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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폐교를 지역주민의 품으로 돌려주세요

최인( 1) 2003.08.31 08:15 추천:3

‘밤별을 관측하기에 전국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멋있는 곳’

전북 완주군 고산면 삼기리에 위치한 삼기초등학교를 일컫는 말이다. 그런데, 삼기초등학교는 2003년 2월 28일, 50여년의 역사를 끝으로 문을 닫았다. 농촌 소규모 학교였지만, 다양한 특기적성 교육은 항상 도시학교를 앞질렀으며 언제나 지역 주민과 한데 어우러져, 학교활동이 곧 지역주민의 공동체 활동이 돼 왔었다. 그렇지만 아쉽게도 학생수가 줄어들면서, 통폐합의 아픔을 피하지 못했다.


학교를 살리기 위한 지역 주민들의 남다른 노력

그러나, 지역주민들은 읍내에 있는 고산초등학교로 마냥 통폐합되도록 방관하지 않았다. 큰 학교에 흡수돼 삼기초등학교가 흔적조차 없어지는 식의 통폐합은 싫었던 것이다. 그래서 생각해낸 게 비슷한 규모면서 인근 어우리에 있는 서초등학교와 동등한 통합을 시키고 교명도 삼우초등학교로 변경했다. 통폐합 대상 학교가 같은 통폐합 대상 학교와 통합한 사례는 전국에서 처음이었다. 그만큼, 지역 주민들의 ‘삼기초등학교’ 사랑은 남달랐다.

그뿐 아니다. 학생은 통합해서 이웃 학교로 가지만 덩그렇게 남게 되는 학교건물을 마냥 방치하거나 개인에게 넘어가도록 그냥 둘 수는 없었다.

머리를 짜낸 것이 지역주민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바꾸는 것이었다. 삼기초등학교는 특히 그 위치상, 변변한 문화 공간이 없는 완주군 동북부일대 즉, 고산,화산,비봉,경천,동상, 운주 등 6개면 일대의 중심지여서 문화공간으로 꾸미면 6개 면 일대 주민들에게는 더할 나위없는 공간이 될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러나 대책이 없는 재원마련이 문제였고 가칭 ‘완주전통문화 체험센터’로 탈바꿈시키려는 일부 주민들의 순수한 의도는 물거품이 돼 버렸다.


주민들 모르게 추진된 폐교 매각

그러던 어느 날, 삼기초등학교 건물의 매각 공고가 완주교육청 인터넷에 올랐다. 주민들은 ‘이게 무슨 소린가?’ 하고 교육청에 문의했으나 통합 학교인 ‘삼우초등학교‘의 개축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서 매각할 수 밖에 없다는 대답을 들어야 했다. 이미 지난 4월에 전라북도 교육위원회의 공유재산 매각에 따른 의결까지 거쳤다는 입장만 확인했다.

이럴 수는 없다는 심정으로 이곳저곳을 통해 알아본 결과, 교육청이 한 가지 사실을 간과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지난 99년에 대통령령으로 제정된 ‘폐교재산의 활용 촉진을 위한 특별법 시행령’은 폐교 재산 처분 때의 기본 방침으로, ‘지방자치단체와 연계해 폐교활용 방안을 모색하고, 폐교 재산의 대부와 매각시에도 지역주민의 여론을 수렴해 반영하도록 하고 있으며, 매각이나 양여등 처분할때에도 지방자치단체에서 지역주민을 위한 공익사업에 활용하고자 할 경우에는 무상으로 대부하거나 양여를 추진하도록 장려’하고 있었던 것이다.

완주 교육청은 폐교 재산 활용에 따른 이같은 대통령령과 시행령이 분명히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인터넷에 매각계획공고를 낼 때까지도 사전에 지역주민의 여론을 수렴하거나 의견을 들은 적이 없었던 것이다.

삼기초등학교 17회 졸업생이며 학교운영위원장을 지낸 구윤회씨는, "매각이나 임대 양여절차를 주민과 아무 통보나 상의없이 교육청이 일방적으로 은밀하게 진행시켰다"며 불과 얼마전에서야 이같은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구 씨는 "지난 2월, 폐교를 앞두고 급히 서둘러 마련했던 기획안이 재원 마련대책이 없어 중단됐을때 참으로 허탈했는데, 이런 폐교재산 활용에 따른 대통령령이 있다는 것을 진즉 알았더면 얼마나 좋았겠는가?"라고 말하면서 이제라도 "완주교육청은 옛 삼기초등학교 건물과 운동장이 지역 주민의 품으로 돌아 올 수 있도록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하고 있다.


