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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노동/경제 늙은 화물노동자 이야기

임성희( 1) 2003.09.15 15:45

※ 편집자 주. 화물연대 파업투쟁이 끝나기 전 작성된 글입니다.

8월이 끝나갈 즈음 한 아저씨가 노동자의 집에 상담을 오셨습니다.

내용인즉 물건을 싣기 위해 회사에 들어갔다가 크레인 기사의 잘못으로 물건과 함께 들어올려졌다가 같이 바닥으로 떨어진 것입니다. 허리를 다쳐서 치료비를 받을수 있을까 했더니 설상가상 차에 실었던 물건이 주차되어있던 차에 떨어져 차 유리가 파손되었다며 차 수리비를 내놓으라고 한다면서 한숨을 쉬십니다.

"자영업자이므로 산재보험에 임의가입하지 않았다면 산재는 되지 않습니다. 치료비를 받으려면 그 회사에 민사소송을 해야합니다. 물론 차량수리비는 아저씨가 배상해주어야 합니다. 차에 실은 물건의 관리는 차주의 몫이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대답하고 있는 제 자신이 참 답답하고 한심해집니다. 이럴땐 제가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 됩니다. 그 아저씨, 상담이 끝나고도 일어서지 않고 자신이 처해있는 상황에 대해 한참을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덧붙입니다.

“현대자동차는 그렇게 임금을 많이 받으면서 왜 맨날 파업을 하는지 모르겠네요” 그순간 제가 또 발끈합니다. ‘아니 똑같은 노동자인데, 자신의 이야기만 하면 되지, 역시 언론의 힘이 세긴 세구만’

“선생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일한지 10년이 넘는 사람도 쉬는 날 없이 연장, 특근해야 연봉 삼천만원이 조금 넘을 거에요. 언론에서 부풀리기를 한거구요. 또 실제로 그렇게 받으면 안되는 이유가 있어요? 그렇게 받을수 있으면 좋은거잖아요. 회사에서 그만큼의 지불능력이 되니까 그렇게 지급하는 것이고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은 그만큼 일을 한거구요. 또 현대자동차 지금의 노동조건이 그냥 만들어 진건가요. 87년 이후 15년의 투쟁속에서 선배 노동자들이 지금까지 해고되고 구속되고 투쟁한 결과에요. 화물연대 투쟁이 이제 시작이잖아요. 화물연대도 열심히 투쟁하면 좋아질거에요. 물론 화물연대의 투쟁에 많은 노동자들이 적극 연대해야 되겠지요. 그렇게 할거에요.”


절망의 끝에 선 늙은 노동자

그렇게 한시간정도 이야기를 하고 자신은 여섯식구의 가장이라면서 자신의 처지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뒤돌아서 가십니다. 저는 그 아저씨의 뒷모습을 보면서 ‘아 사람이 저럴때 자살을 할 수도 있겠구나, 저 상황에서 정말 앞이 보이지 않으면 절망의 끝에서 그냥 삶을 놓아버릴수도 있겠구나…’ 그렇게 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라면서 한참을 멍하니 앉아있었습니다.

화물연대 노동자들의 평균 부채는 3000만원이라고 합니다. 장거리를 다녀야 하니까 하루 12시간이 넘는 노동은 기본이고, 그렇게 운전하고 짐나르고 운임이라도 제대로 받으면 다행이고, 때로는 운임이 원가에도 못미칠때도 많고, 심하면 못받기도 하구요. 거기에 반말은 예사고 손가락으로 까딱까딱 하면서 부르고 대답하고...

생존권이 뿌리째 흔들리는 상황에서 그리고 정말 나도 인간이라고 얘기하고 싶어서 화물노동자들이 뭉치기 시작했고 올해 5월 투쟁을 시작해서 지금까지 왔습니다.

화물연대 노동자들의 현실을 알아보면 경제위기 상황에서 운송업체들은 하나도 손해보지 않고 그 모든 위기를 노동자들에게 책임지우기 위해 기업구조조정에서 경영합리화라는 명목으로 지입제가 도입되었습니다.

원래 회사에 소속된 정규직노동자였으나 IMF구조조정을 전후해 해고로 인해 살길이 막막해진 노동자들은 열심히 일하면 적절한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회사의 말만 믿고 퇴직금을 담보로 혹은 빚을 지고 불하차량을 인수하거나 차량을 지입하는 방식으로 특수고용이라는 형태로 편입되었습니다.


해고위협에 유가등락과 위험부담 떠맡고

사측으로서는 차량운영에 따른 각종 세금, 공과금등 비용과 운송비용을 좌우하는 유가의 등락, 위험 부담을 노동자들에게 떠넘김에 따라 막대한 비용을 줄일 수 있고, 당시 사업장별로 건설되고 있던 노동조합을 무력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도급 전환은 일거양득의 효과를 보았습니다. 사측은 도급 전환시 수입증대라는 당근과 도급 거부시 해고 위협이라는 채찍을 통해, 일방적으로 불하 와 도급을 확대시켜 나갔습니다.

또한, 운송료는 지입제가 갖는 특유의 경쟁시스템에 의해 실제 운송비에 비해 턱없이 낮았습니다. 이로써 득을 본 것은 노동자들을 고용할 비용과 운송비용을 감축할 수 있었던 운송회사들과 수출입 업체들입니다. 노동자들은 차량할부대금과 통행료, 차량유지비, 유가상승등에 의해 회사에 고용되었을 때 보다 훨씬 못한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1997년에는 지입제를 합법화하면서 그나마 인정되던 노동자성도 부정되어 4대 보험의 혜택은커녕 일체의 노동권도 보장받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화물연대 파업투쟁의 핵심요구사항이었던 지입제 철폐와 운송비용 합리화, 그리고 노동자성 인정은 정부로서 쉽게 내어줄 수 없는 지점입니다. 지입제 철폐와 노동자성 인정의 경우 경영합리화와 기업의 직접적인 생산비 감축이라는 측면에서 시행되었기 때문에 그것을 되돌리는 것은 지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근본을 뒤흔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정부는 화물노동자들의 정당한 요구에 대해 어떠한 대답도 없이 강경대응만을 주문처럼 읊조리고 있습니다.


화물노동자들의 '인간이고 싶다는 한(恨)'

그러나 더 이상 어찌 해볼 수 없는 벼랑 끝에 서있는 화물연대 노동자들의 투쟁은 어떤 이유로도 막을 수 없는 절실하고도 당연한 다른 무엇보다 우선되는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몸부림이요. 생존권투쟁입니다. 이 생존권투쟁에 돌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투쟁하지 않고도 먹고 살수 있는 사람이거나 양심이 없는 사람이겠지요.

화물연대의 투쟁에서 또 느끼는 거지만 노동자들의 투쟁의 시작에는 언제나 나도 존중받는 인간이고 싶다는 한(恨)이 서려있습니다. 그 한을 풀을 날이 오겠지요. 오고야 말겠지요.



- 임성희 / 익산 노동자의 집 소장
- 이 글은 노동자의 집 소식지 <노동이 즐거운 세상>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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