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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서울의 전국 비정규직 노동자대회에서 온몸을 불사른 목포시민 이용석(32)씨.

이용석 씨는 근로복지공단 목포지사에서 계약직으로 근무하며 비정규직 광주전남지부장을 맡고 있었다. '이용석 씨는 성실함과 책임감'으로 살아온 사람이라는 게 주위 동료들의 평가다.

72년 목포 산정동에서 태어난 이 씨는 목포에서 산정초등·문태중·홍일고등학교를 나와 전남대 금속학과에 91년 입학했다. 신안군 흑산면 비리가 본적인 그는 2남 5녀중 5번째로 차남이다. 98년 2월에 졸업을 마친 후 그는 2000년 근로복지공단 목포지사에 조사요원으로 입사했다. 그렇게 2년을 거친 후 작년 1월 계약직 직원으로 채용돼 일해 왔다.

이용석 씨의 남다른 '책임감'은 올 여름 한 사건에서도 드러난다.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정부과천청사에 가서라도 집회를 하자고 요구했으나, 반응이 냉담하자 그는 '혼자라도 투쟁해야겠다'는 생각에 곧바로 정부과천청사로 올라가 '근로복지공단의 비정규직 차별을 철폐하라'며 뜨거운 여름에 물병 하나만 들고 1인 시위를 벌였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그는 탈진 직전까지 간 후에야 1인 시위를 끝마칠 정도로 그의 책임감은 유별났다.

직무에 있어서도 남달랐다. 동료들은 이용석 씨는 직무를 처리하면 일을 깔끔히 마무리할 정도로 묵묵히 자신을 일을 수행해 선배들로부터도 '성실한 직원'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노조 일을 진행할 때도 그런 그의 과묵함과 추진력 때문인지 너무나 '순박하고 책임이 강한 사람'이라는 평가과 함께, 한편으론 너무 지나친 책임감으로 '외골수'라는 평가도 동시에 받았다.

근로복지공단비정규직노동조합(조합원 660명)은 ▲고용안정 ▲비정규직 차별 철폐 등을 내걸고 27일 총파업을 예고해 놓은 상태였으며, 11차례 교섭을 벌였으나 교섭의 진전은 없었다. 목포지사의 경우 비정규직 노동자는 8명이 있다.

▲이용석씨가 청소년공부방에서 아이들을 가르친 중 2 출석부. 선생님란에 10월 20일, 21일 수학과목 표시에 이용석, 이 라고 각각 적혀 있다. 그는 지난주까지 만도 아이들과 밝게 웃으며 수업을 진행했다고 한다. 사진/우리힘닷컴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하는 것은 이용석 씨는 사회구성원으로서, 어른으로서 남다른 책임감 때문이었는 지 목포에서 그는 자신의 밤시간을 쪼개 공부방 선생님으로 아이들을 가르쳤다.

목포시 창평동 목포신협 4층 공부방에서 그는 꾸준히 가정이 어려운 중학생들을 위해 수학과목을 가르쳤다. 그는 목포청소년공부방의 대표선생님을 맡고 있다.

<인터넷한겨레>에 공부방(mockpo21)이라는 아이디로 글을 올린 동료교사는 "앞주만 해도 공부방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농업박물관으로 추계 야외학습을 나가서 싸온 김밥을 나누어 먹으며 이용석 님과 상대편을 이루어 학생들과 축구도 하고 그랬는데 정말 믿기지 않는다"며 안타까워했다.

이어 동료교사는 "몇년동안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대부분의 일을 혼자 떠맡아 오시다시피 해서 이제는 선생님 수도 제법됐고 후원해주시는 분도 많아서 이제야 안정되어가나 싶었는데…"라고 하면서 "학생들에게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모르겠지만 사실대로 가감없이 말해 주겠다. 아이들이 커서 어떠한 사람이 될 지는 모르겠지만 단지 이 사회에서 올바른 생각을 가진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이 이용석 선생님의 뜻이라 생각하고 사실대로 말해야 할 것 같다"고 적었다.

병원 응급실 관계자는 "전신 3도 화상을 입었으며, 흡입화상이 있어 생명에 지장이 있다"고 밝혔다.

▲왼쪽)텅빈 교실. 그가 없으면 이곳을 누가 채워줄까. 오른쪽)사무실은 이용석 지부장의 분신소식을 듣고 10여명이 급히 상경해 상당부분 자리가 비어 있었다. 직원들은 뜻밖의 소식에 모두가 말을 잃었다. 사진/우리힘닷컴


▲이 씨가 근무했던 목포근로복지공단. 사진/우리힘닷컴
이용석(32)씨의 유서

위원장님께/집행간부님들께

32년 평생(일생)동안 우리 공부방 어린 학생들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 희망을 잃지 않은 내 삶의 스승이자 등대였습니다.
내 어두운 미래나 긴 터널 속에서 나를 빛으로 깨우게 한 나의 동반자 였습니다.
동지 여러분! 그 희망과 빛으로 6개월 시간을 동지들과 함께 하였습니다.
정종우 위원장님, 정혁준 부위원장님, 이상엽 서울본부장님, 현수원 부산본부장님, 신순호 대구본부장님, 채경자 사무차장님... 동지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봅니다.

그 흔한 단체사진하나 없네요. 수개월동안 동거동락한 기억과 추억과 감동속에서 아무런 상의도 없는 제 행동을 너그러이 용서를 바랍니다.
10월 9일 중앙집행위에서 파업을 결의하였을 때 이미 오늘을 예고하였습니다.
참여하지 않은 조합원, 깨어나지 않은 조합원에게 몸으로써 느끼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들의 몫을 제가 다하고자 합니다.
정종우 위원장님, 서울본부장님,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제 마음을, 간절한 마음을 받아주십시오. 부탁입니다. 이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아실줄로 믿습니다. 짐을 꾸리기 위해 목포서 내려가는 버스가 유난히 과속을 하네요.
자주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는 없지만 이를 악물고 울지 않을 것입니다. 무책임하고 무모한 행동이라 욕하며 비웃어주세요.
어머님 얼굴 뵙지를 못하고 가네요.

2003. 10. 23. 심야우등버스 안에서 이 용 석




-관련기사 : [무엇이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모는가]

- 김유승기자 woori1@woorihim.com
- 기사출처 : 우리힘닷컴 http://www.woorih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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