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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서평] 지식인의 침묵은 죄악이다

토로( 1) 2003.03.05 13:47 추천:1

홀로코스트(Holocaust). 유대교에서 짐승을 통째로 구워 신에게 바치던 제사를 의미했던 이 단어는 고단한 세월을 거치며 나치의 ‘유태인 대학살’을 가리키는 고유명사로 변했다.

유태인들의 비극적인 삶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유럽의 知性들은 일대 혼란을 겪었다. 자유와 진보를 부르짖었던 행동이 한낱 지적허영에 불과했음을 깨달았고 “6백만 유태인이 죽어갈 때 우리는 무엇을 했는가”라는 자성이 그들의 기만적인 양심에 매서운 채찍을 내리쳤다. 그리고 유럽 지식인, 특히 좌파에게 “불의 앞에 침묵은 곧 불의를 돕는 것”이란 인식을 정립시켰다.

“숟가락을 떨어뜨렸는데 주우려고 보니까 벌써 훔쳐갔더군”
“갈쿠리로 시체를 헤쳤어. 벽을 오르다 손가락은 부러지고 거기다 팔이 탈구되어서 몸길이만큼 늘어난 것도 있었지”

비극은 스필버그의 영화 「쉰들러리스트」나 프리모 레비의 시 「아우슈비츠의 생존」, 아트 슈피겔만의 만화 『쥐』를 통해 철저히 묘사돼 있다.

우리는 만화라는 표현장르에 일정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쥐』의 작가 아트 슈피겔만은 이런 통상적 인식을 거부했다. 작품의 모든 배경과 그림을 투박한 펜선 하나로 표현해 한편의 정돈된 판화작품집을 보고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전한다.

실제로 이 작품은 만화라기보다 다큐적인 역사서이며 인류의 양심을 되돌아보게 하는 반성문이란 장르적 표현이 더 적절하다.(『쥐』는 단순한 만화가 아니다, 라고 강조하는 것으로 만화에 대한 유치했던 기존 관념을 고백한 셈이다)

작가는 극한적인 상황에서 살아 남은 아버지 블라덱 슈피겔만의 회고와 아버지와 끊임없이 갈등하는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를 이중구조로 전개시키며 현재와 과거를 넘나든다. 그리고 나치의 만행과 유태인의 비극을 중심으로 아우슈비츠의 생존자와 그 가족들이 줄곧 가슴앓이 해야 했던 인간적 파괴를 병치시킨다. 그리고 나치의 추적을 피하는 슈피겔만 가족의 숨가쁜 상황이 고조되는 순간, 현재 시점을 나타내는 장면을 삽입해 긴장을 누그러뜨리기도 한다.

또한 만화로 표현된 소설의 특징을 활용해 쥐·고양이·개의 상관관계를 2차대전前後 민족간의 대립·대치 상황에 적절히 대입했다. 그래서 유태인을 쥐로, 그 위에 군림하는 독일인(나치주의자)을 고양이로, 독일을 패전국으로 몰아가는데 큰 역할을 했던 미국인을 개로 표현하고 있다. 이처럼 만화 『쥐』는 작가의 철학적 인식이 지극히 단순화된 만화라는 양식 속에서 훌륭하게 구체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대상을 채색하거나 미리 판단하지 않고, 있었던 사실을 그대로 복원해 독자들에게 보여 주려는 강한 의지가 곳곳에서 발견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접근이 용이한 만화를 통해 긴장을 낮추며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이분법적 구도에서 벗어나 역사의 현장에 공존하는 개인과 집단, 진실과 허위를 정직하게 바라볼 수 있도록 끊임없이 도와준다.

『쥐』는 블라덱의 증언을 편년체로 서술하고 그 속에 현재의 모습을 뒤섞어 놓은 단순한 구성인 것 같지만, 아버지의 증언을 아들이 녹음하기 시작해 두 권의 책으로 내는데 14년의 세월이 걸렸다. 이 정도의 정성과 노력을 쏟아 부은 작품이니 만화로서는 최초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는 것도 충분히 수긍된다.

책을 덮으며 이 시대 민중의 양심을 떠올린다. 그리고 나치에 의해 자행된 흘로코스트는 너무도 똑같이 아시아 동쪽 끝에서도 재현되고 있음을 깨닫는다.

‘대한민국’은 외세에 의해 분단된 민족으로, 강대국의 전략적 필요에 의해 주권을 잃어버린 국가로 재창조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결코 잊어선 안 된다. 그리고 수십년 지속된 독재정권과 묻혀버린 인권, 개발과 경제논리 하에서 잊혀진 노동자 민중의 기본권, 국가보안법과 양심수, 서서히 드러나는 남과 북의 허상, 지금도 끊임없이 머리띠를 묶는 사람들….

다행히 얼마 전부터 반인권적 역사에 대해 분개하고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한 노력이 시행되고 있다. 그렇지만 아직도 많은 이들은 ‘내가 아닌 타인’에게 가하는 反인권적 행위들을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진실은 결국 진실. 한국의 홀로코스트를 침묵한다면 유럽 지성이 겪었던 양심의 충격을 우리도 되풀이하지 않으리란 법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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