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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세와스와니 직장폐쇄에 맞선 투쟁을 계기로 인연을 맺어온 한일노동자연대가 올해도 그 끈을 이어갔다. 올해로 15차를 맞이한 일본방문단은 9월 28일부터 이달 4일까지 고베와 오사카지역의 노동자들을 만나고 돌아왔다. 

 

일본노동자들은 첫날 환영식에서부터 방일단에게 ‘불나비’를 연습해 불러주면서 감동을 안겨주었고, 부당한 해고에 맞선 공동실천행동을 펼치면서 국적을 넘어 같은 노동자임을 확인하는 소중한 연대경험을 만들어줬다.

 

또 토론회에서 방일단은 복수노조 교섭창구단일화 문제점과 그에 따른 악용사례로 전주대/비전대 투쟁을 보고하고, 희망버스 투쟁도 전했다. 일본 노동자들은 일본 대지진 긴급지원 행동보고를 하면서 한일노동자 현안을 진심 어리게 나눴다.

 

6박 7일 매 만남 하나하나 소중했고고 풀어놓고 싶은 이야기가 한 타래지만 그중에서 투쟁사업장 상황과 장기투쟁 노동자 소개, 그리고 후쿠시마 원전사고에 따른 노동자 상황을 전한다.

 

▲방일단 첫째날 환영파티 후 촬영한 단체사진. 환영플랑에는 "그래도 희망은 노동운동"이라고 적혀있었다.

▲셋째날 유니온넷과 연대넷과의 토론회. 한국복수노조 교섭창구단일화의 문제점과 그 악용사례로 전주대/비전대를 보고했다. 그리고 김진숙 지도위원의 85호 크레인농성과 희망버스도 전했다.

 

노조 만들었다고 직장 폐쇄하고, 해고하고... 일본사장님도 똑같네!

 

동요외업회사 고베공장은 지하수도관을 만드는 곳으로 관리자의 폭언과 성희롱 등 부당노동행위가 심한 사업장이다. 1명으로 시작한 노동조합이 1년도 되지 않아 전체노동자 85명 중 65명으로 늘어났고 사측은 노동자를 경영의 어려움을 들어 직장을 폐쇄했다. 노조는 동일본 대지진으로 수요가 늘어났고, 고베공장만 폐쇄하는 등 명분 없는 직장폐쇄라고 주장하면서 임금보장과 해고철회를 위해 투쟁하고 있었다.

 

방일단이 공동행동에 나선 날, 사측이 정리해고 관련 답변을 1주일 내로 주기로 했지만, 연락조차 없자 유니언노조는 사무실을 항의 방문했다.

 

▲둘째날 동요외업 고베공장 사무실 앞. 공장폐쇄와 책임있는 답변 회피를 규탄하는 공동행동을 벌이고 있다.

▲사측은 책임자가 없다며 회피하려 들었고 급기야 경찰을 불렀다. 사측은 계속된 항의 끝에 성실한 단협을 약속하는 문서를 노조 앞으로 보내기로 했다.

 

노조는 “우리는 생활이 걸려 있다. 왜 약속을 안 지키냐. 우리가 해고됐다고 물러설 것 같냐. 약속을 어긴데 사과하고 제대로 단협을 약속하라”고 항의했지만 사측은 “책임자가 없으니 말 못한다”며 책임을 회피했고 급기야 경찰을 불렀다. 경찰은 상황을 파악하고 주차장에 있는 차량 번호를 모두 적어갔다. 일본자본가의 행태도 한국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해고된 지 15년, 20년. “그래도 끄떡하지 않아”

 

일본에서 4일째 날. 방일단은 4팀으로 나뉘어 민박을 진행했다. 이날 오노 히로코, 고바시 에이코씨 등을 만날 수 있었다. 그녀들은 마쓰우라 진료소에서 각 접수와 조제일과 간호사로 근무하고 있었지만 92년, 95년에 해고돼 지금까지 투쟁하고 있었다.

 

마쓰우라 진료소는 많은 노조와 산재보험피해 노동자의 싸움과 협력에 의해, ‘노동자의 목숨과 건강을 지키는 의료기관’으로 설립됐다. 그러나 경영진이 변절하고 이윤 우선의 경영을 추구하게 되면서 91년부터 노조공격을 시작했다. 현재까지 조합원 12명의 징계해고하고 조합원에게만 임금 인상을 거부, 보너스 미지급 등 부당 노동행위와 계속 싸우고 있다.

 

그녀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장기 노동쟁의를 해결하기 위해서 더욱더욱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고, 지금은 단결의 장소와 수입을 확보하면서 투쟁을 계속하기 위해 노인과 장애인 간병시설을 해고자 7명 등과 함께 2002년 개설해서 운영 중이기도 하다.

