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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는 모든 것이 단순해진다 풀과 나무가 제 몸 깊은 곳 초록의 속살을 자랑스레 내보이듯 마음아, 거추장스런 옷을 벗어라 그리고 삶의 비어 있는 중심을 향해 곧장 달려가 여름의 벼락치는 시인이 되어 보자’

김용옥(56) 곽진구(48) 안도현(43) 문금옥(47) 시인에게, ‘뜬금없이’ 요즘 읽고 있는 시집을 물어봤다. 올해 가장 더웠다는 그 날, 시인들은 ‘무례한’ 요구에 흔쾌하게 응답했다. 가쁜 물살에 묻혔다 나타났다 하는, 징검다리 같은 시들로….

김용옥·안도현 시인이 먼저 권한 시집은 ‘한 권에 좋은 시 두 세 편만 건져도 본전’이라는 풍설을 잊게 한다.

김용옥 시인이 “한 편씩 아껴가며 보는 것이 더 좋다”고 소개한 시집은, 중견과 신인을 아우른 시인 2백25명이 ‘사랑 시’라는 이름 아래 만난 ‘별에서 길어 올린 사랑 시’(우리 글을 사랑하는 사람들 엮음·북피디닷컴)다. 색감과 분위기에 따라 사계절로 장을 나눠, 따사롭고 강렬하고 쓸쓸하고 가슴 시린 시편들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시집. 시인은 “부부나 가족이 서로 읽어주는 것도 좋을 것 같다”며, 부부싸움을 하고 찾아온 후배에게 사랑 시 한편을 소개해 화해를 시켰던 일화를 들려주기도 했다.

쉴새없이 나열한 신작시집 중에서 안도현 시인이 먼저 꼽은 것도 여백이 많은 시편들을 모은 ‘여름아, 옷을 벗어라’(시와시학사)다. 문학평론가 김화영씨가 ‘느낌표’(정현종) ‘빈자리가 필요하다’(오규원) ‘멍게’(최승호) ‘기다림’(곽재구) ‘아주 가까운 피안’(황지우) ‘오후 세시의 추억’(남진우) ‘숲 속에서’(오탁번) 등 여름색이 청연한 41편의 시에 그림과 평을 곁들인 시집이다. 책을 펼치면 극도로 압축한 뒤 시치미를 뚝 떼는 푸른 시편들과 휘파람 소리 같은 경쾌한 단상이 빛을 발한다.

두 시인은 진펄밭의 갯내음과 전라도의 미학이 담긴 ‘수저통에 비치는 저녁 노을’(송수권·시와시학사)과 ‘아, 입이 없는 것들’(이성복·문학과지성사) ‘호랑이 발자국’(손택수·창작과비평사) ‘상처가 스민다는 것’(강미정·천년의시작)도 함께 소개했다.

문금옥 시인은 다시 한번 꺼내 보게 되는 책이라며 ‘무궁화, 너는 좋겠다’(나혜경·문학과경계) ‘동백 숲에 길을 묻다’(김선태·세계사) ‘그늘을 밀어내지 않는다’(이진수·시와시학사) 등을 소개했다. 특히 요즘 읽고 있는 복효근 시인의 시집‘누우떼가 강을 건너는 법’(문학과경계)은 “평범한 일상에 자신의 삶을 접합시켜 형상화하는 시인의 서정에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곽진구 시인이 “책상에 꽂아 놓고 늘 보고 있다”며 권한 시집은 박재삼 시인의 ‘울음이 타는 가을강’(미래사). 시인은 ‘평상에 팔베개하고 누워 하늘을 바라보는 시인의 하안거(夏安居), 그 한순간’(‘맑은 하늘 한복판’부분)을 보는 모양이다. 이미 절판돼 구하기 쉽지 않지만, 헌 책방을 유심히 살피면 행운을 얻을 수도 있다. 곽 시인은 또 ‘정지용 전집 1·2’(민음사)에 담긴 우리말의 고유한 미적 순수와 정서를 토해낸 서정에도 잠겨볼 것을 권했다.

네 명의 시인이 권해준 시집에는 부안 채석강가에 거주하는 송수권 시인과 복효근(남원출신)·나혜경(김제출신)·김선태(원광대 대학원) 등 이 지역과 관련된 시인들의 작품이 포함돼 더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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