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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의 학생들이 부안주민들의 자체 주민투표 실시에 대해, '투표권은 없지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겠다'며 자발적인 학생투표를 시작했다. 9일 현재까지 투표가 실시된 학교는 부안중, 백산중, 백산고로 모두 세 곳. 입시생인 3학년들을 제외하고 1,2학년들을 중심으로 치러진 투표에서 95%를 넘는 참여율을 보였다.


등교거부투쟁 후 제2의 학생행동

부안 청소년들은 지난 해 40여일간의 이례없는 등교거부 투쟁으로 청소년들의 말할 권리, 자기운명결정권을 외치고 나서며, 한편으로는 '학생들을 볼모로 한 투쟁'이라는 비난을 들으면서도 꿋꿋이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었다. 그러나 정부와 대화기구가 구성이 됐던 11월 초 등교거부 투쟁을 접으며 밀린 학습을 위해 청소년 모임은 침체되는 분위기를 보여왔다. 반핵민주학교를 경험한 청소년들이 문화워크샵과 청소년 영화제 등을 치르며 그 흐름을 이어나가고자 했지만, 각기 다른 학교라는 현실과 짧은 기간의 연대의 경험은 점점 더 그 거리를 멀게 만들었었다.

그러던 중 책임지려 하지 않는 정부의 태도에 분노하며, 주민들이 자체 주민투표 실시를 선언하게 됐고, 주민투표관리위원회를 구성해 주민투표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주민투표 진행 초반부터 한켠에서 제기되던 목소리는 "부안 군민의 미래를 결정지을 중요한 투표인데 왜 청소년들에게는 참여의 권리가 없느냐"는 것이었다. 만 20세 이상의 부안거주 주민들에게만 해당되는 투표의 권한은 청소년들의 참여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청소년들도 미래를 결정지을 권리 있어요

▲청소년들의 핵폐기장 반대 홍보활동. 사진/부안21

"친구들 사이에서도 그런 이야기들이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고, 그렇다면 우리끼리라도 핵폐기장 문제에 다시 한번 동참할 수 있는 활동을 해보자, 홍보전도 벌이고 학생들끼리 투표도 해보자, 이번 주민투표 결과에 직접적으로 반영되지는 않더라도 청소년들의 뜻이 이렇다는 것을 알리는 건 큰 의미일꺼다, 이런 생각에 학교별로 알던 친구들을 모아서 제안했어요"

주민투표 시기를 즈음하며 '반핵학생연대'를 만들고, 여러가지 활동을 진행하고 있는 홍 모 양(고 2)의 말이다.

처음엔 서너명이 뜻을 모아 시작했지만, 등교거부 투쟁을 경험한 학생들은 금새 취지에 공감하고 동참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렇게 해서 먼저 시작된 것이 부안주민들의 주민투표참여를 홍보하는 청소년 홍보단. 홍보활동을 펼치고 있는 중에 핵폐기장 찬성한다던 한 주민이 '너희들 얼마 받고 일하냐'는 소리를 듣기도 해 너무 억울했다고, 활동의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한다.

그리고 몇몇 남학생들은 방학 중 짬나는 시간을 이용해 한자리에 모여 민중가요에 맞춘 율동을 연습한다. 200일 촛불집회에서 멋진 공연을 무대에 올릴 계획이라는 이 학생들은 뻣뻣하기만 하던 처음 몸놀림과 달리 이제 힘차게 두 팔을 쭉쭉 뻗으며 자신감있는 몸짓을 선보인다.


학생들은 적극 참여, 교육당국은 제지 급급

청소년들이 모이면서 함께 할 수 있는 활동을 찾던 중 시작된 것이 학생투표. 입소문과 온라인을 통해 학생투표 소식을 들은 읍내 학생들이 가장 먼저 투표를 하겠다고 나섰다.

6일 실시됐던 부안중학교 학생들의 첫 투표는 투표함을 반별로 돌리는 '인기투표' 방식으로 진행됐고 230명의 1,2학년 학생 중 225명이 참가해 210명이 방사성폐기물처리장 반대의 입장을 표했다. 백산고등학교가 투표를 치르기로 한 9일에는 바로 옆에 있는 백산중학교 학생들도 동참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점심시간을 이용해 투표를 한 결과, 중학교, 고등학교 각각 96.6%, 97.9%의 투표참여율을 보였고, 95%이상의 압도적인 반대표를 얻었다. 또 10일에도 두 개 학교가 투표를 치르기로 예정돼 있다.

▲9일 점심시간에 치러진 부안 백산고 학생들의 투표

▲기표소 안에 들어가는 것도 학생들에게는 신기하기만 하다.

학교 강당에 기표소까지 따로 마련해 제법 형식을 갖춘 투표에 참여한 한 백산중 학생은 "투표를 처음 해봐서 신기하고, 재밌었다. 내가 한 투표가 핵폐기장 막는데 큰 힘이 됐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밝히고, "어른들도 14일 주민투표에 꼭 참가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학생들의 투표는 학교별로 결과를 뽑고, 총집계를 해 14일 주민투표 개표결과 발표시 함께 발표될 예정이다. 학생투표 실무를 주관하는 반핵학생연대의 홍 모 양은 군내 학교 학생들이 자기 학교에서 투표를 하려면 어떻게 하느냐는 문의가 많이 오고 있고, 가끔은 온라인으로 소식을 접한 학교 선생님이 전화를 주기도 한다고 학생들의 높은 관심도를 설명한다.

학생들이 직접 투표에 나서자, 이를 보는 교육당국의 눈길은 곱지 않다. 9일 오전 문용주 도교육감은 부안군내 학교에 '학생들의 투표를 하지 못하게 지도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내, 뒤늦게 학생투표 불길끄기에 나섰다. 그러나 교사들의 경우에는 '학생들이 저렇게 뜻을 모아 하는 일인데 막기는 어렵지 않겠느냐'며 난감함을 표하고, 학생들은 "학교 안에서 투표를 막으면 학교 밖에 기표소를 설치해서라도 치르겠다'고 말하고 있다.

투표권이 주어지지 않은 청소년들이 자신의 의사를 표하기 위해 고안해 낸 학생투표. 등교거부가 끝난 후에도 부안청소년들의 현장 민주주의 체험과 사회참여는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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