 

▲넷째날 만난 오노 히로코, 히구치요자기, 나가사와(왼쪽부터). 히구치씨는 노숙인 활동가로 나가사와씨는 청소노동자로 살아왔다.
사진을 찍은 곳은 '지저여행'이라는 레스토랑으로 전국금속기계노동조합 다나카 기계지부가 운영하는 곳이다. 노조를 말살하기 위한 사측의 직장파산에 맞서 13년간의 투쟁 끝에 공장과 토지 획득하게 된 성과로 만들어졌다. 지역민 복지에 도움이 되고자 지부 내 토지에 있는 온천을 파서 미네랄 워터와 온천수를 사용한 맥주를 제조하고 레스토랑도 운영하고 있다.  
위에 세분은 전국금속기계노동조합의 조합원이다.

 

미조직 일용직 노동자들은 원전에서 계속 피폭 중.
피폭된 농산물 값싼 가격에 유통... 소비는 저임금 노동자 몫.

 

올해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사고에 따른 여파로 일본에서는 직・간접적으로 관련 얘기를 접할 수 있었다. 먹을거리가 안전하다고 선전하는 TV 뉴스와 피폭된 농산물이 싼값에 출하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후쿠시마에서 원전 노동자들의 열악한 상태와 도쿄에서의 반 원전 시위까지 말이다.

 

일본 뉴스에서는 후쿠시마 현 근방에서 쓰나미 피해를 딛고 쌀을 수확했다며 그 쌀로 지은 밥을 기자가 시식하고는 “맛있다”고 선전했다. 2008년 미국의 광우병 쇠고기 수입 우려에 따른 촛불집회가 시작되자 한국정부 고위직 관계자들이 미국 쇠고기를 시식했던 꼴과 닮아있었다. 

 

일본 국민의 최대 관심사는 먹거리기 때문에 안정성을 홍보하고 있다는 것인데 방사능이 일정 수치 이하면 피폭된 농산물도 출하되고 있다. 후쿠시마는 과실 곡창지대가 많아 농가가 큰 타격을 받았는데 특히 복숭아는 아주 싼 값에 출하되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 노동자상태를 전해준 관서노동안전센터 사무차장은 자신은 가난하기 때문에 후쿠시마 쌀을 먹는다고 말했다.

 

후쿠시마 원전에는 하루 300여 명의 일용직 노동자들이 동원되고 있는데 이들의 피폭량은 연간 허용 피폭량의 수십 배에 달하지만 안전교육이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 임금도 하청이 10차까지 가있어 손에 쥐게 되는 돈이 얼마인지도 모르는 상태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6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탈원전 시위 모습.

 

유니온넷과 토론회 통역을 맡아준 재일교포 곽진웅씨는 “대지진은 복구하면 끝나지만,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며 “정부도 도쿄전력도 침묵하고 있다. 해외에서는 일본정부가 국민을 대상으로 생체실험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는 사실도 언급했다.

 

정부는 안정을 찾았다고 말하고 싶겠지만, 도쿄에서는 매주 탈원전 시위가 최소 몇 천에서 6만명까지 꾸준히 벌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언론도 마찬가지여서 안전성 홍보만 열을 올리지 시위 보도는 일절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흰머리, 대머리 돼도 “투쟁”

 

▲셋째날. 전항만 건설지부 빌 미화 사업장 간담회. 일본도 공공기관 청소를 민간위탁방식으로 운영하고 있었다. 계약만료후 고용승계가 안 되면 더 열악한 조건에서 근무해야 한다. 간담회가 끝나고 성의를 담은 선물을 주고 받았다.  

▲여섯째날. 후지타건설 본사 앞에서 집회를 벌였다. 후지타건설은 한국의 현대건설 같은 원청 대기업 회사다. 연간 수익이 6000엔을 넘지만 경영상의 어려움을 들어 조합원 2명을 해고했다.

 

일본 활동가들은 일본 속담에 “천세 만세까지 춤춘다”가 있다면서 환갑이 넘어도 대머리, 흰머리가 돼도 청춘처럼 투쟁하고 있었다. 자세히 언급하지 못한 오사카 관청 청소미화노동자도 후지타 건설에서 경영상의 이유로 해고됐지만 노조활동이 진짜 해고사유인 노동자도 그랬다. 

 

한일노동자연대가 20년을 넘어가고 있다. 이 기간에 한국도 일본도 노동조건의 후퇴에 맞선 치열한 투쟁과 그 고민을 함께 벌여왔을 터다. 앞으로도 한일노동자연대가 더더욱 지속되고 깊어지고 넓어지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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