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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나는 마을잔치가 싫다.

이민영( 1) 2003.02.17 15:40 추천:3

내가 동네에 이사한 후 세번의 마을잔치에 참여했다.

맨 처음에는 이사하고 얼마 안되어 예년보다 빨라진 추위에 급작스레 마을 전체가 절인배추로 가득찼을때 마을 회관 앞에서 아주머니들이 일손을 덜기 위해 다함께 식사를 했을 때였다.

이때는 들에서 새참먹는 기분으로 그냥 바닥에 주저앉아 통깨가 설설 뿌려진 김장김치를 조심스럽게 먹었다. 이때도 남자들은 회관 안에서 식사를 했던 것 같다. 다들 배추절이느라 추운날씨에 고생하시는 것 같아 젊은 내가 설거지를 했다.

두번째는 고향을 찾은 한 아저씨가 돼지고기와 술로 주민들에게 한턱 내겠다고 해서 마을이장님이 방송으로 참여를 독려해서 나갔다.

주방겸 아주머니들 방으로 쓰는 곳에서 바닥에 쟁반을 놓고 대충 먹었던 것 같다. 먹고 나서 설거지를 하는데 허리가 좀 아팠던 기억이 있다.

하이라이트는 세번째다.

동네 어느집에서 딸을 시집보냈다고 준비한 음식을 회관에 차려냈다. 이번에는 이장님이 친히 방문하시어 참여를 독려해서 나갔다.

큰 상 두개를 하나는 아저씨방에 하나는 아주머니방에 놓고 음식을 부지런히 날랐다. 그런제 이게 웬일, 아주머니 방에 차렸던 상 하나를 마저 아저씨들 방에 내가는 것 아니겠는가? 이 황당함, 어처구니 없음. 몇 안되는 아저씨들은 큰상에 편히 앉아 차려낸 상을 받는데 이번엔 아예 쟁반도 없이 바닥에 차려내고 남은 음식을 쟁반, 상자, 채반 그대로 바닥에 굴러다니는 음식을 먹어야만 했다.

어른들은 옆방가서 드시라고 할머니들께 여러번 권유해도 겸손하게 거절하는 할머니들이 어찌나 밉든지. 그분들이 옆방으로 가면 작은 상이래도 차려놓고 편히 먹으려 했는데... 설거지를 하면서 이게 뭔 꼴인가 싶어 기분이 상하고 소화가 안되고... 암튼 표정관리 하면서 설거지 마치느라 애썼다.

이 동네만 유난히 남녀 차별이 심한 것인지, 아님 농촌 마을들이 도시보다 더 보수적이어서 그런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이런 마을잔치가 나는 싫다.

집에와서 신랑한테 한참을 투덜거리고 하소연하다 생각을 굳혔다. 당당하게 얘기해야 겠다

'우리도 상 차려놓고 먹어요'

또 신랑이 먼저 아주머니들에게 상 차릴것을 독려하고 안되면 직접 상도 준비해주고, 게수대 앞에 먼저 서서 설거지 하기로 약속도 했다.

그런데 아주머니들이 내 말에 귀나 기울이려나? 신랑은 약속을 지키게 될 것인지 염려가 많다. 그렇지만 마을잔치에서 개선의 여지가 없어 보이면 난 절대 마을잔치에 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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