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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디씨 폐인과 P세대

편집팀( 1) 2003.06.08 13:55 추천:1

누군가 또 P세대라는 말을 만들어냈다. X세대 다음이라나. Participate 혹은 Passion 의 P란다. P세대는 붉은악마, 촛불시위를 거쳐 노사모로 2002년 집중적인 문화, 정치적 활동을 했던 대한민국 네티즌에, 어떻게든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사람들이 붙인 이름이다. 이들이 향후 한국 정치의 희망이라는, 성미급한 전망도 나오고 있다.

디씨인사이드 홈페이지에서 활약하는 디씨 폐인은 대표적인 P세대 가운데 하나다. 특히 디씨 폐인은 디지털 카메라와 타블렛펜으로 무장하고 여러 정치 현상에 대한 풍자와 희화화 - 이른바 정치의 연성화로 반미 등 정치적 주제에 대한 자연스럽고 가벼운 참여 유행을 끌어낸 공로자로 여겨진다. 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들이 중요한 문화적, 정치적 실천을 하는 것으로 치켜세우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P세대에 대한 칭송은 성급한 전망

그러나 적어도 디씨 폐인에서 발견할 수 있는 대한민국 네티즌의 문화적 경향으로 볼때 P세대에 대한 칭송은 아직 때이른 것 같다. 디씨 폐인의 특성을 가장 잘 규정하는 것은 '필수요소'들이다. '필수요소'란 토토샵(포토샵) 등 이미지 프로그램을 이용해 이미지 변형을 연습할때 사용할 수 있는 합성용 이미지들이다. 이 요소들은 일정한 시기별로 유행을 타는데 지금까지 등장한 대표적 필수요소들은 개벽이 -> 개죽이 -> 초난강 -> 신구 -> 휴지 -> 소피티아 -> 장승업 -> 광녀 -> 무늬준(무뇌충) -> 오이 -> 아시안 프린스 -> DDR 개구리 와 같은 것들이다.

그런데 내가 최근 이 필수요소들을 이용한 이미지와 만화들을 보면서 느낀 것은 군국적 민족주의, 그리고 여성 혐오와 남성중심주의이다. 필수요소로서 처음 개벽이와 개죽이가 등장했을 때까지만해도 이는 유머있는 합성 연습용 이미지 정도였다.

그런데 '친한파'라는 '일본 유명 가수' 초난강에 대해 호의적인 인용 유행이 불면서 이미지 '쎄우기'는 단지 '쎄우기'가 아닌, 일정한 정치적 메세지를 담기 시작했다. 초난강에 대한 열광에서 발견할 수 있는 정치적 메세지들은 공격적 민족주의이다. 초난강을 인용할때 네티즌들은 "일본(연예인)도 한국을 존경한다"는 사실에 뿌듯함을 느낀다. 그리고 이 뿌듯함의 정체는 "오늘날 부자나라 일본도 사실 역사적으로는 한국에서 한수 배워갔었고 그들이 한국을 존경하는 건 당연한 역사적 순리"라는, 열등감과 우월감이 짬뽕해 있는 민족주의이며, '역사 스페셜'류의 군국적 민족주의와 거리가 멀지 않다. 이현세 만화류의, "우리도 군사력으로 타민족을 침략했었고 (앞으로도) 침략할 수 있다"는 군국적 민족주의 말이다.


강렬해지고 있는 '대략' 여성혐오와 남성주의

▲디씨 폐인에 의해 만들어진 소피티아 개벽 개죽 장승업 초난강 등이 총천연색으로 합성된 이미지
물론 '필수요소'가운데 최근까지 가장 큰 인기를 끈 것은 신구와 장승업이라는 문화적 이미지들이었지만, 최근의 필수요소에서 점점 강렬해지고 있는 것은 '대략' 여성 혐오와 남성주의이다. '소피티아'는 어떤 유명 게임의 미녀 캐릭터라고 하는데, 만화 주인공의 옷차림을 실제로 흉내내는 어떤 일본의 코스프레 행사에서 이 미녀 캐릭터를 '못생긴' 일본 여자가 흉내냈다는 것이 화제가 되었다. 곧바로 그녀의 '못생긴' 얼굴은 조롱의 대상이 되어 온갖 이미지의 연습 대상이 되었다. - 그녀의 경우엔 '일본 여자'라는 것 때문에 더욱 강한 조롱과 반발적 참여를 끌어냈다.

