비해간 고기로 채우고
아이들 채근(?)에 끌려 한참이나 저 멀리 물이 빠져버린 바다로 걸어 나갔다.


갯벌 속 숨은 조개 찾기

오후 2시가 넘어 버린 방포 해수욕장은, 썰물과 밀물이 무엇인지 보여주려는 듯, 한참이나 걸어서야 물에 발을 담글 수 있었다. 그런데, 바다를 찾은 많은 사람들이 해수욕은 관심이 없는 듯, 허리를 구부정하게 구부리고 무언가 주어들고 있었다.

조개였다. 우리도 준비해 간 야전삽과 도구를 이용해 갯벌 속에 숨어 있는 조개를 찾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엄지 손가락보다 약간 적은 조개가 그렇게도 쉽게 잡혔다. 아니 잡힌게 아니라 주워 담았다고 해야 한다. 좀 심하게 표현하면 조금만 조개잡이에 열중하면 피서객이면, 한 보따리씩 잡았다고 표현해야 한다.

방포해수욕장에 도착하기 전만해도 그렇게 쉽게 조개를 잡을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더 많았지만, 어업에 종사해보지 않은 순수한(?) 피서객 입장에서 이토록 쉽게 수많은 조개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실감도 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걱정이 앞섰다.
이 많은 사람들이 날이면 날마다 이렇게 잡아대면 조개가 남아 날까하는 걱정도 들 정도였다.


방포에는 맛도 있었다

이튿날, 안면 자연휴양림에 잠간 들린 후에 다시 물놀이에 나섰다. 어른들은 역시 조개를 잡아 저녁, 된장찌개 거리로 사용하자는 의견일치를 보고, 도구를 준비해서 바다로 나갔다.

그런데, 어떤 남자가 바닷물속에 쪼그린 상태로 몸을 담고 열심히 조개를 주워 담고 있었다. 물 빠진 갯벌에서만 잡는 것으로 알았던 조개잡이가 물속에 들어와서는 더 쉽게 잡히고 있었던 것이다. 도구도 필요없이 손가락만을 이용해서 주워 담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 부부가 하루종일 잡았다는 맛

방포해수욕장에서 엉거주춤한 폼으로(마치 바닷물에 실례를 하는 폼) 물속에 앉아 있는 사람은 영락없이 손으로 조개를 긁어 담는 사람들이다. 우리도 금새 저녁 된장찌개용으로 사용하고도 충분히 남을 만큼 잡았다. 개수로 따지면 수백개 이상이다.

방포해수욕장은 좌,우가 선명하게 구별돼 있었다. 그러다가, 아내와 동생 내외가 방포 해수욕장 바로 옆에 있는 꽃지해수욕장에 걸어서 다녀 온다며 바다를 바라보면서 방포해수욕장 왼편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곧 걸음을 멈추더니 한참이나 뭔가를 살피고 있었다.

멀리서 봐도 주위에는 많은 사람들이 관심있게 뭔가를 지켜 보고 있었다. 맛(길쭉한 조개) 잡이 하는 모습였던 것이다.

갯벌을 삽으로 약간 퍼 내면 비스듬한 구멍이 나타나고 그 비스듬한 구멍에 맛소금을 조금 뿌리면 구멍속에 숨어 있던 맛이 순간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는데, 그 순간에 맛을 잡아 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 사라지는지 모르게 맛은 흔적을 감추게 된다. 그러니 맛을 잡는 쾌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짜릿하다.


좌 '조개', 우 '맛'. 선명하게 구분된 방포해수욕장

방포해수욕장에는 바다를 바라보면서 왼편에서는 조개만 잡히고, 오른편 갯벌에서는 맛만 잡혔던 것이다. 해수욕장 길이가 채 1KM도 안되는 방포해수욕장에서, 사람들은 절반으로 딱 자른 양편 5백미터 구간에서 이쪽과 저쪽 해변에서 잡히는 어패류가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오른편에서는 조개만 잡고, 왼편에서는 맛만 잡고 있었던 것이다.

어제 조개를 잡은 피서객은 오늘도 그 자리에 가서 조개만 잡고, 어제 맛을 잡은 사람은 오늘도 그 자리에 가서 맛만 잡는 것이다. 누구도 이쪽 갯벌에는 조개가 있고, 저쪽 갯벌에는 맛이 있다, 라고 얘기 해주는 사람도 없었다.

▲한 밤에 맛을 캐기위해 열중하는 가족들

그날 낮에 어떤 선수(?)가 맛조개를 수없이 잡는 광경을 목격한 우리는 물이 빠지는 새벽 1시쯤, 휴가품목으로 준비한 후레쉬와 큰 봉투를 들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부푼 맘을 안고 한밤, 해변으로 나갔다. 이번에는 분명히 해변의 좌편, 왼편 갯벌을 향해 보무도 당당하게 걸어 갔다. 이 봉투에 가득 담는다며 맛있게 구워 먹을 수 도 있겠다는 생각도 은근히 하면서 말이다.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40여분 이상 갯벌을 파헤쳐 봤지만, 한 마리도 낚아 챌 수 없었다. 야전삽을 든 손이 아플 정도로 갯벌을 파헤쳐 봤지만, 맛을 구경할 수 없었다.


실패로 돌아간 한밤의 '맛' 잡이

어떤 부부가 옆으로 다가와서 자신들이 하루동일 잡았다는 맛을 보여 줬다. 그 부부의 실적도 영 형편없었다. 낮에 본 그 사람은 어떤 재주가 있어서, 그렇게도 많이 맛을 잡았을까? 사람들이 원망스러웠다. 낮에 모두 잡아 버린 탓일까? 아니, 우리는 이 비좁은 해수욕장에서 어떻게 바로 옆에서는 맛있는 맛이 잡히는 줄도 모르고 별 맛도 없다는 조개만 잡고 있었을까?

저녁 된장찌개 용으로 사용하려던 조개는 모두 방생해준 상태라 더욱 허탈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결국, 한 마리의 맛도 잡지 못한 채, 숙소로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맛은 우리에게 잡는 순간의 쾌감을 허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사람이란 게 참으로 묘한 거구나,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떻게 사람은 자기가 하던 일만 하려고 하는지, 또 자기가 가본 곳만 갈려고 하는지, 조금만 눈을 돌리면 그보다 더 신기한 세상, 도전할만한 세상이 펼쳐져 있는데, 참으로 안타깝구나.

몇 년전 충남 서천 비인해변에서 잡았던 맛 생각이 간절했다. 그렇다, 방포에는 조개도 있고 맛도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한 해수욕장 갯벌에서 칼로 자른 듯, 왼편과 오른편 갯벌에서 잡히는 어패류가 그렇게도 차이가 있을까?

비록 한 마리의 맛도 우리 손으로 잡지 못하고 구경은 못했지만,
시도를 해봤다는 것으로 스스로의 위안을 삼아야 했다. 내년에는, 아니 다음에 다시 온다면 그때는 먼저 맛을 잡아야지 하는
생각을 남기면서 방포를 떠났다.


▲방포해수욕장의 밤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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