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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바뀌고 교육부총리가 바뀌면서, 이곳 저곳에서 인재를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 방안으로 현행 고입평준화 제도를 대폭 뜯어고쳐, 우수 학생이 우수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교육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지역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교육감도 현행, 고교평준화 제도로는 미래사회를 주도할 민주시민을 양성하지 못한다면서 고등학교 장에게 입학정원의 10%를 선발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쪽으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고쳐야 한다며 부산을 떨고 있다. 전라북도 문용주 교육감은, 새해 들어 평준화 제도가 보완돼야 한다며 관련법을 고쳐서라도 학교장에게 입학정원의 10%를 선발할 수 있는 학생선발권을 줘야 한다고 두차례나 입장을 밝혀 전북 교육계가 시끄럽다.


'조용히 치러진' 전북 초중고생 대상 영재판별 시험

그런가 하면, 지난 14일에 치러진 전북 초·중고생 대상 영재판별시험에는 무려 4,220명의 응시생들이 영재교육 기회를 잡기위한 ‘예비 테스트’를 거치며 한겨울 차가운 날씨를 무색케 했다는 소식도 들려 온다.

영재성이 있어서 소속 학교장의 추천을 받은 학생들이라니, 영재급(?) 학생이 그렇게 많은가?’하는 생각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모두 영재로 판명돼서 한명도 탈락하지 않고 영재교육을 받아 장차 우리나라를 이끌어갈 수 있는 영재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이지만, 한켠에서는 걱정이 앞서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이러다가, 우리 교육이 영재, 천재만을 위한 판으로 변하지 않을까 정말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일부 언론에서는 연일 인재를 길러야 한다며 평준화제도를 없애야 한다는 기획물을 보도하고 있다. 여기에 화답이라도 하듯, 전라북도 문용주 교육감은 우수학생이 학교를 선택할 수 있도록, 또는 학교가 우수 학생을 선택해 가르치는 방향이 ‘합당한 교육방향이요, 대한민국의 보통교육 살리는 방향’ 이라며 욕을 먹더라도 법개정에 앞장서겠다고 선언하고 나섰다.

우리나라에서 아니, 세계적 기업으로 일류기업으로 꼽히는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지난해 6월, 주창했다는 ‘천재가 수만명을 먹여살린다’ 그러면서 밝힌 ‘천재경영’이라는 말이 언뜻 떠오른다. 이건희 회장은 2003년 6월 5일 '신경영 선언 10주년'을 기념해 핵심 사업으로 '나라를 위한 천재 키우기', 즉 천재경영을 선언했다는데, “천재 키우기 ”에 발 맞춰 교육당국은 “영재 찾기”에 나섰으며 이들 영재로 판명되는 학생들을 위한 시스템을 마련하고 있다.

글쎄, 천재가 수만명을 먹여 살린다는 얘기, 한편으로는 그럴듯한 얘기로도 들리지만, 천재는 커녕, 우수학생축에는 끼지도 못했던 나로서는 선뜻 수긍하기 어려운 주장이다.

이 사회가 천재 혼자 살 수 있는 사회인가? 교육학자도 아니고 사회학자도 아니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감히 말하건대, 너무나 오만한 얘기가 아닐 수 없다. 거꾸로 그렇다면, 수만명의 보통 사람들은 한명의 천재에게 얻어 먹으면서 살고 있다고 표현해야 하는가?


인재 살리기 열풍에 소외당하는 '평범한' 학생들

교육은 천재와 영재만을 위한 교육이 될 수 없다. 물론, 천재와 영재가 그에 맞는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점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그런 교육기관과 제도가 없어서, 천재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문제는 수없이 바뀌어온 교육제도며, 그 교육제도를 자기들의 입맛에 맞게 수시로 손질해온 기득권층과 교육관료주의다.

영재판별시험을 주관한 전라북도 교육청 담당 장학사는 이런 말을 했다. “영재판별시험을 세간에서 잘못 이해하거나 착각해 학부모의 과열현상이나 사설학원가에서의 영재판별대비반 형식의 기술적 학습반이 등장하는 등의 부작용을 우려“해 '조용히' 시험을 치뤘다고. 그런데, 이번 시험을 통해서 영재판별시험이 알려지게 됐으니, 다음부터는 이 장학사의 말대로 사설 학원에서는 영재시험에 대비한 반이 분명 편성돼 학생 모집에 들어갈 것이다.

송곳은 호주머니에 숨겨져 있어도 뾰족한 끝이 주머니를 뚫고 삐쳐 나온다는 얘기가 있다. 그러나, 송곳의 뾰죽하고 날카로운 끝도, 그 밑을 바치고 있는 두툼한 손잡이가 있어야 제 역할을 할 수 있다.

더 이상, 우리의 공교육체제를 무너뜨리는 어떠한 행위와 제도 도입은 없어야 한다. 소수의 영재보다, 천재보다 평범하면서도 소중한 수많은 학생들, 우리의 자녀들, 동생들이 차별없는 평등한 교육을 받도록 더 힘써야 하는 게 정부가 할 일이 아닌가?

현행 고입 평준화 제도가 학력을 떨어뜨렸다는 분석은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평준화 제도를 통해서, 모든 학교가 똑같이 경쟁하고 있으며 공부 잘하는 우수학생은 대부분 학교에서 똑같이 배출되고 있다. 그런데도 그런 우수 인재들이 학벌주의, 지역주의에 묻혀 희생돼온 게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 않는가?.

현행 평준화 제도를 유지하면서, 잘못된 교직사회의 승진시스템을 고치고, 교육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교육관료주의를 뜯어 고치는게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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