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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전북연극 탄탄한 역량 재확인

토로( 1) 2003.06.30 13:29 추천:1

제 21회 전국연극제에서 전북대표로 참가한 극단 창작극회(대표 류경호)가 대상(대통령상)을 수상했다. 전북 극단이 대통령상을 수상한 것은 극단 황토의 '물보라-86년'와 '오장군의 발톱-89년’, 극단 창작극회의 '꼭두 꼭두-93년' 에 이어 네 번째.

특히 올해는 이례적으로 연출상(류경호)과 희곡상(최기우), 연기상(김순자)까지 휩쓰는 경사까지 겹쳐 전북연극의 탄탄한 역량과 전통이 다시 한번 확인됐다.

‘상봉’은 북송된 비전향수 아들을 가진 노인 ‘필순’과 남편을 전쟁으로 잃고 두아들 마저 북한에 빼앗겼다고 믿어온 노인 ‘분녀’의 반목과 갈등을 통해 개인에게 씌어진 정당하지 못한 역사의 굴레를 형상화한 작품.

남북관계가 일대 전환기에 있고, 이데올로기 대립을 초월하는 화해의 정신이 높아지고 있는 이 시점에서 ‘사회를 향한 강한 메시지가 돋보였다’는 평을 받았다.

'마음으로 모인 마당, 몸짓으로 푸는 축제'를 슬로건으로 전국 각지역의 15개 대표 극단이 참가한 올해 연극제에서는 이밖에도 금상은 충남 젊은무대(천도헌향가)와 강원 굴렁쇠·오름(택시드라이벌)이 수상했으며, 은상은 대구 온누리(진땀흘리기)와 울산극단(천년의 수인) 충북의 청년극장(달의 안해) 경북의 은하(불의 가면)가 각각 차지했다.

한국문화예술진흥원과 한국연극협회가 공동주최, 지난 6월 12일부터 30일까지 충남 공주에서 열린 전국연극제는 연극제 사상 가장 인구가 적은 소도시와 가장 긴 개최기간이란 특성에도 불구하고 객석이 연일 만원을 이루는 등 높은 관객 열기로 관심을 모았다.

창작극회는 30일 오전 열린 시상식에서 대상과 2천만원의 상금을 받았다.


제21회 전국연극제서 대통령상 받은 창작극회 '상봉'

제 21회 전국연극제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한 전북 극단 창작극회의 '상봉'(류경호 연출 최기우 작).

'두할머니의 연기가 정말 가슴아플 정도로 와닿았어요.'(관람객) '지금까지 본 연극 중 최고의 선택이었습니다'(짱) '아픈 역사를 깔끔하게 표현했던 무대가 기억나는군요'(순천 남)

극단 창작극회의 전국연극제 참가작 '상봉'을 본 관객들이 전국연극제 홈페이지에 올려놓은 반응은 뜨거웠다.

12일부터 30일까지 21회 연극제의 긴 여정동안 연일 객석은 만원사례를 연출했지만 '상봉'을 만난 현장 관객들의 호평은 특별했다. 심사위원들도 '수작이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전제를 붙이긴 했지만 '좌우 이데올로기의 갈등이 우리 삶에 끼친 고통을 정면으로 다루려 했다는 의미와 바로 이 시점의 우리 사회정서로 볼 때 그 작품 의도에 있어 어필하는 힘이 컸다'고 평가했다.

전북의 극단이 전국연극제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한 것은 이번이 네 번째. 극단 황토가 86년과 89년에, 극단 창작극회가 93년에 이어 올해 대상의 기쁨을 안았다.

이미 전북연극제를 통해 관객들과 만났던 '상봉'은 작품성과 시의를 잘 살린 주제 선택 등에서 큰 상이 기대됐던 작품.


시의성 살린 주제 선택 관객 '공감'
분단역사 어필하는 메시지 '주목'


담담하게 극을 진행하면서 관객들 스스로 메시지를 읽게 하는 류경호 대표의 깔끔한 연출과 돋보인 배우들의 화술, 주제를 잘 형상화한 탄탄한 작품성이 조화를 이루었던 덕분이다.

이 작품은 젊은 사람들이 떠나간 전형적인 시골. 비전향수인 아들을 둔 망백을 넘긴 노인 필순과 전쟁으로 남편을 잃고, 큰아들과 작은아들도 '빨갱이들' 때문에 잃었다는 원망을 가슴에 안고 살아가는 분녀의 대립적인 삶과 상흔을 다루고 있다.

