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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 망명과 투옥이 빚어낸 음악

편집팀( 1) 2003.03.08 11:09 추천:1

" 크레타는 나에게 삶이라는 것이 엄청난 장난과 같다는 것으로 여기게 해주었다. 나는 만약 그러한 장난이 너무 재미있어서 그것이 삶의 가치를 파괴할 만큼 위협적일 때, 그 순간 그것으로부터 내 자신을 멀리한다. 나의 의견으로는 어떠한 인간의 가치도 삶의 가치에 비견할 수 없다. 삶을 위한 삶. 이것이 유일한 진리다. "


유럽인이며 그리스인이며 그에 앞서 크레타인 작곡가였던 테오도라키스에 대해 쓰련다.



미키스 테오도라키스라는 이름 앞에서 당신은 어떤 그림을 떠올리고 있을까. 페드라 ? 그리스인 조르바 ? Z ? 이 영화들에게서 영상만을 떠올린다면 당신은 지독히도 음악을 싫어하는 사람. 혹은 너무 빨리 잊는 사람 일테지. 그것도 아니면 너무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잠시 이마를 짚고 있는 사이 필자가 너무 채근해댄 것이었거나. 우찌됐든, 미키스 테오도라키스(Mikis Theodorakis), 그는 아직 살아있다.

그리스. 미키스 테오도라키스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그의 조국 그리스다. 소름끼치리만치 한국의 역사와 닮아있는 그리스 역사 속에서 그의 선율은 유장하게 흐른다.

이브 몽땅이 주연했던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이 연출한 영화 'Z'에는 군부독재 상황의 그리스가 나라하게 묘사돼 있다. 유신시절의 한국사와도 같은 상황... 그런 상황 속에서 테오도라키스는 자유의 출구로서의 음악을 만들었다.

어디 음악뿐이었으랴. 그는 2차대전이 끝난 뒤 일어난 그리스 내전 중에 좌파로 활동했다. 급기야 보수파가 정권을 잡자 조국을 떠나 프랑스 파리로 망명하게 된다. 그곳에서 그는 조국과 음악에 대한

그리움과 열정에 빠져 오선지위에서 잠들곤 했다. 61년에 다시 그리스로 돌아와 '그리스인 조르바'를 위시한 수많은 명곡을 작곡했지만 이후 몇 년에 걸쳐 다시 군사 독재정권에 의해 감옥 생활을 해야만 했다. 당연하게도 군사 정부는 그의 음악을 모두 금지시켰다

1980년대 전두환 군사독재 시절에 TV로 방영된 '그리스인 조르바'의 몇몇씬이 떠오른다. 그저 묵묵히 화면만 흐르던 영화. 어처구니없게도 그 명작은 너무도 고요했다. 테오도라키스의 음악이 모두 잘려 나간 채로 방영됐기 때문이다.

전씨의 어떤 졸개가 그의 음악에 칼을 댔을까. 전씨를 위시한 군사독재정권의 하수인들, 그 좀비 같은 새끼들은 테오도라키스의 음악이 두려웠던 거야. 사람들 가슴으로 일일이 파고들어 뭉클한 뭔가를 불쑥 솟아오르게 하고야 말 상황이 무서웠던 거지.

테오도라키스의 음악이 흐르는 또 한 편의 영화는 코스타 가브라스가 감독한 정치드라마 'Z'다. 테오도라키스가 감옥에 있던 69년에 제작된 이 영화에서 가브라스 감독은 그가 외국에서 도피생활을 했던 때 작곡한 곡들을 엮어서 사용했다고 한다. 그 해 영국 아카데미상은 테오도라키스에게 음악상을 안겨준다.

'그리스인 조르바'도 'Z'도 모두 희미하기만 하다면 신경숙의 소설제목에 빌미를 준 노래 '기차는 8시에 떠나네'(To Treno)를 떠올려봐도 좋겠다. 역시 그리스인인이자 그리스 공산당원인 메조 소프라노 아그네스 발차의 애절한 목소리로 불려진 노래.

어디 발차뿐이랴. 수많은 그리스 여성가수들에 의해 불려진 이 노래는 희랍어에 능통하지 못한 많은 이들에게 언어를 뛰어넘는 감동을 전하고도 남는다. 이 노래의 멜로디와 가사는 바로 힘든 역사를 살아왔던 그리스 민중의 한과 테오도라키스 자신의 개인사를 여실히 투영하고 있다.

조수미의 "기차는 8시에 떠나네"




- 박지원 원음방송 팝스갤러리(FM97.9MHZ 밤 12시~2시) PD
- 이 글은 노동자의 집 소식지 [노동이 아름다운 세상]에도 기고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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