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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내 사촌은 장애를 갖고 있어요.

여은정( 1) 2003.03.05 17:08

아침마다 버스 정류장에서 만나는 두 여중생이 있다. 한 소녀는 큰 키에 단발머리고 다른 소녀는 커트머리에 앳된 얼굴이다.

그들은 늘 도란 도란 얘기를 나누며 함께 버스를 기다린다. 처음 버스정류장에서 그들과 마주쳤을 때 여느 아이들과 특별히 다른 느낌을 받지 못했다.

그런데 어느 날 옆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나는 그녀들의 어눌한 대화와 그녀들이 기다리던 버스가 특수학교 버스라는 걸 알고는 정신지체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랬구나! 그래서 내가 늦잠을 자고 허둥지둥 버스를 타려고 했던 날 보통 중학생들이라면 벌써 학교에 가고도 남을 시간에 그녀들은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이를 지켜보던 문방구집 아주머니의 배려로 택시를 타고 갔던 것이었다. 판단력이 보통 사람들보다 조금 떨어진다는 것 외에 그녀들에게서 다른 점은 별로 발견할 수 없었다.


주변에 혹시 장애를 가진 친구나 가족이 있는가?

나에게는 정신지체를 가진 사촌이 있다. 사촌이 갓 태어난 아기였을 때는 나와 일곱 명의 사촌들은 세상에 그렇게 예쁜 애기는 없는 줄 알았다.

조그맣고 뽀얀 피부에 쌍꺼풀진 눈, 너무나 순해서 잘 울지 않는 아기를 보며 우리들은 천사같은 아기를 서로 안으려고 야단들이었다.

그러나 아기가 세 살이 되고 네 살이 되어도 말은 커녕 잘 걷지를 못하면서 우리들의 관심도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명절 때면 어른들은 뭔가 쉬쉬 거리며 자기들끼리 아기에 대해서 뭐라고 뭐라고 하다가는 작은 엄마가 들어오면 말을 딱 끊곤 했다.

아마 그 때부터 시작됐을 것이다. 그런 시선을 애써 무시하려는 듯 묵묵히 일만 하며 이젠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사촌을 위해 밥을 먹이고 똥을 치우는 건 작은 엄마만의 몫이었다.

어릴 적 우리가 제일 싫어하는 것은 성묘를 가거나 냇가로 놀러가려는 우리들을 불러 세워 사촌을 데리고 놀러가라는 어른들의 잔소리 였다. 잘 걷지도 못하고 말하지도 잘 듣지도 못하는 사촌은 우리에게 짐스러웠고 그걸 강요하는 어른들에게 우리들은 몰래 몰래 하나씩 집을 빠져나오는 것으로 응답했다.

이제 시간이 흘러 사촌은 벌써 고등학생이다. 여전히 사촌은 잘 걷지 못하고 불편하다. 항상 명절이면 마루 끝에 구부정하게 앉아 멍하니 있거나 '으..으..' 소리를 내며 지나가는 사람에게 자신을 봐달라고 의사표현을 한다.

그러나 누구도 바쁜 명절날 사촌에게 신경 쓰지 않는다. 다만 언제나 그렇듯이 느즈막히 일을 마치고 온 작은 아빠와 낮잠을 자거나 밥을 먹거나 작은 아빠와 손을 잡고 집 앞을 산책한다. 사촌의 존재는 그렇게 우리 집안에 있어서 있는 듯 없는 듯한 존재였다.

그런데 내가 사촌의 존재에 대해 생각해 볼 계기가 있었다. 그건 다름 아닌 언니가 결혼할 사람을 명절 때 인사시키러 온다는 얘기를 엄마한테 하며 저런 사촌이 있어서 좀 그렇다는 표현을 했을 때다.

사촌의 존재는 불편함이나 부담일 뿐이지 부끄러움은 아니라고 늘 생각해 왔는데 언니의 얘기를 듣고 보니 갑자기 헷갈리기 시작한다.

걸음이 느리고 말을 못하고 그러니 데리고 낑낑대며 다닐 수 없어서 부담스럽다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사촌과 함께 있을 때 사람들로부터 받을 시선 때문은 아니었을까? "장애는 불편한 것 뿐이지 부끄럽지 않다" 고 생각하는 것과 달리 내 속마음에서는 부끄러움이 있었던 것이다.

장애를 가진 사촌에 대해, 장애를 가진 이들을 만나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그냥 장애를 가졌구나 하고 보면 되는데 섣불리 나는 동정심이 불쑥 튀어나오거나 허둥거린다. 불편하다.

그러나 나는 안다. 사촌이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은 큰 소리로 웃으며 떠들고 있는 무리들 속으로 들어오고 싶어함이라는 것을. 가끔 내 손을 꼭 붙잡는 사촌이 나에게 원하는 건 부침개나 떡이 아니라 나에게 관심을 가져 달라는 신호임을.

내일 아침 버스 정류장에서 두 소녀들을 만나면 '안녕' 이라고 나는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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