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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농사지을 땅이 없다

이민영( 1) 2003.02.04 16:30

맑은 봄날 나들이 준비를 하고 한 가족이 길을 나선다.

시내를 빠져 얼마간 달려 기억을 더듬으며 할머니 마을을 찾아가려니 도로는 여기저기 패여 잡풀이 무성하고 지난 여름 폭우때 아예 동강나버린 도로가 사용인구가 없으니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

도로 옆에는 논 밭이었을 땅들이 온갖 잡풀만 무성한 채 시궁창처럼 썩은내를 풍기기도 하고 저만큼 보이는 골짜기 속 마을은 귀신영화를 찍는 세트장보다 더 음침하다. 게다가 여기저기 버려진 온갖 도시의 쓰레기들은 금방 에어리언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다.

영화의 한 장면이 아니라 몇 년후 우리의 모습을 상상해 본 것이다.

얼마전 군내의 한 환경농업교육에 참가했었는데 그때 강사의 꿈이 '논 6만평을 한사람이 논에 발 담그지 않고 짓는 것'이라 했다. 대규모 농사를 사업처럼 해서 도시에서 출퇴근하는 농사를 짓게 하는 것이고 이를 위해 평생을 바쳐왔다고 했다. 그분의 꿈은 정부의 꿈이기도 할 터.

올해 농사 준비로 분주히 뛰어다녔지만...

겨우내 아랫목에 궁둥이 지지며 앞산밭에는 고추 심고 저수지쪽에는 깨와 콩을 심어 새로 얻은 밭에는 감자를? 이 궁리 저 궁리 하며 긴 밤을 보냈지만 아직도 농사계획을 마무리 짓지 못한 채 마음이 무겁다.

퇴비를 위해 건강원 찌거기를 싫어 나르고 깻묵을 사 놓고 계란껍질을 따로 모아두고 쌀겨와 우렁이를 알아보고 있지만 사실은 농사지을 논이 없다.

작년보다 더 많은 논을 빌리려 여기 저기 알아봤지만 다 잘되지 않았다. 게다가 작년에 지었던 논마저 주인이 가져갔다. 이러다가는 논 4마지기를 친구네와 함께 지어야 할 판이다.

논농업 휴경보상제 때문인 것 같다는 신랑의 분석이다.

보통 논 한마지의 임차료(도지)는 쌀 7말-1가마 정도 현금으로 15만원 이내에서 결정된다. 휴경보상제는 마지기당 20만원을 현금으로 직접 3년간 지불한다니 힘없어 직접 농사짓지 못하고 내놓았던 어른들이 다시 욕심을 낼만 하다. 게다가 3년간 호밀등을 심었다 갈아없으면 땅심도 더욱 좋아질테니 손해볼 것은 없는 모양이다.

게다가 정부수매가까지 인하한다니 동네는 더욱 뒤숭숭하다. 우리 동네는 주소득작물이 담배와 배추인데도 이리 어수선한데 논농사 주업인 마을은 아마 쑤셔놓은 벌집 같을 것이다.

이 농촌이 어떻게 변화할 지

정부의 농업정책은 신자유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하나 하나의 과정을 밟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농촌과 농업을 지켜왔던 노령자, 소작농, 소농들을 마저 정리해고 시키고 대규모 농지와 그에 맞는 시설을 갖춘(갖출 수 있는) 사람만이 수입개방에 맞서 능력(?)껏 농사지으라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골짜기마다 들어차 있는 논밭과 작은 마을들은 폐허가 되던지 대규모 농업에 적합한 형태로 변질되고 말 것이다.

이 땅에 하나의 생명으로 나서 그 본성에 맞게 살고자 농사를 시작한 남편과 마땅히 거부할 명분을 찾지 못하고 따라나선 나에게 현실은 역시 난감하다. 논 예닐곱마지기와 밭 서너마지기만 걱정안하고 지을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날마다 신랑과 꿈을 꾸지만....


* 기자는 전주에서 사회단체 활동을 하다가 얼마전 결혼한 후 남편과 함께 진안에서 농사를 지으려고 하는 신출내기 새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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