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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들이 절망의 구렁텅이로 몰리고 있다. 하나 둘씩 죽음을 선택하는 이들 앞에 살아남은 자들은 분노와 무력감으로 치를 떨고 있을 뿐이다.

파업투쟁 도중 고공시위를 하던 크레인에 목을 멘 김주익 열사는 대기업 노조의 지회장이었다. 해고자들이 들어올 수 없도록 바리케이트가 쳐진 회사 정문에서 분신을 시도해 중태에 빠져있는 이해남씨는 중소기업 노조의 간부였다. 비정규직 노동자 결의대회에서 분신해 끝내 운명한 이용석 열사는 공기업의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한 가족의 아버지인 이들을 끝내 죽음으로 몰고 간 그 절망은 무엇일까.

군산축협노조는 전북지역의 장기투쟁사업장 중 하나이다. 이들은 지난 4월 익산축협과의 합병과정에서 노조원 전원이 해고당해 복직을 위한 투쟁을 벌이고 있다. 이들이 지금까지 겪었던 탄압은 험난한 것이었다.

저임금과 조합장의 부정을 견디지 못하고 뜻을 모아 노조를 설립한 것이 지난 2000년 5월 9일. 5∼6년차 직원의 임금이 한달에 67만원 수준이었고 조합장은 축협의 부실재정을 메우기 위해 직원들에게 대출을 강요해 대부분의 직원이 빚을 지고 있는 상태였다. 때문에 노조는 설립 이후 축협 측과 교섭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했다. 하지만 축협 측의 성의 없는 태도에 노조는 176일의 장기파업으로 맞섰고 그 와중에도 10개월 간 진행된 교섭은 결국 결렬되고 말았다. 축협 측과의 갈등이 계속되는 중에 노조원들에게는 온갖 회유와 협박이 계속됐다. 심지어 조합장에게 가스총으로 위협 당하기도 했다. “노조원들은 모두 해고하겠다”는 협박도 수시로 들었다.

그리고 지난해 말과 올해 초 군산축협의 부실한 재정으로 익산축협과의 합병이 진행될 때 노조에 가입해있던 8명의 조합원들은 전원 해고됐다. 이들 외에 다른 해고자는 없었다. 축협 측이 밝힌 해고 사유는 협의를 통해 결정된 정리해고 대상자라는 것. 하지만 노조측이 위촉한 협의위원들 대신 축협 측이 새로 위촉한 협의위원들과 협의가 이뤄졌기 때문에 노조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결정이었다.

전 군산축협노조 지부장 장덕량씨는 당시의 이야기를 전하며 울분을 토한다. “정리해고는 정당한 이유로 적법한 과정에 걸쳐 이뤄져야 하는데 이건 누구도 납득할 수 없는 처사입니다. 더구나 경영상의 이유로 정리해고를 한다면서 별달리 필요가 없는 고액임금 관리직이 한 명도 해고당하지 않았다는 것은 더더욱 말이 안되죠.” 장씨의 말대로 정리해고 이후 축협에 남은 노동자는 10명, 반면 노동자 몇 명의 합친 임금보다 많은 돈을 받는 관리직은 3명이나 된다. “조합장과 관리직들의 부실로 합병이 됐는데 그 결과로 노동자들이 짤려야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장씨의 말은 더욱 설득력 있게 들린다.

졸지에 직장에서 쫓겨난 8명의 노동자들은 생계조차 위협받으며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전국축협노조에서 달마다 생계를 꾸려나갈 정도의 돈을 보내주고 있어서 버티고 있습니다. 하지만 투쟁이 길어질수록 암담한 건 어쩔 수 없지요.” 그나마 장씨의 경우는 나은 편이다. 그는 아직 미혼이라 가족이 없지만 나머지 7명의 노조원은 모두 한가족을 책임져야하는 가장이다.

이런 상황에서 곳곳에서 죽음을 택한 이들의 사연은 더욱 남다르게 다가온다. “유서를 보면 남 얘기가 아니에요. 모두 지금 저희들이 겪고 있는 일들이죠. 그 분들이 죽음을 선택한 건 절박함 때문이죠. 정말 어쩔 수 없는 노동자들의 설움입니다.” 그는 투쟁과정에서 노동자에 대한 차별과 벽을 만날 때 절망을 느낀다고 한다. “검찰에 고소하고 중앙노동위원회에 제소를 해도 그들의 불공정한 수사 때문에 분노할 때가 있죠. 그럴 땐 정말 절망적입니다.”

군산축협노조와 같이 노조탄압을 받고 있는 사업장은 전국에 60여개가 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이는 제2, 제3의 김주익, 이용석이 언제든지 나올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회사측의 전근대적인 노조관, 약자를 외면하는 정부기관들, 언론의 악의적 보도가 모두 노동자들을 몰아세우고 있다. 정부가 여전히 책임을 미루고 있는 가운데 바로 오늘 또 다른 노동자가 죽음을 선택하길 강요받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 전북대신문 118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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