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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의 10월 유신으로 독재의 골이 한층 깊어질 무렵부터 7년여동안 절필을 선언했던 한 문학청년이 1978년 한 신문사 신춘문예 문학평론 부문에 가명으로 낸 평론이 당선됐다.

‘다 벗어 던지고 어딘가 깊이 틀어박혀서 오래오래 시를 쓰고 싶던, 교단생활 초기의 간절했던 꿈’을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정양 시인(62·우석대 교수)이 그 주인공이다.

시인은 그때를 회고하며 “당시에나 지금이나 그게 무슨 짓인가 싶어 생각날 때마다 등에 식은땀이 난다”고 말하지만 그때의 평론 당선으로 그는 시를 쓰는 일과 함께 문학평론가란 천업(天業)을 갖게 되었다.

정양 시인이 평론가로써 세상에 낸 글과 자신의 시에 대한 다른 평론가들의 글을 모아 시화집 ‘동심의 신화’(신아출판사)를 냈다. 글의 발본(拔本)은 평(評)이지만 색원(塞源)은 시를 바탕으로 한 시화집(詩話集)이다.

작품의 다층적 구조를 두루 살피는 폭넓은 시 읽기를 엿볼수 있는 이 책의 지론은 시인을 보호하려는 온정주의나 영웅주의가 올바른 작품이해를 방해한다는 것.

‘공무도하가’‘헌화가’‘서경별곡’ 등 고전작품부터 정렬, 이병훈, 최형, 이운룡, 강인한, 류근조, 김석천, 주봉구, 이영옥 등 이 지역 시인들의 삶과 작품에 대한 평까지 고루 담겨 있는 시화집에는 이면을 집어내는 발상과 털털하면서도 세심한 ‘정양시인다운’ 색채가 두텁게 녹아있다.

▲정양 시인 (사진/전북일보)
특히 ‘월북 이후 그의 시조에도 서민적 리얼리티가 살아 있는 지 궁금하다’는 조운 시인과 ‘사회·역사적 관점의 시는 그가 살던 시대의 모든 어둠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에서 비롯됐다’는 석정 시인에 대한 평론은 주목할 만하다.

책의 표제 ‘동심의 신화’는 윤동주 평론에서 따왔다. 그는 “우리가 살아온 쓰라린 시대를 위로해줄 저항시인이 하나쯤 있었으면 하는 이기심 때문에 그의 시에서 느끼는 공감의 맑은 빛깔이 흐려져서는 안 된다”며 이제 윤동주의 시 정신을 해방시켜줄 때가 되었음을 제안한다.

시인 자신, 그가 두르고 사는 평론가나 판소리연구가로서의 활동보다는 이 시대 참숯 같은 시인으로 독자들과 마주서있기를 바라는 것은 아닐까. 시화집으로 만나는 시인의 문학적 족적이 새롭다.

김제출신인 정양 시인은 1968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198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문학평론이 당선되었으며, 시집으로 ‘까마귀떼’‘수수깡을 씹으며’‘빈집의 꿈’‘살아있는 것들의 무게’‘까마귀떼’‘눈내리는 마을’등과 ‘판소리의 이해와 아름다움’‘판소리 더늠의 시학’‘한국리얼리즘 한시의 이해’등을 공역했다.

지난해 (사)민족문학작가회의 소속 젊은작가포럼(위원장 한창훈)에서 제정한 ‘아름다운 작가상’의 첫 번째 수상자로 결정됐기도 했다. 이 상은 작가들 스스로 존경하는 작가를 찾아 주는 상이라는 점에서 떠들썩한 여타의 문학상과 비교해 상에 담긴 의미가 크다.


* 필자는 전북일보 문화부 기자로 일하고 있으며 인터넷 언론과 온라인을 통한 소통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 이 기사는 전북일보 문화면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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