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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생활] 닭과 염소에 웃다가 울다가

이민영( 1) 2003.07.08 11:16 추천:5

우리집에 5월초에 이사온 닭들이 있다. 암컷 다섯에 수컷 한 마리.

원래 닭은 수컷 하나에 암컷이 열 마리 정도 되어야 서로 피곤하지 않은 생산활동(?)을 할 수 있다고 하는데 우리집 마당이 좁아서 아쉬운대로 여섯 마리로 합의를 보았다.

물론 합의는 닭과 나와의 합의가 아니라 나와 신랑과의 합의였다. 닭들이 알면 얼마나 어처구니 없을까. 그렇지만 이러한 합의가 사회에서는 무척 많이 이뤄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를 웃게 만든 수탉의 '독특한' 울음소리

이 닭들과 얽힌 비극와 희극이 나를 웃게도 암담하게도 한다. 먼저 희극을 이야기 한다면 하나있는 수탉의 ‘성장기’다.

병아리 털은 벗었지만 여전히 ‘삐약’대던 닭일지 병아리일지 적당한 호칭을 찾기 어려울 시절에 와서 하루하루 선홍색 벼슬이 짙어지고 꽁지털이 길어지며 제법 수탉의 그럴싸한 모양을 잡아가는 6월 어느날 드디어 첫울음을 우는데 “골길골-”

보통 수탉의 울음은 정형화된 표현으로 “꼬끼오~~~~”. 굳이 내식대로 표현을 한다면 한옥타브 높은 라도시~~~~정도가 보통 수탉들의 소리라면 우리집 수탉의 첫울음은 기본 옥타브의 라시도도 되지 못하는 높이에 감기걸려 가래낀 목소리에 그 끝은 어찌나 짧던지.

그 소리를 처음들은 우리 부부는 수탉이 알면 서운하겠지만 한동안 웃음을 멈출수 없었다. ‘감기걸린 사춘기 소년의 음 높은 가곡 부르기’ 우리집 수탉의 울음소리를 듣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상상할 수 있는 최대한의 표현이다.

게다가 길건너 옆집에서 키우는 수탉은 정형적인 소리를 내는데 매일매일 비교되는 저도 실은 무척 괴로웠을 것이다. 암튼 매일같이 연습해서 요즘은 제법 그럴싸한 소리를 낸다. 이젠 그 높이도 거의 찾았고 가래 걸걸거리는 느낌도 사라지고 마지막 길이만 길어지면 된다.

“꼬끼오~~-”

어렸을 때 집에서 키우던 닭도 있었지만 나는 처음부터 “꼬끼오”소리를 내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같다. 누구나 무엇이나 ‘과정’이 있고 그 과정의 한 부분에 아름다운 그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을 우리집 수탉을 통해 다시 생각한다.


닭들의 '유언 한마디'없는 안타까운 죽음

그리고 비극은 우리 부부는 정말 아무짓도 하지 않았는데 이제 닭들이 반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요즘 농사외의 부업을 고민하는 우리부부에게 그야말로 소규모 가축기르기는 큰 매력이다. 그중 닭과 염소가 가장 적당한 것으로 생각되는데 2개월 동안의 50% 치사율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고민이다. 이놈들이(정확한 표현은 ‘연’들이다.) 유언 한마디 없이 죽어 있으니 우리 부부는 그냥 속이 탈 뿐이다. 달걀 몇 개 먹어볼려다 시체만 치우다 끝날지도 모르겠다.

또 염소는 그 아픔을 이야기하자면 길다. 작년 마을 배추밭에 노숙하던 염소가 덫에 걸려 어른들의 배려로 우리집에 오게 되었던 염소는 지난 겨울을 넘기지 못했다. 우리를 경계하고 의심하던 그 놈이 마음을 열고 제 곁을 내주기 시작했을 때쯤 나를 알아봐주고 제가 먼저 앞장서서 폴짝 폴짝 사뿐 사뿐 실룩 실룩 집을 찾아가던 그놈의 뒷태가 지금도 눈에 선하다.


지난 겨울, 염소의 기억

폭설로 길이 막혀 이틀을 집에 들어가지 못했을때 사고가 났다. 우리는 밥도 넉넉히, 물도 넉넉히 준비해 두고 나와서 별일은 없으려니 했는데 별일은 일어났다.

한동안 나는 염소우리로 함께 사용했던 뒷간을 가려 하지 않았다. 민망하게 말똥말똥 쳐다보는 그 놈의 눈망울에 내 엉덩이가 꽤나 달았을 것인데.... 아차! 그러고보니 그 눈망울이 사라진뒤에 둔부와 복부가 급격하게 두터워 졌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뭔가 하긴 해야겠는데 또 하고 싶은데 우리 부부는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개는 시끄러워서 싫고 소는 너무 크고 비싸서 어렵고 돼지는 집이 없고 등등 만만해 보였던 닭과 염소는 실패로 귀결되고 있으니... 퇴비를 생각해도 그렇고 비상금 대신으로도 소규모 가축은 있어야 겠는데.

그래도 요즘 대충 정리되는 분위기는 염소다. 지천으로 널려 있는게 풀이고 닭 보다는 병이 적고 닭보다 현금성이 좋고 내 눈에는 닭똥보다 염소똥이 깨끗해 보이기도 해서 나는 염소에 다시 한번 공을 들여보고 싶다.

이렇게 우리부부의 고민이 정리되어가는 한 끝에 또다른 고민이 시작되고 있다. 요즘 염소값이 너무 비싸서 언제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런 저런 실패와 여러밤의 고민들의 과정에 까만 염소 몇 마리(여러마리)가 뛰어놀게 되길 간절히 바란다.


염소에 관한 이야기는 여기를 보시면 됩니다 : [살림밑천 염소...죽다...]



* 기자는 전주에서 사회단체 활동을 하다가 얼마 전 결혼한 후 남편과 함께 진안으로 귀농한 신출내기 농사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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