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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편집자 주] 스피커가 있는 독자들은 볼륨을 높이고 글을 읽어 주세요. 음악이 함께 흐릅니다.

오늘도 나는 빅토르 하라의 음반을 들고 스튜디오로 들어선다. '선언'을 들어야겠다고 생각하지만, 또 다시 Te recuerdo amanda (너를 기억해, 아만다여)를 듣는다.

너를 기억해 아만다여
마누엘이 일하던 공장으로 비온 거리를 달려가던 너를
활짝 핀 미소에 머리카락은 비에 젖었지만 문제될 건 없었지
넌 그를 만나러 가고 있었어. 그를, 그를, 그를
그를 만난 건 오분간이었지만
그 오분동안 삶은 영원한 것
일터로 돌아가라는 사이렌이 울리고
그를 만나고 걸어가던 넌 모든 것을 밝히고 있었지
오분의 시간은 너를 꽃피게 하네....

....그는 산맥으로 떠났어
그리고 단 오분만에 그는 산산조각 나버렸지
일터로 돌아가라는 사이렌이 울리네
많은 이들이 돌아오지 않았고 마누엘 역시 마찬가지야....

....너를 기억해 아만다여
마누엘이 일하던 공장으로 비온 거리를 달려가던 너를....




도대체 마누엘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리고 아만다는 그 5분동안 어떤 희망을 버렸을까? ON AIR에 불이 들어오고 나는 얼른 눈물을 버린다.

그리고 애청자들에게 말한다. 아무래도 안되겠다고. 선언을 마저 들어야겠다고.

내가 노래하는 건 노래를 좋아하거나 좋은 목소리를 갖고 있어서가 아니지
기타도 감정과 이성을 갖고 있기에 난 노래부르네
내 기타는 대지의 심장과 비둘기의 날개를 갖고 있어
마치 성수와 같아 기쁨과 슬픔을 축복하지
여기서 내 노래는 고귀해지네...

.... 비올레따의 말처럼 봄의 향기를 품고 열심히 노동하는 기타,
내 기타는 돈 많은 자들의 기타도 아니고 그것과는 하나도 닮지 않았지
내 노래는 저 별에 닿는 발판이 되고 싶어
의미를 지닌 노래는 고동치는 핏줄 속에 흐르지
노래부르며 죽기로 한 사람의 참된 진실들....

....내 노래에는 덧없는 칭찬이나 국제적인 명성이 필요없어
내 노래는 한마리 종달새의 노래, 이 땅 저 깊은 곳에서 들려오지
여기에서 모든 것이 스러지고 모든 것들이 시작되네
용감했던 노래는 언제나 새로운 노래일 것이네....


용감했기 때문에 언제나 새로운 노래로 남은 누에바 깐시온...

누에바 깐시온의 기수 빅토르 하라를 애청자들에게 들려줬을 때 그들은 그의 목소리가 연가에 어울린다고 말했다. 그러나 선언의 노랫말을 들려줬을 때, 그들은 심장박동이 빨라진다고 말했다. 그리고 한동안 말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빅토르 하라의 목소리는 거칠지도 크지도 굵지도 않지만 사람들을 선동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런 경우는 드물다. 더구나 그토록 사랑스런 목소리로는.

뛰어난 연극 연출가이기도 했던 그는, 민요 채보 여행을 통해 라틴아메리카 민중의 전통과 고난에 찬 생활상을 직접 보고 느끼면서 현실의 모순에 눈뜬다. 그리고 맑스주의자의 길을 걷는다. 안데스 민속악을 복원하고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집단작업을 통해 진보적 문화계의 중심에 서게 된 하라는, <한 노동자에게 바치는 기도>를 비롯한 저항가요로 국제적 명성과 함께 커다란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인민연합이 승리한 1970년 칠레의 대통령 선거에서는 노래와 연극으로 파시스트와 보수우익에 날카로운 비판을 퍼부어 선거 승리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던 빅토르 하라.... 그러나, 구데타로 인민연합은 붕괴되고 그는 손목이 부러진 채 처참한 죽음을 당하고 만다. 미국이 키워낸 피노체트 정권은 기타 하나를 들었을 뿐인 가수가 너무나도 두려웠던 것이다.

자신의 노래를 노동하는 기타가 쏘아대는 총알에 비유한 가수,

칠레 인민연합 3년과 함께 하다 사라져 버린 별. 그의 노래가 지금 이땅에 다시 울려퍼지고 있는 이뉴는 뭘까. 더 이상 새로울 것 없는 노래가 우리의 심장박동을 빠르게 하는 이유는 도대체 뭘까. 우리에게 용감했기에 영원히 새로운 노래는 남아있는가? 그렇다면 그 노래들은 지금 어디서 누구의 버려진 희망을 다시 거머쥐게 하고 있는가.

나는 오늘도 빅토르 하라를 듣는다.


- 박지원 원음방송 팝스갤러리(FM97.9MHZ 밤 12시~2시) PD
- 이 글은 노동자의 집 소식지 [노동이 아름다운 세상]에도 기고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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