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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인도는 모든 것이 공존한다

여은정( 1) 2003.02.09 10:48 추천:1

"어머, 자기는 분위기가 인도 사람 같네"
이번에 인도를 같이 갔던 언니가 처음 만난 날 나에게 한 첫 말이다.
'이게 칭찬이야 욕이야 암튼 인도에 가보면 이 말뜻을 알겠지?'

처음 비행기에서 내려 뭄바이에 도착했을 때는 깊은 밤이었다. 후덥지근한 공기와 낯선 야자수 나무가 있는 광장에 서서 인도에 왔음을 채 실감하기도 전에 내게 다가온 것은 조그만 아이를 인형처럼 안은 채 눈을 깜박이며 돈을 달라고 구걸하러 온 꼬마애 였다.

첫발을 디디다

아이는 우리 일행-여행사가 같은-이 숙소로 데려갈 사람을 찾느라 웅성거리는 틈을 타 아주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이 사람 저 사람 기웃거리며 구걸하고 있었다.

이미 책을 통해 인도에 대해 익히 들었지만 이렇게 처음부터 구걸하는 아이와 약속 시간보다 한참이나 늦게 나온 호텔 직원의 등장은 이번 여행에서 편할 것은 아예 기대도 말라는 경고성 메시지로 들렸다.

이런 혼란스러움 때문이었을까 일행들의 얼굴에서 짜증스러움과 이 인도여행이 만만치 않으리라는 두려움이 엿보였다.

그 중에서도 퇴직하고 대학생 아들과 함께 온 나이 지긋하신 아저씨와 한국 돈을 환전하지 않고 그냥 가져온 대책없는 대학생 친구들, 나이는 먹었지만 아직 세상을 잘 모르는 백수인 여성 팀등은 내가 보기에도 참 걱정스러웠다.

그러나 어쩌랴? 어차피 여행도 삶과 마찬가지로 살면서 스스로 배우는 것일 뿐 누가 대신해 줄 수 없는 것을...

동행자

인도여행을 하는 동안 세 명의 파트너가 있었다.

첫 번째 동행자는 이번에 비파사나 명상을 위해 인도에 가는 과정에서 푸른누리를 통해 알게된 중학교 선생님이었고 명상을 들어가기 전 일주일 정도 함께 여행을 했다.

순천에서 사회를 가르치고 있는 언니는 아이들에게 보여줘야 한다며 디지털 카메라와 비디오 카메라를 가지고 와 가방도 무겁고 나이가 있어 걷는 것을 매우 힘들어했다.

그런데 여행에서 걷는 것을 즐기지 않는 사람과 동행한다는 것 그것도 나이 차가 상당히 나는 사람과 더군다나 주머니 사정이 다른 사람과 여행한다는 것은 서로를 아주 불편하게 한다는 사실을 첫 번째 동행자와의 여행을 하는 과정에서 깨달았다.

두 번째 동행자는 비파사나 명상수련 기간에 만난 동갑내기로 전에 귀농운동본부에서 일했던 친구다. 첫 인상부터 잘 통해서 여행하는 동안 매우 즐거웠는데 이 친구와 한 가지 안 맞는 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이 친구의 자비관 때문이다.

이 친구는 측은지심이 강해서 구걸하는 거의 모든 이들에게 돈을 줘서 구걸하는 사람이 한꺼번에 몰려들기도 하고 때로는 옆에 있는 나에게로 눈을 돌린 사람들로부터 너의 시계를 갖고 싶다 부터 반지를, 옷을 달라는 요구까지도 들었다. 하마터면 발가벗고 인도에서 거지가 될 뻔 했다.

세 번째 동행자는 한국으로 돌아오는 동안 홍콩에서 쉴 때 돈 아끼느라 하룻밤을 공항에서 머물다가 알게되어 홍콩을 함께 여행한 대학 1학년 여학생이다. 인도에서 100달러를 잃어버려 힘들게 여행했다는 이 친구는 돈이 없다 면서도 쇼핑을 즐기는 눈치다.

참 세상에 여러 종류의 인간이 있다지만 이 친구는 정말 대단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같이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박쉬시(구걸)하여 자기가 원하는 것을 다 산다. 하하... 하지만 진실을 어떻게 말해도 감추어지지 않듯 거짓말은 어떻게 해도 들통이 난다.

재미있는 인도 사람들, 무서운 한국 사람들!

버스가 고장나도, 기차가 연착 되도, 음식에서 벌레가 나와도, 사막에서 물이 없어도 인도 사람들은 노 프라블럼을 외친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서 문제를 해결한다. 고장난 버스는 고치고 기차는 문제가 해결되면 언젠가는 오고 벌레는 건져내면 된다. 물론 물은 길어오면 되고...사실 이렇게 놓고 보면 진짜 문제일 게 없다. 오히려 그것을 문제삼는 사람이 문제다.

가치관의 차이인가? 문화적 차이인가? 지금 당장 오지 않으면 경찰을 부르겠다며 소리 소리 지르는 한국인이 더 무섭다.

대충 여행자의 단계를 말하자면 초보자는 이렇게 말한다.
"인도는 기본이 안 된 나라야. 더럽고 어떤 것도 정확한 게 없고 ....".
그러나 인도여행을 오래한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천천히 밥도 먹고 씻고 좀 쉬고 있어. 언젠가는 올 테니까 지금 이 순간을 즐기라구"

이렇듯 인도여행을 하다보면 두 종류의 인간 유형만이 보인다. 자신이 갖고 있는 더러움과 고정된 입맛으로 인도음식을 안 먹고 맥도날드와 배스킨 라빈스를 전전하다 혹시 누가 자기를 등쳐먹을까 움추려 있다가 신경질적으로 얼른 인도를 떠나려는 자와 인도 사람들의 느긋함을 즐기며 터무니 없이 부르는 값도 재밌게 흥정하며 즐기는 여행자다.

그 중 어느 것을 선택할 지도 순전히 자기 몫인 것이다. 물론 나는 후자쪽 이었다. 두 번째 동행자인 친구말로는 "니가 뭔들 안 맛있겠냐? 이렇게 음식을 잘 먹는 것도 여행하는 사람에겐 복이지" 라며 칭찬을 했다.

미들 코리아를 아십니까?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의 질문 중에 빠지지 않는 말이 있다. 어디서 왔느냐이다. 한국이라고 하면 대번에 또 묻는다. 남쪽이냐 북쪽이냐?

처음에는 무심코 남쪽이라고 대답하는데 여행이 길어질수록 뻔한 질문에 대답하기가 귀찮아진다. 그래서 한 친구한테 배운 농담으로 대답한다. 미들 코리아!

인도는 모든 것이 공존한다. 쥐, 고양이, 소, 개, 까마귀, 배설물 그리고 사람들이 한데 엉켜 있다. 그것이 인도 사람들에게 부끄러움 없음, 더러움에 대한 무감각, 문제 없어라는 분위기를 만들었음을 나는 그 곳에 가서야 알았다.

진정 더러운 것은 그렇게 깔끔 떠는 자신임을, 그렇게 화내고 있는 나 자신이 문제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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