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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나시, 오치나시, 이미나시 세 단어의 앞 글자면 따서 붙여진 '야오이'라는 장르 아닌 장르가 있다. 절정도, 결말도, 의미도 없다는 말이다. 그리고 하필이면 이 절정, 결말, 의미도 없는 이야기의 소재는 남성간의 동성애이다.


야오이와의 구분을 위하여

야오이 만화의 스토리는 항상 고정적이다. 건장하고 체구 좋은 힘 센 남자가 여리고 작고 보호 본능을 일으키는 다른 남자에게 강제로 성행위를 시도하고, 여린 남자는 고통스러우면서도 결국은 쾌감을 느끼게 되며 급기야 상대 남자의 일방적 태도에도 그를 사랑하게 된다는 이야기. 어허...어디서 많이 본 레파토리 아닌가? 그렇다. 바로 포르노의 수법이다.

현실에서라면 성폭행 범죄(심지어 아동 성폭행 범죄까지!)에 해당할만한 이야기들이 꽃미남들의 사랑 이야기로 포장되어 눈요깃거리가 되고 있다. 야오이 안에는 포르노처럼 일방적이고, 강압적인 '성행위'와 '부당한 관계'가 있을 뿐, 그 어디에서도 사랑에 대한 진지한 고민, 동성애자로서의 삶에 대한 고민 따위는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야오이 만화들은 포르노의 효과가 그러하듯이, 일방적 성행위를 통해서 사랑의 감정이 발생할 수 있다는 허구를 심어주고, 특히 남성 동성애자의 경우 만화 속 인물처럼 성행위를 강제로 시도할 것이라는 편견을 유포시키며, 동성 애인 간의 관계에 '강자와 약자'로 연결되는 성역할이 정해져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이러한 야오이물의 범람 속에 무조건 '남자 동성애자만 나오면 야오이'라는 잘못된 인식으로 인하여 오해받고 있는 두 명작이 있으니, 바로 마리오 라가와의 <뉴욕뉴욕>과 원수연의 <렛다이> 이다.


그 어떤 퀴어 작품보다도 진실되고 진지한. <뉴욕뉴욕>

<뉴욕뉴욕>의 작가는 다름 아닌 그 유명한 <아기와 나>의 작가와 동일인물이다.

<아기와 나>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이 작가는 주인공 뿐 아니라 작품 속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의 감정변화와 고민들을 골고루 담아내고 그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삶의 이야기들을 독자에게 감동으로 전하는 데 있어서 마법 같은 재주를 지닌 사람이다.

지금까지의 그 어떤 퀴어 작품도 동성간의 사랑만이 아닌, '삶'을 다룬 작품은 없었다. 그러나 라가와는 마치 진짜 동성애자로서의 삶을 경험이라도 한 듯, 동성애자의 생활 모습과 사랑 그리고 삶속에서 부딪히는 '진짜 문제'들을 현실적으로 다루고 있다.

아직 자신의 성 정체성을 인정하지 못하고 가시 투성이의 자기 보호 본능만을 가지고 있는 뉴욕의 경찰 케인과 어려서 부모에게 버림받은 후 자신에게 벌어졌던 아픈 기억들로 인해 자신감도 없고 상처 투성이인 여린 멜. <뉴욕뉴욕>은 이 두 사람이 만나 사랑하게 되면서 겪게 되는 갈등과 삶에서 부딪치는 문제들. 특히 가족에게 커밍아웃을 하고 인정받게 되기 까지의 과정을 보여준다. 중요한 것은, 이 작품이 커밍아웃을 하는 당사자 뿐만 아니라 이들의 커밍아웃을 받아들이는 가족의 고민을 함께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고교 선생님이면서도 동성애로 상담하러 온 학생에게 병자 취급을 했던 일을 떠올리고는 결국 아들을 인정하게 되는 아버지, 동성애는 더럽고 혐오스러운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가 아들의 커밍아웃을 접하고 충격을 받는 어머니. 그리고 어머니가 케인, 멜과 한 집에서 지내면서 겪게 되는 마음의 갈등과 이웃의 비슷한 사례를 듣고 아들의 성 정체성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한 후 멜을 가족으로 받아들이게 되기까지의 과정이 자연스러운 공감을 유도해내고 있다.

동성간의 사랑이든, 이성간의 사랑이든 '삶' 없는 '사랑'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뉴욕뉴욕>은 동성간의 삶과 사랑을 너무나도 현실적으로 보여줌으로써 그들의 사랑이 결코 특별하지 않다는 당연한 진리를 깨우치게 하는 멋진 작품이다.

▲마리모 라가와의 <뉴욕뉴욕>

사실, <렛다이>를 처음 접했을 때는 거부감부터 들었다. 다이가 너무 폭력적이고 일방적인 데도 제희는 다이에게 맞으면서도 다이를 좋아하게 된다는 설정이 맘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다이의 폭력 앞에서 윤은과 은형은 너무나도 나약한 존재이거나 그나마도 똑같이 나약한 제희에게 그래도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의지하는 듯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러한 판단은 섣부른 것이었다. 회를 거듭할수록 <렛다이>는 다이와 제희, 은형과 윤은 등의 깊숙한 곳까지 파고듦으로써 단순한 청소년들의 동성, 이성 간의 사랑 이야기를 넘어서서 모순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자신만의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충실히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었지만 다이가 '짱'으로 있는 조직의 일당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하고 마음에 큰 상처를 입게 된 은형. 하지만 은형은 좋은 성적과 '여자다운' 모범적 생활을 기대하는 부모에게는 한 마디 고민도 털어놓지 못한 채 온몸에 가시를 두르고 이탈한다. 그리고, 어머니와 단 둘이 살면서 다정한 아들이자 착한 학생으로 살아왔지만 다이를 좋아하게 되면서 규격화된 삶에서 벗어나 새로운 생활을 경험하는 제희, 병든 할머니를 구석 별채에 밀어두고 관심 한 번 가지지 않는 돈만 많은 가족들에게 회의를 느끼고 방황하는 다이의 이야기가 있다.

사회의 시선으로는 그저 '방황하는 청소년', '친구 잘못 만나 타락한 청소년'들일 뿐이지만 이들은 나름대로 모순 투성이의 세상과 싸우며 자신의 의미와 삶의 의미를 찾아가고 있다. 그래서 이 안에서는 다이와 제희의 조금은 특별한 사랑도 성장과 함께하는 그들의 고민속에 때로는 눈물짓고, 때로는 미소짓게 하는 모습으로 자연스레 녹아들고 있다.


동성애가 '특별한' 소재가 되지 않는 날을 기다리며

동성애에 대한 '인지도'(어떤 긍정적 '인식'이 아닌)가 높아지면서 동성애는 이제 광고와 영화, 만화 등에서 소비 심리를 부추기는 코드로, 흥행을 유도하는 소재로 애용되고 있다. 이제 마치 동성애는 하나의 '유행코드', '눈요깃감'이 된 것 같다.

<뉴욕뉴욕>이나 <렛다이> 같은 작품이 소중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이들 만화가 동성간의 사랑을 단순한 흥밋거리 소재로 이용하지 않고 그들의 '삶'과 '사랑'을 자연스럽고 사실적으로, 그리고 진지하게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 '동성애'란 소재가 '외계의 사랑'이나 '동물의 사랑'처럼 특별한 소재로 다루어지지 않고 일상 속에 녹아들기를 바래본다.



- 틈새 / 문화사회 편집위원 rebel9@hanmail.net
- 문화사회 http://culture.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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