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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방송 밥 10년을 채워 가다보니, 아니 한눈팔지 않고 heavy listener의 길을 걷다보니 이제 음원이나 음반들이 거의 생물(무생물의 반대)로 다가온다.

그들은 때로 체하기도 하고 심한 오한을 겪기도 하는데, 그럴 땐 말없이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까다롭기 짝이 없는 플라스틱 속 음원들은 주로 생방송 중에 애를 먹인다.

* 스피커 볼륨을 높여주세요~


몇 달 전 Mercedes Sosa의 음반 때문에 심장 멎을 뻔한 일이 있었다. 플레이어는 소사를 받아들이지 않고 나는 그저 묵묵히 1초, 2초, 3초(보통 묵음이 7초를 넘기면 방송사고로 본다)시간의 흐름을 견딜 수밖에 없었다. 어찌어찌하여 위기는 넘겼지만 Sosa의 음원이 어찌나 원망스럽던지.....

방송을 마치고 새벽에 Sosa를 거듭 거듭 들으며 나름대로 분석을 해보았다. 플레이어가 종종 Mercedes Sosa를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 그것은 그녀의 음원,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녀의 목소리가 플레이어 재생능력의 한계를 초월하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의 오장육부를 거쳐 뿜어져 나오는 소리가 아무리 육중하다한들, 그녀의 것만 하랴. 고로 감히 그녀를 가리켜 나는 말한다. Mercedes Sosa - 대지의 어머니.

1950년부터 60년대 사이 아르헨티나와 칠레, 우르과이 등지에서 일기 시작한 이른바‘누에바 칸시온’운동의 거목인 메르세데스 소사. 그녀는 그 깊고 웅장한 음성을 무기 삼아 당시 군사 정부의 탄압과 정면으로 맞서 싸우며 인권과 민주주의를 노래했다. 그런 그녀의 음반가운데서 가장 인상적인 것 하나를 소개하는 기쁨은 클 수밖에...

Misa criolla(미사 크리요야)라는 자켓 타이틀을 가진 이 음반은 1963년 라틴 아메리카의 가톨릭 교단으로부터 승인을 받은 아리엘 라미레즈의 창작 미사곡이다. 남미의 미사곡답게 월드뮤직의 분위기가 가득한데, 최소한 40명 이상의 목소리가 섞인 합창에 오르간과 차랑고(5개의 이중현을 가진 기타의 일종), 구에나(통나무로 만든 플롯),시쿠(볼리비아의 팬파이프)를 비롯한 다양한 종류의 민속악기가 동원된다.
(이런 딱딱한 설명이 얼마나 불필요한가. 그저 이 글을 읽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시는 분들은 음반을 들려드릴테니 언제든 연락하세요)

남미의 민중들은 미사곡마저도 자신들의 흙과 바람, 숨소리로 뒤덮어 듣는 이를 전율케 한다. 잔잔한 합창 위로 서서히 움트는 Sosa의 목소리...

누가 그녀더러 편안한 옆집 아주머니상이라 했던가. 그 문화비평가의 시선은 정정되어야 한다. 그녀는 전사다. 감히 똑바로 쳐다보기 어려울 정도로 강한 빛을 뿜어내는 눈과, 주름졌으나 의지가 강한 손, 강물 줄기처럼 곧게 뻗은 검디검은 머리카락, 석상처럼 거대한 몸집, 무엇보다 깊이와 넓이를 측정하기 어려운 목소리.....

1935년 아르헨티나 북부의 투쿠만에서 태어난 메르세데스 소사는 열다섯 살이 되던 해 한 라디오 방송국에서 주최한 아마추어 가수 콘테스트를 통해 본격적인 가수의 길로 들어선다. 그녀는 성장하면서 유빵뀌나 빠라같은 누에바 칸시온 가수들의 음악을 자연스럽게 접했고 깊은 영향을 받는다. 일련의 정치적인 현실들이 아르헨티나를 뒤덮어 버리자 그녀는 선배들이 그러했듯 민주주의와 인권을 노래한다.

소사가 부드럽고 깊은 목소리로 노래하는 인간의 보편적인 가치들은 듣는 이로 하여금 더욱 절실한 희망과 저항의 의지를 느끼게 했고 정부는 그만큼 두려움을 느꼈다. 급기야 1975년 소사는 콘서트홀에서 노래를 부르던 도중 체포당했고 모든 음악적 활동을 금지당한다.

- 박지원 원음방송 팝스갤러리(FM97.9MHZ 밤 12시~2시) PD
- 이 글은 노동자의 집 소식지 [노동이 아름다운 세상]에도 기고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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