전쟁을 겪은 세대와 젊은 세대들의 삶이 폭넓게 교차하는 작품이어서 중견배우들의 참여 폭이 요구됐던 이 작품은 그 때문에 극단이 가장 큰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창작극회의 단원 중 상당수가 전주시립극단에 소속되어 있어 출연 배우들을 확보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무대를 떠나있던 김순자씨를 비롯해 여건상 무대 출연이 어려운 홍석찬 김영주씨가 나섰고, 김기홍 유영규씨 등 전북연극협회 회장을 역임했던 중진들이 단역을 마다하지 않고 힘을 보탰다. 이런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는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고, 필순역의 김순자씨가 연기상을 수상하는 기쁨까지 안았다.

필순의 상대역인 분녀역을 맡은 이혜지씨도 주목을 끌었던 배우. 올해로 연기 경력 3년차의 신인인 이씨를 기용한 류대표는 '신인과 중견배우의 연기 조화를 이어내는 것이 한편으로 모험이었지만 기대 이상으로 열연해 연출자의 의도를 확실하게 살려 냈다'고 소개했다.

연기자 발굴과 함께 '상봉'이 가져온 수확은 또 있다. 창작극 부재의 지역 연극 여건에서 희곡작가 발굴의 성과를 얻어낸 것. '귀싸대기를 쳐라'로 뛰어난 감각을 주목 받았던 소설가 최기우(전북일보 기자)의 문학적 역량은 전북연극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창작극회의 상봉은 오는 10월 서울에서 열리는 서울공연예술제에서 축하공연을 한다. 류대표는 지역관객들을 위한 앙콜 무대도 구상하고 있다.



[인터뷰] 전국연극제 연출상 받은 류경호 대표

▲창작극회의 류경호 대표
"개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강요당한 삶과 운명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민족 분단의 상흔이 반세기가 지난 지금, 우리 삶 속에 어떻게 남아있는지 한번쯤 되돌아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어느때 보다도 작품 제작하기 어려운 환경, 가중되는 경제적 부담과 함께 배우기근의 현실적 한계를 실감해야 했던 류대표는 워낙 고통스럽게 진행했던 무대여서 수상의 기쁨이 더 크다고 말했다.

"창작극회의 단원들이 시립극단에 소속되어 있어 자유롭게 합류하지 못했다. 서러울 정도로 배우들의 참여가 차단되면서 연기자를 확보하기 힘들었고 그런 상황에서 경제적 부담은 오히려 문제가 아니었다."

그에게 가장 큰 힘은 이미 무대를 떠나있던 옛 동료와 선배들이 주역과 단역을 가리지 않고 기꺼이 합류해준 것. 때문에 그에게 '상봉'의 의미는 작품의 주제로서만이 아니라 전북연극을 지켜온 선후배들의 무대에도 놓여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전국연극제 연출상은 류대표의 두 번째 수상. 드문 일이다. 96년 창작극회가 '꽃신'으로 참여했을 때 최우수상을 놓치면서도 연출상은 그에게 돌아갔다.

그러나 전국연극제와의 인연은 그 이전이다. 공학도(조선대 공대)였던 그가 80년대 말 극단 '황토'를 통해 연극계에 입문했던 초기, 그는 배우로 전국연극제 무대에 섰었다. 이후 창작극회가 대통령상을 수상한 '꼭두꼭두'에서도 이장역을 맡았으니 전국연극제 무대와의 인연은 각별하다.

그와 오랫동안 호흡을 맞추었던 연출가 곽병창씨(전통문화센터 관장)는 '그는 군더더기 없는 연기력을 갖고 있는데다 내가 아는 지역의 가장 화술이 정확한 탁월한 배우이기도 하다'라고 평가한다.

창작극회와 시립극단으로 소속을 옮긴 이후 중견배우로 두드러진 활동을 했던 그는 연출과 함께 여러분야를 아우르며 연극계 중심에 섰다.

"이제 시작인 듯 싶은데, 후배들에게 자리를 넘겨주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도 든다"는 그는 "분단 이데올로기를 다룬 작품이지만 나의 가치관을 강조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일은 가능한 절제하고자 했다. 그 과정에서 마음 잘맞는 후배인 최기우(작가)와 미묘한 긴장과 갈등을 겪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좋은 작품을 써준 작가, 열연한 배우들과 스탭들의 치열한 정신이 수상을 가져왔다"는 그는 "시기적으로 분단의 의미가 새롭게 와닿는 시점이었던 것도 작품을 주목받게 하는 바탕이 되었던 것 같다"고 밝혔다.

