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신체기관중 눈과 귀와 입은 참으로 대단한다.
자칫 그저 내 몸에 주렁주렁 달려있기에 그 소중함을 잊고 살지만 한가지라도 없다면 우리는 검은 바다 한가운데 아무런 의식없이 그저 반응하는데로 죽을날만 기다리는 생명체와 다를것이 없다고 보겠다.
우리가 볼수있게 해주는 눈.우리가 들을수도 있게 해주는 귀.그리고 우리가 보고 들은것을 말할수있게 해주는 입.
따지고 보면 어느하나 귀하지 않은것이 없는 우리의 신체기관..
이러한 신체기관들을 통한 하나의 문화를 만들어 본다면 참으로 대단할꺼같지 않은가?
보고 듣고 말하는 문화 음악
볼수있고 들을수 있고 말할수 있는 자유.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난 우리 일상속에서 그
역활들을 위해 존재하고 사멸하는 음악이라는 문화를 통해 그 진상을 밝혀보자 한다.
음악. 무어라 정의내릴수 조차 없이 발전해왔다. 오죽하면 음주가무라는 말이 생겨나지
않았는가! 그렇다. 우리민족은 노래와 춤없인 어떤 자리에서든 흥이 나지 않는 민족이다.
물론 술도 필요하다만..
군정권시절처럼 골방에 숨어서 전파되지 못하는 음악들은 희노애락을 같이 하며 눈물에
송가를 부르던 우리 조상들과 함께 해왔고 난 그런 노래들을 이젠 추억의 가요라 되새기며
노래방에서 흥얼거릴수도 있는 시대에 살고있다. 하지만 음악식민지시절은 그때뿐이라고
하기엔 지금 우리네 현실도 만만치 않다.
매년 매달 매일 수백곡씩 쏟아져 나오는 음악들은 가요라는 이름으로 음반유통을 통해
매스미디어로 전파된다. 하지만 그중에 히트하는 곡은 불과 몇십곡.그리고 그 중에서도
검열을 거치지 않는곡은 거의없다.
남녀상열지사.사회개탄.제도권 비판들을 담은 가사들은 예외없이 음란물로 취급되며
음반유통을 위해선 자진개사를 통해 다시 세상과 조우해야 한다.
사회적-性적 담론들의 검열
물론 격한 가사들이 꼭 사회영리에 도움이 되며 국가발전의 원동력이 되는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격한 가사들이 이 험한 세상을 뒤집어 놓을만한 괴력또한 없다.
음악은 듣는 사람과 만드는 사람간의 상호 무언의 약속을 통해 흡수하고 못하고의 차이지
미운 7살 취급받으며 우리들의 귀에 전달되기 전에 거름종이로 거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못믿어운 쥐며느리취급을 받으며 협회다,법인이다 하는 제도권 할아버지들의 도움을 받아 아름답고 우아한 가사가 실린 노래들로 인격도야에 힘써야만 한단다..
물론 가장 할아버지들이 힘쓰는 가사의 문체는 사회비아냥적인 아웃사이더들의 외침과
성적인 담론을 수면위로 끌어올리려는 전도사들이다. 간단히 말해서 제도권에 반항하는
자들과 진한 만남의 주선자들이 바로 그 검열의 구체적인 대상인 것이다.
간단하네. 사회적인 것과 성적인 담론. 이 2가지 비유만 잘 맞추면 우리나라 우리음악
우리가사는 고조유방의 태평성대를 이룰것인가! 사고의 바리게이트를 쳐보자.
듣는사람과 만드는 사람의 약속은 하나다. 듣고 애기해라.그리고 판단해라. 판단은
듣는 이들의 몫이지 심약하게 탁상공론하는 자들의 몫이 아니다.
누차 말하지만 강한가사 한두소절로 인생의 구렁텅이에 빠질만한 백의민족은 드물다.
있어도 그건 청취에 대한 자신의 존재가치를 버리는 행위일뿐이다.
법적으로 조금더 자세히 들어가지 못하는 필자의 무지함을 안타깝게 생각하며 앞으로
이어질 미술이라는 시각예술에 대한 사고는 계속된다..
to be continue..