완주교육청, '재원 마련위해 팔 수 밖에 없다'

완주 교육청은 다른 입장이다. 이미 지난 4월에 도교육위원회의 매각 동의를 받았고 통합학교의 개축을 위한 재원 마련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옛 삼기초등학교를 팔아 3억원 가량의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전라북도교육청의 폐교재산 활용방침
완주교육청 경리담당 관계자는 "통합학교인 삼우초등학교에 재투자하기 위해서 팔아야 한다, 이 때문에 무상양여는 안된다는 사실을 지난 5월쯤에 완주군청에 알리고 매각 사실을 통보했다"고 밝혔다. 물론, 폐교 재산 활용지침상에 지방자치단체에서 지역주민을 위한 공익사업에 활용하고자 할때는 무상 대부를 추진할 수 있지만 이번 경우는 통합학교 개축 재원 마련을 위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지역주민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 우선 완주교육청은 폐교재산 활용을 위한 특별법과 시행령 규정에 재산 매각에 앞서 자치단체와 지역주민의 의견을 수렴하도록 하고 있으나 지역주민의 의견 수렴과정을 생략한 것이다. 또한 폐교 학교를 팔아 통합학교의 개축이나 신축 재원을 마련하라는 법적근거도 없다. 이제까지 문을 닫은 수많은 폐교 가운데도 아직껏 팔리지 않은 폐교도 많은데다, 이번처럼 문을 닫자마자 곧바로 교육위원회의 매각동의를 얻어 단숨에 매각공고까지 낸 경우는 드물다.

그 때문에 주민들은 교육당국이 자신들을 기만하고 있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 옛 삼기초등학교 운영위원을 지낸 박홍규씨는, "여기(삼기초등학교)를 팔아서 통합학교의 건축 대금 마련하겠다는 것은 교육청에서 우리 주민들을 기만하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통합학교의 개축, 신축 재원은 당연히 교육당국이 별도의 예산으로 지원해야 하는 게 당연하다"며 그를 빌미로 누구나 탐낼만한 폐교를 대다수 주민이 모르게 서둘러 매각을 추진했다는 것은 좀 납득하기 힘든 조치라고 반박한다.

또, 통합학교의 1년여에 걸친 개축 공사 기간만이라도 통합 학교 학생들이 삼기초 교실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배려해달라는 요구조차 완주교육청이 완강히 거부하고 긴급히 매각에 들어간 것은 교육당국이 보여야 할 모습은 아니라고 꼬집는다.

▲위) 폐교전 가을운동회 모습. 아래) 삼기초 운영위원 지낸 박홍규씨와 폐교 직전 삼기초등학교 운영위원장을 지낸 구윤회씨.


매각 절차 중단하고 주민과 함께 활용방안 마련해야

완주군 고산면과 경천, 운주면 등 6개면 지역 주민들은 완주교육청이 즉각 매각을 위한 절차를 중단하고 지역 주민의 여론 수렴절차를 거친 후 지역주민이 원하는 방향으로 활용방안을 마련할 것을 촉구하면서 주민들의 서명을 받고 있다. 또 지방자치단체와 지역 사회의 공개적인 논의를 거쳐 활용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말로 학생과 지역 주민을 위한다면, 매각절차를 중단해야 한다.

완주교육청은 지난달 14일까지 한달여간 삼기초등학교 매각을 위한 계획공고를 인터넷상에 실시했다. 추석이 지난 이후 매각 입찰을 위한 본 공고를 낸다는 계획이다. 어찌보면, 폐교인 삼기초등학교 매각은 통합학교의 시설투자를 위한 목적을 지녔으므로 표면상으로는 정당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폐교 재산 활용지침에 따른 절차는 분명히 생략됐으며 그 과정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통합학교의 개축을 위한 재원 마련을 위해서는 삼기초등학교를 매각할 수 밖에 없다는 논리로 본질을 호도하지 말고, 그야말로 폐교재산 활용에 따른 대통령령에 입각해 ‘지역 주민이 원하면 지역주민에게 되돌려 주는’ 교육행정을 펴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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