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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이여 물을 건너지 마오 임이 그예 물을 건너시네 물에 빠져 돌아가시니 임이여, 이 일을 어찌할꼬’(公無渡河 公竟渡下 墮河而死 當奈公何)

‘머리를 풀고 술병을 낀 미친 사람(백수광부)이 아내의 만류를 뿌리치고 강을 건너다 죽자 그의 아내가 공후를 타며 공무도하(公無渡河)의 노래를 지었는데 소리가 매우 구슬펐다. 이를 곽리자고가 아내 여옥에게 그 노래를 들려주자 여옥은 공후를 타며 그 소리를 그대로 내었는데 이를 듣고서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한국문학통사’·조동일)

문헌상 우리 나라의 가장 오래된 서정 가요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 이 노래를 연주했다는 구슬픈 공후의 선율이 전주에서 되살아났다.

전통음악에 쓰이는 옛악기를 꾸준히 연구하며 그 활용을 넓혀온 고수환씨(55, 도지정 무형문화재 12­4호, 전주국악사 대표). 그의 손에서 고대 동양의 현악기 ‘공후’가 새롭게 태어났다.

“무형의 악기에 관심을 갖었다는 것에 의미가 있겠지요. 번번이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하는 과정에 어려움도 많았지만 연구가와 연주자들이 모두 만족하는 듯 해 기쁩니다.”


힘겨운 모양과 연주법의 복원과정

그의 공후 제작은 창사특집 방송으로 공후재현을 기획한 전주문화방송 윤승희PD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그때부터 시작된 고민은 공후의 형태적 재현 못지 않게 ‘최고의 음색’을 낼 수 있게 하는 것. 하지만 국내에서 공후의 흔적을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국립국악원에 보관돼 있는 공후는 1937년 중국 베이징에서 사들인 것이어서, 국내 유일한 자료는 강원도 상원사 범종(725년·신라)에 부조돼 있는 공후 연주모습 뿐이었기 때문이다. 일본 정창원(왕실의 보물을 모아놓은 창고)에 백제에서 전했다는 공후로 추정되는 ‘백제금’이 있지만 이마저도 일년에 한차례 공개될 뿐이었고, 문헌상 기록도 중국 ‘수서’(隋書)에 ‘삼국시대에 고구려와 백제의 일부에서 공후가 쓰였다’는 정도였다.

“공후는 윗기둥이 굽은 ‘p’자 모양의 틀에 23가닥의 줄을 건 악기인데, 공명통이 굽어진 기둥 위부터 아래로 이어지고, 공명통에 연결된 하주(下柱:아래쪽에 삐어져 나온 부분)를 받침대에 꽂고 양손으로 연주하도록 했지요”

그보다도 가장 큰 문제는 전해지는 연주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십수년전에 전통악기 연구가들이 공후를 만들어낸 일화가 있지만, 모양만 흉내냈을 뿐 소리 내기에 실패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악기는 소리가 생명 아닙니까. 악기를 이루는 모든 것들이 다 쓰임새에 맞게 꾸며지지요.”

현재 그의 작업은 모든 현이 제 음을 낼 수 있는 것까지 성공한 상태. 세세한 악기 모양과 색칠 등은 좀 더 연구를 통해 보강해야 한단다.

또 한가지 과제는 하프처럼 안고 연주하는 악기여서 가벼워야 하고, 인체의 구조와도 어울려야 한다는 것. 그래서 몸통은 실한 오동나무를 이용했고 길이가 다른 현 23줄은 다른 악기의 특성을 본떴다.

수족처럼 아끼던 오동나무를 사용했지만 뜻하지 않은 문제가 생겼다. 오동나무의 무른 특성이 장력을 견뎌내지 못했던 것. 그래서 제작기간 중 처음 만들었던 악기는 시범 연주도중 현이 끊어지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30년 넘는 세월로 되살아난 선율

“30년이상 고생하면서 자란 재래종 오동나무를 다섯 겹으로 붙여 공명통인 악기 기둥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장력이 단단하게 생기더라구요.”

현 23줄도 처음엔 자연섬유를 사용했지만 썩 어울리지 않더란다. 그래서 쇠줄을 쓰는 양금을 떠올려 높은 음은 강한 철사를 꼬아 만들었고, 중저음은 중국악기인 ‘쟁’의 악기 줄을 활용해 가는 철심을 사용했다.

“전통악기의 세계화를 생각해서 3옥타브까지 다양한 음역을 표현할 수 있는, 현이 23개인 공후 제작을 생각했습니다. 25현을 연주하는 사람이나 피아노를 하는 사람들도 어렵지 않게 연주할 수 있을 겁니다”

한껏 투명해진 공후의 선율은 전주문화방송 라디오 창사특집 ‘악기는 사라지며 제 소리를 낸다, 잊혀진 악기 공후를 찾아서’(연출 윤승희/작가 김주선)편에서 이화동 교수(전북대 한국음악과)가 직접 작곡한 작품을 전북대 한국음악과 대학원생들의 연주로 들을 수 있다.(17일 오전 10시 5분∼11시. FM 94.3MHZ)

명인의 숨결과 전통문화를 지키려는 제작진의 의지도 함께 실린 시간이다.


□ 공후

고대 동양의 현악기인 공후는 서양의 하프와 비슷하며, 틀 모양에 따라 와공후(臥:13현)·수공후(竪:21현)·대공후(大:23현)·소공후(小:13현)로 나눈다.

고대 이집트, 유대, 그리스등지에서 유행하던 공후 모양의 악기가 페르시아, 인도에 전해지고 다시 동서로 전파되었는데, 중국으로 전해진 것은 수공후, 유럽으로 전해진 것은 하프가 되었다. 문헌에 따르면 공후는 고구려 때부터 사용했으나 그 후에는 사용한 기록이 없어 어떤 음악에 쓰였는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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