자칫 그저 내 몸에 주렁주렁 달려있기에 그 소중함을 잊고 살지만 한가지라도 없다면 우리는 검은 바다 한가운데 아무런 의식없이 그저 반응하는데로 죽을날만 기다리는 생명체와 다를것이 없다고 보겠다.
우리가 볼수있게 해주는 눈.우리가 들을수도 있게 해주는 귀.그리고 우리가 보고 들은것을 말할수있게 해주는 입.
따지고 보면 어느하나 귀하지 않은것이 없는 우리의 신체기관..
이러한 신체기관들을 통한 하나의 문화를 만들어 본다면 참으로 대단할꺼같지 않은가?
보고 듣고 말하는 문화 음악
볼수있고 들을수 있고 말할수 있는 자유.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난 우리 일상속에서 그
역활들을 위해 존재하고 사멸하는 음악이라는 문화를 통해 그 진상을 밝혀보자 한다.
음악. 무어라 정의내릴수 조차 없이 발전해왔다. 오죽하면 음주가무라는 말이 생겨나지
않았는가! 그렇다. 우리민족은 노래와 춤없인 어떤 자리에서든 흥이 나지 않는 민족이다.
물론 술도 필요하다만..
군정권시절처럼 골방에 숨어서 전파되지 못하는 음악들은 희노애락을 같이 하며 눈물에
송가를 부르던 우리 조상들과 함께 해왔고 난 그런 노래들을 이젠 추억의 가요라 되새기며
노래방에서 흥얼거릴수도 있는 시대에 살고있다. 하지만 음악식민지시절은 그때뿐이라고
하기엔 지금 우리네 현실도 만만치 않다.
매년 매달 매일 수백곡씩 쏟아져 나오는 음악들은 가요라는 이름으로 음반유통을 통해
매스미디어로 전파된다. 하지만 그중에 히트하는 곡은 불과 몇십곡.그리고 그 중에서도
검열을 거치지 않는곡은 거의없다.
남녀상열지사.사회개탄.제도권 비판들을 담은 가사들은 예외없이 음란물로 취급되며
음반유통을 위해선 자진개사를 통해 다시 세상과 조우해야 한다.
사회적-性적 담론들의 검열
물론 격한 가사들이 꼭 사회영리에 도움이 되며 국가발전의 원동력이 되는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격한 가사들이 이 험한 세상을 뒤집어 놓을만한 괴력또한 없다.
음악은 듣는 사람과 만드는 사람간의 상호 무언의 약속을 통해 흡수하고 못하고의 차이지
미운 7살 취급받으며 우리들의 귀에 전달되기 전에 거름종이로 거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못믿어운 쥐며느리취급을 받으며 협회다,법인이다 하는 제도권 할아버지들의 도움을 받아 아름답고 우아한 가사가 실린 노래들로 인격도야에 힘써야만 한단다..
물론 가장 할아버지들이 힘쓰는 가사의 문체는 사회비아냥적인 아웃사이더들의 외침과
성적인 담론을 수면위로 끌어올리려는 전도사들이다. 간단히 말해서 제도권에 반항하는
자들과 진한 만남의 주선자들이 바로 그 검열의 구체적인 대상인 것이다.
간단하네. 사회적인 것과 성적인 담론. 이 2가지 비유만 잘 맞추면 우리나라 우리음악
우리가사는 고조유방의 태평성대를 이룰것인가! 사고의 바리게이트를 쳐보자.
듣는사람과 만드는 사람의 약속은 하나다. 듣고 애기해라.그리고 판단해라. 판단은
듣는 이들의 몫이지 심약하게 탁상공론하는 자들의 몫이 아니다.
누차 말하지만 강한가사 한두소절로 인생의 구렁텅이에 빠질만한 백의민족은 드물다.
있어도 그건 청취에 대한 자신의 존재가치를 버리는 행위일뿐이다.
법적으로 조금더 자세히 들어가지 못하는 필자의 무지함을 안타깝게 생각하며 앞으로
이어질 미술이라는 시각예술에 대한 사고는 계속된다..
to be contin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