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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일생을 건 선택, 그 앞에 경의를 표하다

김여현( 1) 2003.06.07 01:51 추천:2

생각이 너무 많아서 손가락조차 움직이기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좋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모여도 입에서는 한마디도 나오지 않고 그저 술만 들이키며 혼자 쓰러져 버릴때도 있었다. 지난 2주간 그렇게 혼자만의 방황을 마치고, 써야지 했던 영화 [선택]의 조촐한 감상평을 몇자 적고자 한다. 너무 오랜만에 쓰는 글이라 한자한자에 겸손과 신중을 기하며 다시쓸 수 있게 해준 않보이는 그 무언가들에게 어색한 웃음한번 날린다.


7회 서울인권영화제의 개막작이었던 [선택]

영화 하나를 만드는데 10년이 걸렸다면 그 기간에 박수를 보내야 하는걸까? 아님 10년간 아무것도 할수없던 그 목표있는 무기력함에 박수를 보내야 하는걸까? 어쨌거나 영화는 10년의 산고끝에 완성됐고 나를 포함한 그날 인권영화제에 모인 모든 사람들의 눈물을 훔쳤으니 어느정도 성공한 작업이다. 눈물 그 이상의 울렁거림이 아직도 꿈틀거리니까

우리나라에 존재했던 세계최장기수 김선명씨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선택]은 45년이란 감옥생활을 신념, 어쩜 퇴색될지도 모를 그 매순간의 정신을 그리고 있는 영화다.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경계에서 죽거나 죽여야만 했던 시대의 사람들이 있었고 그 상처들은 결국 지금 아무런 성과없이 술자리에서나 간간히 나오는 추억의 말이 되었다.

물론 그 당시엔 목숨을 걸만큼 절대적이였다. 하나의 땅덩어리가 두개로 나뉜 상황에서 사상은 무엇보다도 자신의 존재와 위치와 정체성을 증명할수 있는 유일한 것이였기에. 그 가운데에서 김선명씨는 공산주의란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일생을 건 선택을 했다. 그것은 훗날 자신에 대한 신념 그 자체의 믿음으로 발전한, 훨씬 진보적인 선택이기도 했다.


동지. 그 말 안에서 사람들은 위로받고 고통받기도 하며 갈등하기도 한다. 그 끈끈한 연대감의 심볼인 동지란 두단어 앞에서 한 시대가 흘러간 것이다. 이쪽이든 저쪽이든. 어쩜 그 위험한 말앞에서 사상을 뛰어넘는 자기 신념을 갖기란 너무나도 어렵다. 나도 너를 동지라 부를수 있고 너도 나를 동지라 부를수 있지만 우리모두가 동지가 되기엔 포기해야 할것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이다.


신념. 그의 '선택'에 보내는 경의

그렇기 때문에 난 언제나 '동지'란 이 두단어 앞에서는 생각에서 조차 여러번의 자기검열과 생각을 거치지 않을수 없다. 그만큼 신중해야 한다는 내 나름대로의 신념때문일것이다. 김선명씨는 영화 내내, 아니 감옥안에서 그리고 그 이후에도 동지란 단어의 힘을 일생을 걸고 책임질수도 있다는것을 보여준다. 한번뿐인 자신의 일생을 걸고 실천하기에는 힘들지도 모를 그것을 말이다.

난 그것이 옳든 그르든 경의를 표한다. 정신의 옳고 그름은 어쩜 그 신념끝에 판단내릴수 있는것인지도 모른다. 옳고 그른건 그 갈등 안에서 벌어지는 매 순간의 착각일수도 있다. 선택도 판단도 우리가 하는것을 보면 말이다.

죽음앞에서 떳떳하긴 쉽지만 일생을 건 자신의 신념을 고집하기엔 너무나도 힘든게 바로 이 세상이다. 단순히 신념을 고집한다는 것도 위험할수 있다. 그 위험앞에서 책임이란 십자가를 매고 당당할수 있다면 과연 어느 몇사람이나 탓할수 있을까? 회색분자와 철새가 난무하는 바로 우리의 세상안에서 말이다. 이처럼 하나의 신념은 이미 우상화되기 충분한 배경을 제공하는 세상인데 그렇다면 이 앞뒤없는 주장앞에서 결론은 하나다. 신념은 결코 쉽지 않다는것.

우린 살면서 얼마나 많은 우회와 전환과 변화를 겪는가! 하물며 사람 하나를 만날때 조차 우리의 계산기는 쉼없이 돌아가는게 일상이다. 그런 가운데 신념따위에 모든걸 포기할만큼 순진한 사람들은 드물어 가는것 같다. 그것도 깜깜한 감옥안에서라면 말이다. 어쩜 극단적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김선명씨가 45년의 출감생활을 마치고 감옥밖으로 나갈때 그를 관리했던 소장의 늙어버린 얼굴이 떠오른다. 그들은 같은 시대에서 같이 늙어간 두 사람일뿐였다. 그 순간 만큼은 사상도 갈등도 보이질 않는다. 결국 자기가 선택한 신념으로 남겨진 몸뚱아리만이 서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란 사상대립이 도드라 지지 않았던 이유에 개인적으로 박수를 보낸다. 시대를 건드는 그 숭고한 작업을 하면서 어느 사상에도 흔들리지 않았던 감독의 신념에 말이다.

미천한 글을 마치면서 하나 수줍게 고백한다. 글을 선택한 나의 신념은 내가 선택한 십자가라고. 난 내 선택을 쉽게 해결하고 싶지 않다. 손가락이 썩어 문드러 진다면 모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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