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뉴스

문화 소설이 영화와 만날때 (2)

토로( 1) 2003.02.25 09:58

소설의 재미를 영화로 확인하고 싶은 욕망은 꾸준히 있었다. 소재·구성·캐릭터 등 소설의 구성요소를 영화로 바꾸기 쉽고 베스트셀러의 경우 광범위한 잠재적 관객을 선점할 수 있었던 탓이다.

그래서 소설가 최인호와 박범신의 작품은 7·80년대 ‘흥행의 안전지대’라 불렸고 90년대 작가 장정일도 ‘아담이 눈뜰 때’‘너에게 나를 보낸다’‘너희가 재즈를 믿느냐’‘내게 거짓말을 해봐’ 등 소설을 영화화하며 한 축을 형성했다.

80년대 에로물의 대명사인 ‘애마부인’(원작 조수비·감독 정인엽), 90년대 초 포스트모더니즘을 대표하는 ‘경마장 가는 길’(원작 하일지·감독 장선우), 세 여성의 홀로서기를 페미니즘적 시선으로 그린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원작 공지영·감독 오병철), 남도 소리의 맥을 짚은 ‘서편제’(원작 이청춘·감독 임권택)도 소설이 원작이다.

그렇다고 인기를 끈 소설이 반드시 영화의 흥행을 보장하진 않았다.

200만을 울렸던 소설 ‘아버지’(원작 김정현·감독 장길수)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원작 김진명·감독 정진우)가 대표적인 예. 소설의 내용과 분위기를 살리면서 동시에 별도의 창작성을 첨가해 조화를 이루는 것은 결코 만만한 작업이 아니다.

박상륭의 ‘죽음의 한 연구’가 70년대 문학의 놀라운 성과인 데 반해 이를 영화로 만든 ‘유리’(감독 양윤호)는 90년대 가장 안타까운 실패작으로 꼽힌다.

▲영화) 너에게 나를 보낸다, 서편제, 초록물고기


우주와 생명의 연결고리를 담아내기엔 스크린 깊이가 너무 얕았던 까닭이다.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원작 양귀자·감독 장길수), ‘태백산맥’(원작 조정래·감독 장선우)도 영화로 바뀌었지만 힘은 미약했다.

원작에만 충실하면 개성 없는 모방작에 그치고 개성만 내세우면 전혀 다른 이질적인 작품으로 왜곡될 염려가 큰 우려를 보여준 예다.

‘소설보다 나은 영화, 소설과 다른 영화의 특성을 살리지 못한 연출’도 한 원인. 문자와 영상예술의 차이, 시대 감각을 극복하지 못하는 각색과 연출은 독자나 영화팬에게 실망만 안겨줄 뿐이다.

90년대 후반으로 접어들며 서사적인 재미보다 독특한 상황 설정, 스타배우에 의존한 캐릭터 등 철저히 기획 상품화된 영화제작 현실은 소설을 영화로 만드는 작업을 잠시 주춤하게 했다.

그러나 잠시뿐이었다.

박상연의 소설 ‘DMZ’를 기반으로 대박을 터뜨린 ‘공동경비구역JSA’(감독 박찬욱)는 다시 활기를 불어넣었다. 곽재용 감독은 김호식의 PC 통신 소설 ‘엽기적인 그녀’를 원작으로 흥행에 성공했고 김하인의 소설 ‘국화꽃 향기’, 이만교의 소설 ‘결혼은 미친 짓이다’도 영화가 됐다.

다양한 여성과 벌인 정사의 추억을 한 데 묶은 마르시아스 심의 연작 소설 ‘떨림’, 고엽제 후유증 문제를 다룬 이대환의 장편 ‘슬로우 불릿’(Slow Bullet), 이원호의 역사장편소설 ‘계백’, 신경숙의 ‘그가 모르는 장소’, 이진영의 ‘사월’도 시나리오로 옮겨지고 있다.

소설과 영화의 모범은 삶의 본질 파고드는 영원한 소설가이자 영화감독 이창동에서 찾을 수 있다.

‘소지’‘녹천에는 똥이 많다’ 등 80년대의 아픔을 온 몸으로 삭이며 소설들을 토해낸 그는 굳이 소설의 이야기를 빌리지 않고도 90년대 우리 리얼리즘 영화가 거둔 가장 중요한 성과로 평을 받는다.

그렇게 ‘초록물고기’를 시작으로 ‘박하사탕’‘오아시스’ 같이 시대와 현실을 담은 서사적 풍경의 영화를 선보였다.

그가 늘 달고 다니는 “소설과 마찬가지로 영화 역시 이야기가 핵심”이란 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