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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전주시민영화제로 만나는 사람

토로( 1) 2003.03.14 12:06 추천:1

‘천지창조. GOD는 남녀의 영혼을 불어넣는 마지막 작업을 중단하고 천사다방에 커피를 주문한다. 천상계 최고의 섹시걸 미스 천의 뇌쇄적인 외모에 강한 욕구를 느낀 GOD는 미스 천과 정사를 나누게 되는데…’

이진우 감독(33·한국독립영화협회 4기 운영위원장)이 35mm 데뷔작품 ‘GOD’(2001)를 통해 보여준 엽기적 상상이다.

“소재에 대한 고민이야 끊임없이 하죠. 그런데 일상적인 고민보다 뜬금없이 떠오르는 게 있어요. 어렴풋한 이미지나 장면 하나. 그렇게 시작해서 확대해 갑니다. 완벽하진 않지만 스토리가 떠오를 때도 있죠. 이리 저리 돌려서 생각하다 보면 변형이 생기고 살이 붙게됩니다.”

영화에 담긴 멜빵바지 입은 창조주와 섹시함을 과시하는 천사다방 종업원도 ‘하늘에서 정액이 한여름 소나기처럼 퍼 붙는다’라는 문장에서 시작됐다고 고백한다.

인간의 형상에 순수한 영혼을 불어넣으려 했던 ‘GOD’의 시도는 수포로 돌아갔지만 이 영화는 △제31회 로테르담 국제영화제 단편부문 △제26회 홍콩 국제영화제 △2002부산아시아단편영화제 경쟁부문 △제5회 부천국제영화제 판타스틱단편걸작선 △정동진독립영화제 △제27회 한국독립단편영화제 초청상영 △인디포럼 사전제작지원 등 국내외 스크린의 무작위 초청을 받았다.

전주출신인 그는 71년생 돼지띠다. 전북대 독어교육과를 졸업한 뒤 97년까지 뮌헨대학에서 독문학부에 학적을 걸치고 프리츠 랑과 파스빈더, 빔 벤더스를 기웃거리다(?) 귀국, 한국독립영화협회의 단편영화워크숍을 통해 영화를 시작했다.

▲이진우 감독이 제작한 영화 스틸
윤영호 감독(35·전주영화제 디지털워크숍 전임강사)이 속한 지하창작집단 ‘파적’에 가입한 것도 이 무렵이다.

첫 작품은 5분 짜리 습작 단편 ‘사랑해’(16mm·1998)지만 독립영화계에 본격적으로 얼굴을 알린 발칙한 상상은 16mm 극영화 ‘돼지꿈’(1999·14분)부터다. “복권 당첨으로 평소 미워하던 돼지에게 안방까지 내주는 김씨 부부의 행태를 통해 물질(자본)앞에서 인간의 이성, 세계관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역시 각 영화제에서 초청이 쇄도했다.

그가 말하는 디지털은 장난감처럼 재미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디지털은 진지하게 하든 그렇지 않든 영화를 만들면서 얻을 수 있는 기본적인 재미가 있습니다. 유화를 그리듯이 다양한 기법을 사용할 수도 있고, 아니다 싶으면 덧칠도 하고… 물론 상업적 측면에서 바라보면 재미는 조금 떨어지지만.”

그의 영화제작은 지난 달 28일 서울 아트시네마에서 선보인 네 번째 극영화 ‘단순한 열정’(16mm·2003)까지 대부분 타지역에서 이뤄졌다.

그런 그가 전주와 다시 인연을 맺은 것은 전주국제영화제 디지털필름워크숍 때문이다. 제작실습 전임강사(2기·3기)를 거쳐 현재 4기생들에게 매주 이론강의와 제작실기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다.

“전주는 영화제작에 대한 인식이 잡혀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호기심과 충무로에 대한 희망이라는 양자의 조화가 쉽지는 않죠. 현재 배우고 있는 분들도 단순한 경험에 그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는 이 달 말 또 한번 전주와 특별한 인연을 만들게 됐다. 올해 전주시민영화제가 처음 기획한 독립영화 감독주간 대상자로 선정된 덕분이다.

“부담이 많이 됩니다. 하지만 감독주간에 선정됐다는 의미보다 고향에서 선후배들과 함께 영화에 대한 고민을 나눠보는 시간이라고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지난해 4월 영화제기간 그는 “그 동안 구상해오던 장편 ‘8월의 일요일들’을 기획해 조만간 제작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밝힌바 있다.

하지만 1년여가 지난 지금도 그는 변함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제작비를 대줄 제작사의 부재만은 아니었다. “스스로를 다스릴 수 있어야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그의 말처럼 그 때를 손꼽는 모양이다.


☞ 독립영화제작소 ‘파적’

이진우 감독이 ‘파적’에 가입한 1999년은 전방위 예술 지향 단체에서 독립영화제작소로 탈바꿈할 무렵이다.

파적은 1997년 창단 후 현재까지 약 20여편의 영화제작을 비롯해 각종 예술창작활동을 해오고 있는 영상제작단. “독립영화지형에서는 가장 전투적·독립적”이기에 지하창작집단이란 접두어가 붙어 있다.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앵글부분 선재펀드 2회 연속 수상 △영화진흥위원회 독립영화 사전 제작지원작 4회 선정 등 국내·외 영화제에서 상당한 성과를 올리고 있고 영화 뿐 아니라 퍼포먼스·미술·문학·음악 등 다양한 문화적 활동도 함께 하며 전방위 문화게릴라 집단으로 평가받고 있다.

전주국제영화제 디지털워크숍 전임강사 윤영호 감독을 비롯해 김정구·김설우·유하·조성제 등 젊은 감독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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