여기에 곧 덧붙여진 것이 '광녀'이다. 어떤 이용자가 고양이를 잡아먹는 듯한 장난스런 여자친구의 사진을 올렸는데 그녀의 기괴한 표정이 '광녀'라는 이름으로 함께 유행했고 그녀는 곧 '소피티아'에 쌍벽을 이루는 필수요소가 되었다.

내가 여기서 가장 먼저 느낀 것은 '필수요소' 가운데 남성과 여성의 이미지가 너무 다르다는 것이었다. 어찌보면 디씨 폐인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남성 네티즌이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르겠지만 바로 그때문에 여성 혐오와 남성중심주의도 자연스런 흐름이 되어 버렸다.

신구, 장승업 등 남성 필수요소들은 구체적 개인이라기 보다는 추상적이고 문화적인 '상징성'이 강하다. 반면 필수요소가 되어버린 여성 - 그것도 좋지 않은 이미지로 - 들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우스꽝스러운 외모', 단 하나뿐이다. 이들의 여성답지 못함이 디씨 이용자의 즐거움이 되고 관음증을 만족시켰고, 이 여성들을 필수요소로 차용한 여러 이미지들에서는 '유머'를 넘어서는, 극단적인 여성 혐오의 모습까지 보여진다. "얼굴도 못생긴 년이 어디서" 이런 류 말이다. 또 이 여성 요소들은 주로 연예인 신분인 남성 요소들과 달리 평범한 구체적 개인들이다. 디씨 폐인들이 자신들의 동류 - 어떤 남성 개인들을 이런 조롱 거리로 만들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역시 이 안에서 여성은 철저한 타자이다.


군대미필 남성, 동성애자도 조롱의 대상

이들에게 타자는 여성만이 아니다. 군대를 갔다오지 않은 남성들, 동성애자들 역시 철저한 타자로서 조롱의 대상이 되기 시작했다. 무뇌충은 나우 유머란이 장안을 풍미하던 1990년대 후반부터 '군대를 갔다 오지 않았고' 무조건적인 팬집단 - '빠순이'들을 몰고 다닌다 하여 남성 네티즌들이 오랫동안 미워했던 연예인이다. 최근엔 남성팬이 많은 음악 쟝르 - 락을 어설프게 흉내낸다고 하여 미움을 받고 있다. 아시안 프린스는 아시아판 프린스인데 동성애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실제 동성애자인지는 모르겠지만 보기에 동성애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이 두 요소가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는 이유는 명백하다. 혐오 때문이다. 군대를 갔다오지 않은 남자, 동성애에 대한 남성중심적인 혐오 말이다. 이와 함께 디씨 폐인들은 빠순이들에 대해서 '본능적'인 적개심을 가지고 있다. 빠순이로 느껴지는 글이 올라오면 디씨 폐인들은 다함께 "끄지라 가시나야"를 외친다. 이 말을 할때 많은 남성 네티즌들은 통쾌함을 느낀다고 한다. 사실 빠순이에 대한 적개심은 팬클럽의 활동이 조직화되기 시작했던 1990년대부터 함께 등장한 현상이다. 이들은 조직화된 여성들에 대해 경멸과 공포심을 동시에 느낀다. 신보수주의가 등장하면서 창궐했던 페미니즘 포비아(feminism-phobia)도 느껴지게 하는 대목이다.

그리고 최근의 또한가지 흐름으로는 성기 중심주의가 존재한다. 디씨인사이드엔 자신의 누드나 친구의 누드를 장난삼아 찍어 올리는 사진이 간혹 올라갔다가 삭제되곤 했는데 최근에는 더욱 대담해져 성기 이미지를 직접 올리는 경우가 늘고 있다.(이를 '자빠링'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그런데 이 '성기주의'는 다양한 방식으로 최근 여러 이미지와 만화의 주요 소재로 부상하고 있다.

이를테면 (동성애적 성행위라고 흔히 알려져 있는) 후배위에 대한 (조롱적 느낌의) 만화가 늘고 있으며 최근엔 아예 자위행위 자체가 (정반대로 친근한 느낌의) 만화의 주제가 되고 있다. DDR 개구리는 커다란 성기를 가지고 자위하는 개구리이다. DDR은 자위행위의 은어이다. 휴지가 필수요소로 등장한 것도 자위행위의 맥락 때문이다. 오이는 처음에 무뇌충 때문에 등장했다고 하지만 ("락커의 길은 배고픈 길이다. 나는 오늘 오이 4개밖에 먹지 않았다"고 했다나) 최근 오이를 묘사한 이미지들은 강한 성적 이미지를 담고 있다. 자위 행위는 죄가 될수 없지만, 문제는 이들의 '문화적' 자위 행위의 주체에 여성은 포함되지 않는다.여성은 자위 행위에 사용되는 포르노나 잡지 이미지 속에 존재하는 대상이거나 자위 행위를 방해하는 엄마일 뿐이다. 철저히 남성들의 문화적 향연인 셈이다.