2000년부터 창작극회 대표를 맡아 극단 운영의 부담까지 안고 있는 그는 지역극단이 자생력을 갖고 활동해나가는 환경을 위한 일이라면 언제나 나설 준비가 되어 있는 오갈데 없는 연극쟁이. 본업(삼성문화회관 무대감독)의 분주함에도 불구하고 틈틈히 시간을 쪼개어 전북대 대학원 국문학과를 수료한 열정도 궁극적으로는 연극인생에 맞닿아 있다.



[인터뷰]전국연극제 희곡상 받은 최기우씨

▲희곡상을 수상한 작가 최기우씨
“분단에 관한 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저 역시 우연히 알게 된 비전향장기수들의 삶과, 남과 북의 문제가 항상 마음 무겁게 했습니다.”

희곡상을 수상한 작가 최기우씨(31)는 작품의 소재를 선배들에게 미루어오다 용기를 내 직접 쓰게 된 이번 작품이 기대보다 큰 의미를 갖게 된 것에 남다른 기쁨이 있다고 했다.

전북일보 신춘문예 출신 소설가인 그는 이미 ‘귀싸대기를 쳐라’(창작극회, 2001), 음악극 ‘혼불’(2002, 공동작업) 등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젊은 작가.

‘토로’란 필명으로 인터넷 사이트를 운영, 네티즌 사이에서 큰 인기를 모았던 그는 시사적인 사회문제에 늘 시각을 맞대고 있으면서 사회를 변화시키는 문학활동을 꿈꾸는 소설가로 관심을 모아왔다.

“사상이나 언어면에서 민감한 반응을 보일 수 있는 요소들이 잠복해 있었지만 민족 문제에 대한 폭넓은 인식으로 받아들여준 심사위원들에게 감사한다”는 그는 “정작 내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자의적인 선택이 아니라 굴레처럼 씌워진 운명을 감당해야만 하는 개인의 상처였다”고 밝혔다.

소설 못지 않게 극본을 쓰는 일에 관심을 갖고 있는 그는 “희곡은 같은 작품이라고 해도 시기와 무대, 배우에 따라 메시지나 의미는 달라진다”며 그런점에서 올해 작품은 ‘2003상봉’일 뿐 그 자체로서 영속성은 따로 있다고 소개했다.

오는 9월에 시작되는 세계소리축제에 올려지는 어린이창극‘다시만난 토끼와 자라’를 쓰기도 한 그는 기회가 닿는대로 창작극으로 연극활동을 해나갈 생각.2001년 전북일보에 입사, 뉴미디어부에 근무하면서 문화현장을 취재하고 있다.



[인터뷰]전국연극제 연기상 받은 김순자씨

▲연기상을 수상한 김순자씨
"기대하지 못했던 큰 상이예요. 다시 연극 무대에 설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습니다."

'상봉'은 94년 결혼과 함께 연극무대를 떠난 그가 용기를 내어 재기한 9년만의 무대다. 비전향장기수인 큰아들 때문에 마을에서 기 한번 펴지 못하고 살아온 '필순'역을 맡은 그는 안정되고 섬세한 감정의 기복을 잘살려낸 연기로 눈길을 모았던 연기자. 그러나 정작 그 자신은 매우 떨렸고 긴장했던 무대라고 털어놓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87년 곧바로 전주시립극단 단원 공채에 합격해 배우가 되었던 그는 결혼과 함께 연극무대를 떠났다.

"생활에 쫒겨 무대를 잊어야 했지만 연기에 대한 미련은 늘 마음에 남아있었다"는 그는 류대표의 간곡한 요청에 '단역'을 조건으로 참여했다. 그러나 그에게 맡겨진 것은 주역. 연기에 자신을 잃어버린지 오래인 그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큰역이었지만 마음을 다잡고 연습에 열중했다.

이번 수상의 기쁨도 크지만 남편이 연극 무대의 재기를 돕고 나서는 계기가 된 것이 무엇보다 큰 선물.

작년부터 선배 전춘근씨와 함께 인형극단 '까치동'을 운영하면서 인형극 대중화에도 열정을 쏟고 있는 그는 첫 무대인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네마디 단역을 아직도 설레임으로 갖고 있는 겸손한 배우다.



※ 기사협조. 전북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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