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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회에서는 이밖에 김창한 금속노조위원장과 손석형 경남본부장의 투쟁연설과 한진중 조합원의 추모시 등이 이어졌으며 결의문을 낭독을 끝으로 마무리됐다.

대회를 마친 참가자들은 상복차림의 지도부와 김주익 지회장의 영정 100여개를 앞세우고 중부서와 영도대교를 거쳐 한진중공업까지 역 5Km에 이르는 거리행진을 나선다.

[영상] 노동탄압분쇄 부산대회


- 2003년 10월 29일 / 8분 04초
- 촬 영 : 서미숙
- 편 집 : 김현상



전국노동자 부산대회 참가기 -서미숙 기자

또다른 동지의 죽음을 막기 위해서라도 총파업투쟁을 성사시키고 정권과 자본에 칼끝을 겨누자

<인터뷰1-참담한 사람들>

영도대교에서 만난 부산 영선중2학년 이창민, "임금도 작고 힘든 노동환경에서 21년 일한 노동자가 해고당한게 문제다, 한진이 죽인 거다"

"경제가 어려운데 임금 좀 더 받겠다고 저렇게 길을 막고 난리냐"
부산 시민들은 다 안다. 김주익 열사가 왜 죽었는지. 그리고 누가 죽였는지.

다만 그 충격이 너무 커 침묵하거나 발을 동동 구를 뿐이다.


<인터뷰2-자본에 반격을>

한진 해고자 부인(12년전), "박창수 열사 때 장례투쟁 이후 남편이 해고됐다. 아직도 해고싸움은 계속되고 있다. 해고된 뒤 감옥에 갔을 때 김주익 열사와 함께 투옥되어서 김주익 열사 부인과 옥바라지 함께 하러 다녔었다. 나는 남편이 노동운동을 하니까 그저 부인으로 살았고 다른 아줌마들도 그렇게 살았다. 그렇지만 모두다 '김주익 열사 죽음은 내탓이다'라고 말한다.

김주익열사는 참 말이 없는 사람이었는데...가슴아프고 LNG 때 회사 동기였고 파업도 함께 했었다. 12년동안 포기하고 싶었는데... '속지말라'고 메시지를 준 것 같다. 이제는 지금 모습으로 이렇게 살아야 겠다는 확신이 든다. 비정규직에 비하면 현장의 힘이 아직 남아 있는 우리는 그래도 희망이 있어 괜찮다. 우리는 적이 누군지 안다."


<산자와 죽은자가 만나다>

노동자들의 절망, 노동자들이 가장 두려운 것은 분열이었다. 자본가들은 침묵하고 굴속에 집어넣고 진이 다 빠지도록 부려먹어도 소리 없는 노동자들을 보며 벌레처럼 여길 것이다,고 말한다. 더 이상 갈 곳이 없어 열사는 85호기 크레인에 올랐다. 영도자리 짠내 나는 바람이 밀려온다. 죽음의 공장, 자본이 인간의 얼굴을 한 그곳에 열사는 85호기 크레인으로 두눈 부릅뜨고 있었다.

어쩌면 내려오지 못할 지도 모른다. 열사의 시신이 있는 크레인 위와 투쟁광장사이 노동조합과 대책위 소속 4명이 농성을 벌이며 함께 구호를 외치고 있다. 멀리 흐느끼는 노동자들 과 함께. 산자와 죽은자가 그렇게 만나고 있었다.

크레인 85호기는 말한다. 속지 말라고. 살아서, 승리해서 이곳 열사 앞에 다시 오라고.

<부활>
분신한 세원테크 이해남 동지의 당시 옷 속에는 세 개의 서류가 있었단다. 신용불량통지서, 해고통지서, 영장.

우리는 지금 전태일인가?


-서미숙기자 maru@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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