나는 성적 담론에 일정한 정치적 함의가 있다는 성정치론을 믿는다. 특히 최소한의 성적 용어의 사용조차 강하게 억압받아 왔던 우리의 문화적 현실 속에서 성적 담론은 강한 정치적 표현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최근 디씨 폐인들이 보이고 있는 성적 경향, 특히 강한 남성주의적 경향은 이런 정치적 실천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물론 노출 만으로도 즐길 수 있어야 하는 것은 그들의 자유라고 볼 수도 있다. 그들은 그저 문화적 자유주의자인지도 모른다. 자유주의는 때로 일정한 진보성을 갖기도 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여성주의애 관한한 자유주의는 곧잘 폭력의 모습을 띄기도 해왔다. 자유주의 속에서 지배적인 이들이 곧 정의이기 때문에. 그것은 여성에 대해서 뿐 아니라 모든 타자에 대해서 그러해 왔다.


불균형한 반미의식의 딜레마

무엇보다 대한민국 네티즌을 하나로 묶는 아우라 - 그들의 필수요소가 정말로 실망스럽지 않은가. 이걸 '네티즌의 힘'이라거나 'P세대'라고 야단법썩 치장할 필요까지 있을까. 그런데 우리가 주목할 점은 이들은 '폐인'이 아니라 반미 시위의 '민주적' 대중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효순이, 미선이'에 대해서는 '오빠'로서 측은하게 여기며 반미 시위에 동참한 네티즌과 미국 시민권자 스티브 유(유승준)에 분개하며 국가인권위 게시판을 도배하는 네티즌은 같은 네티즌이다. 동시에 이들은 반미 시위를 하던 와중에 미군들과 함께 시위 군중을 내려다 보았다는 어떤 한국 여성(으로 추측되는 동양계 여성)에 대해, 함께 있는 미군들에 대해서보다 더 심하게 분노했으며 유승준 '빠순이'들에 대한 노골적인 혐오를 숨기지 않는다.

불행히도 이들의 반미 의식은 여성을 민족주의의 계기나 걸림돌로 여기는 불균형한 반미 의식인 것 같다. 사실 이는 군국적 민족주의의 역사 속에서는 드문 일이 아니다. 군국적 민족주의는 전쟁에서 상대 민족의 '피를 더럽히는' 인종 청소 - 즉 여성을 강간하고 아이들을 살해하는 일을 개의치 않으며 여기서 여성은 지켜야 할 '대상'이자 동시에 피를 더럽힌 '제거 대상'이 되기도 한다. 즉 이런 점에서 공격적 민족주의는 여성을 철저히 타자화시키는, 무시무시한 기제인 것이다.

따라서 '반미'와 '전쟁반대'가 '평화'로 이어지지 못했던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이미 이전부터 냉전 이후 인류의 21세기는 미국의 패권주의 더불어 국지전과 민족주의 분쟁이 늘어날 수 밖에 없다는 분석이 있어왔다. 우리의 최근 민족주의는 저항적, 평화주의적 민족주의라기 보다는 공격적이고 군사적인 경향을 띄어가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자연스런 '지배적' 흐름인지도 모른다.

여기에 우리의 딜레마가 있다. 반평화, 반여성주의적 자유주의가 최근의 현안에서는 전쟁반대, 개혁주의적 외향을 띄었다는 것 말이다.

물론 나는 지난해 인터넷으로 접할 수 있었던 대중적 정치적 힘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활동가로서 내게 대중의 정치적 실천, 가까운 것 같으면서도 어렵고도 먼 주제이다. 하지만 진보주의자들의 P세대에 대한 기대는 막연하고 근거 없고 무엇보다 측은하고 낯부끄럽기조차 하다. 이것은 곧 우리 진보의 전망이 빈약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분명한 점은 허황된 기대보다 정확한 현실에 근거해야만 진보의 전망을 올바로 세울 수 있다는 점이다.



- 글 / 김잠초
- 기사 출처 / 참세상 뉴스 http://news.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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