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뉴스

문화 책으로 보는 'TV 인간극장'

토로( 1) 2003.03.17 11:46

KBS 휴먼다큐 책으로 엮은 방송작가 오정요씨의 ‘TV인간극장’

‘걸은 만큼만 얻을 뿐이다. 사실 그렇다. 누구는 날아도 보고 누구는 뛰어도 보지만 걸은 만큼만 얻으며 사는 게 정석이었다. 결국 가장 평범한 추씨 할머니의 보법 속에 세상의 비밀이 있었던 셈이다’(본문 ‘추씨 할머니의 백리길’ 中)

애틋한 사연과 각박한 세상살이의 편린의 중심에 서있는 사람들…. 그들이 TV를 통해 세상으로 나온 뒷편에는 고통스럽거나 아름다운 이야기를 추적해 글로 담아온 작가들이 있다. KBS 휴먼다큐 ‘인간극장’의 작가 오정요씨(40)도 그들 중 한 사람이다.

‘인간극장’을 맡은지 4년. 그동안 제작한 프로그램도 32편이다. 그의 시선으로 방송을 통해 또 다른 세상을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책으로 나왔다. 방송과 같은 이름으로 펴낸 ‘TV인간극장’.(문예당刊)

책에는 칠십 평생 두 발에만 의지해온 추씨 할머니와 트랜스젠더 연예인 하리수의 성적 갈등과 소박한 꿈, 산골소녀 영자의 가슴아픈 사연, 16년만에 귀휴(歸休)에 나선 무기수의 갈등과 귀소 과정 등 6명의 삶이 담겨 있다.

대부분 한국방송작가상과 한국방송대상, 시청자가 뽑은 좋은 프로그램상 등 크고 작은 상을 안겨줬던 수작들의 대본이다. 6mm 카메라에 비친 실제 인물들의 소박한 삶과 방송에서 미처 전하지 못한 뒷이야기들이 화면에서 지면으로 옮겨져 더 진솔하게 전해진다.

전주대 국문과 82학번. 대학시절부터 문예운동의 선봉에서 열정적으로 활동했던 오씨는 90년대 초반 전북 지역의 문화운동을 이끌었던 ‘녹두골’과 ‘백제마당’의 한복판에 있었던 운동가 출신이다.

전북여성민우회와 전북여성운동연합 창립 당시 사무국장으로 활동하며 전북여성운동의 텃밭을 일구었던 그는 87년 전주KBS 작가로 방송과 인연을 맺으며 방송작가의 삶을 시작했다.

94년 서울로 옮긴 이후 ‘한국 재발견’‘사람과 사람들’‘TV 명인전’‘인간극장’등에 참여하면서 휴먼 다큐멘터리에 주목했다. 그중에서도 ‘인간극장’은 “사방천지 분간이 안 되고 어디로 가야될 지 모르던” 그에게 큰 위안을 주었다.

저자가 “삶을 사는 것만큼 큰 용기는 없다는 것을 배웠다”는 인간극장 속 평범한 사람들이 던지는 삶의 울림은 크다. 진정한 용기와 사람에 대한 ‘믿음’을 가르쳐주는 까닭이다.

책의 주요 내용을 소개한다.

△ 추씨 할머니의 백리 길
차를 못 타 70평생을 걸어서만 다닌 추씨 할머니의 기이한 삶을 통해 어머니들의 삶을 생각해보는 작품.
할머니에게 공짜는 없다. 한 발을 들고나도 걸어간 곳은 정확히 걸어와야만 한다. 걸은 만큼만 얻을 뿐이다. 사실 그렇다. 누구는 날아도 보고 누구는 뛰어도 보지만 걸은 만큼만 얻으며 사는 게 정석이었다. 결국 가장 평범한 추 씨 할머니의 보법 속에 세상의 비밀이 있었던 셈이다.

△ 그 여자 하리수
트랜스젠더 연예인 하리수의 성적 갈등과 고민, 그리고 한 젊은 여자의 꿈.
“제가 하루아침에 여자 같아진 건 아니에요. 어렸을 때부터 항상 그랬거든요. 남자의 몸이지만 남자를 사랑하기도 했었고, 그 사랑 때문에 아파하기도 했고, 그 와중에 그 남자에게 너무도 절망적인 그런 얘기를 들었어요…… 그래서, 내가 단 한 순간도 남자였던 적도 없었고, 남자로 살아갈 수도 없는데, 차라리 수술해서, 이것도 저것도 아닌…… 정말 완벽한 여자의 몸을 갖고 여자로 살고 싶었어요.”

△ 친구와 하모니카
잠실역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노숙자들의 삶과 완벽한 무소유에 기반한 그들의 우정. 하늘과 두한, 그리고 석현. 그들이 서로를 위해 특별히 해주는 것은 없었다.
그러나 석현이 울고 앉아 있으면 그 울음이 끝날 때까지 옆에 앉아 있었고, 하늘이 그림을 그리면 환하게 웃으며 칭찬을 해줬고, 두한이가 집에 안 들어가면 쫓아 보내기도 했다. 그들은 친구였다. 이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그들에게 ‘친구’는 그들이 가진 유일한 재산처럼 보였다.

△ 그 산골엔 영자가 산다
강원도 산골에 묻혀 원시적 순수성을 간직하며 살아가는 영자 부녀가 문명을 받아들이며 겪는 변화와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순수한 호기심.
세상에 대해 어떤 욕심도 미련도 없는 아버지다. 그런 아버지도 영자가 글을 써서 성공하는 것만은 간절히 바라고 있다. 아버지도 영자가 언제까지 자신처럼 살 수만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작가가 되면 세상에 상처받지 않고도 살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일까. 아버지의 기도는 계속된다.

△ 어느 특별한 휴가
16년을 복역한 두 죄수가 일주일간의 귀휴 기간에 겪는 갈등과 귀소 과정.
작은아들의 나이 올해로 스물다섯. 아직은 어린 나이다. 9살에 헤어져, 16년을 아버지 없이 자라온 이 아들에게 이제 와서 이토록 깊은 상처를 남기고 있으니, 참으로 몹쓸 아버지다. 그럼에도 아들은 그 아버지를 위해 이렇게 울고 있다.
아버지와 아들, 세상에 그것만큼 독한 인연이 또 있을까.

△ 아버지의 바다
육십에 눈을 잃고 어부로 변신한 아버지와, 그 아버지를 '자랑'으로 여기는 낭만적인 아들들의 이야기.
삶이 너무 지루해 더 이상은 알아낼 삶의 비밀이 없다고 느껴질 때, 그 끝에 서해 바다 갯벌이 있다. 그 곳에서, 아버지에게 삶은 알아내야 할 무엇이 아니다.
아버지에게 삶은 그저 삶일 뿐이다. 살아 있는 한 살아야 한다는 그 단순한 사실이 삶의 이유다. 삶은 그렇게 이어진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