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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생활] 우리집 차고의 마지막 모습

최인화( 1) 2003.05.05 14:13 추천:3

오늘 아침, 아빠가 어린이날 연휴기간에 디지탈카메라로 찍었다는 사진 몇장 받았다. 10살짜리 조카와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들 뒷편에 보이는 낯익은 집 풍경들. 그 중에는 우리집 차고의 마지막 모습도 담겨있었다.

얘기를 하자면 조금 길다.

올해 초 엄마한테서 다급한 전화를 받았다. 집 앞 도로공사 때문에 마당이 반절로 깍이고 차고가 날아가게 생겼다고... 도로공사 하는 사람들이 집을 무단으로 들어와서 빨간색 스프레이로 담벼락에 표시를 해놓고 표시줄로 마당을 반으로 갈라놨다고...

몇년전부터 진행되던 서해안 고속도로 건설에 건설계획 일부 변경으로 아무 피해가 없으리라던 우리 집 마당의 반절이 깎여나가게 된 것이다. 사전에 아무런 연락도 받지 못했다가 갑작스럽게 날아온 통보에 놀란 부모님이 군청과 도로공사로 가 사태를 확인해보니 도로공사 측은 군청으로부터 '이미 마을주민들에게 합의를 얻었다'고 들었다는 것.

분노스런 마음에 나도 달려가 마을 주민회의에도 같이 참석하고 목소리를 높여봤지만, 평균 연령 60대의 우리 동네 주민들은 공유지로 쓰였던 놀이터에 대한 보상금을 어떻게 나눠가질까에 더 관심이 가 있는 듯 했다. 피해를 직접적으로 겪는 우리집과 다른 한집만이 분통한 마음에 발을 동동 구를 뿐이었다.

도로공사측에서는 반절깍여 나간 땅값과 나무값은 보상해주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집보다 높이 올라오는 도로의 소음피해를 고스란히 입어야 하는 사정에 대해서는 책임이 없다고 했다.

가진 거라고 집 하나 뿐인데 도로가 세워지면 집값이 똥값이 되는데 이걸 어떻게 하냐며 억울해 하는 엄마.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다며 조용히 물러선 아빠. 공무원들의 무책임한 행정에 화라도 한번 내줘야 하지 않겠냐고 말은 하지만 집에서 떨어져 생활하고 있고 할 일이 많다는 이유로 외면하고 돌아선 나와 형제들.

결국 공사계획은 그대로 진행되고 우리집은 보상금 몇푼을 받고 집을 헐값에 팔고 이사가기로 결론을 봤다. 억울한 상황이었지만 약속이나 한듯 누구도 그 문제를 다시 거론하지 않았다.

그리고 5월 4일 어린이날을 하루 앞두고 도로공사에서 사람들이 와 차고를 부쉈다. - 연휴기간 시골집에 가지 않았던 나는 전화로만 소식을 들었다. 차고를 부수기 전 마지막 모습을 담아둔다며 아빠는 사진을 찍었다.

아빠는 한동안 아이들이 없는 집 옆 놀이터에 차를 주차할 것이다. 그리고 곧 우리 가족은 20년동안 살았던 이 집을 팔고 읍내 아파트로 이사를 갈 것이다. 그리고 이미 아이들은 떠나고 노인들만 남은 여덟채의 다른 집들도 도로공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동네를 떠날 거라고 말한다.

마을 하나가 사라지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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