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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일반노조 일을 하고 비슷한 장소에서 두 번 들은 말이 있다. 바로 '이런 말 하기는 그렇지만...'으로 시작하는 어떤 부류 사람들의 속마음이다.

굉장히 기분 나쁘게 들은 이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물론 이말 자체가 기분 나쁜 것이 아니라 이렇게 시작해서 떨어 놓는 속마음이 기분 나쁘다.

일단 사건 개요부터 설명하자면 이렇다.

O병원 청소를 하는 노동자들이 일반노조 조합원이다. 이들은 고령, 여성, 저학력, 비정규직으로 한국에서 가장 멸시 당하고 사는 사람들이다. 병원에서 가장 더러운 일을 하면서 청결을 유지하는 이들은 누구보다도 없어서는 안될 사람들이다. 노조에 가입하고 회사 사장과 면담을 한다. 사장과 그 일당들은 그 재단에서 정년 퇴직을 하고 용역회사를 차려 수익금을 재단으로 넣고 월급을 받는다.

"세상에 그렇게 힘든 일을 하고 최저임금도 안 되는 임금에 시간외 수당도 받지 못한 것이 말이냐 됩니까?"라고 따져 물으면 70이 다 되가는 사장이 말한다.

"나도 힘든 거 알지 그래도 우리가 얼마나 생각해주는데 이번에 그래서 이렇게 임금 올려주려 하지 않는가?"하며 알랑방귀를 뀐다.

물론 임금 인상폭은 최저임금을 약간 위반하지 않는 폭에서 결정된다. 마치 노동자들을 끔찍이 사랑하는 것처럼 교섭 내내 떠들다가 마지막 결론은 이렇다.

"이런 말 하기는 그렇지만 저 나이에 어디 가서 뭘 하겠는가? 이것도 잘 주는 거야!"

본심이 들어 나는 순간이다. 저 나이에 그것도 여자가 배운 것도 없이 용역직으로 써주는 것만으로 감지덕지지라는 본심 말이다.

또한 번은 이런 경우다. 같은 병원 세탁실 노동자도 일반노조 조합원이다. 얼마 전 임단협을 요구하자마자 병원에서 용역회사에게 계약 해지 통보를 했고 조합원들에게 근로계약 종료 예고 장을 보내왔다. 그래서 우리는 계약 해지 통보를 한 병원 담당자를 만나기 위해 관리팀을 찾았다.

"세탁실 노동자는 병원 식구가 아닙니다"

"우리 세탁실 노동자들의 고용문제로 면담을 하러 왔습니다."고 하자. 담당관이 "왜 우리와 이야기를 하느냐 용역회사와 이야기해라!"고 하며 어리둥절해 한다.

"그래도 10여 년 동안 온갖 세탁물을 다 빨아온 병원 식구인데 법적으로는 남남이어도 면담으로 고용 문제에 대해서 문의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라고 대꾸하자 담당관 이 짤라 말한다. "세탁실 식구는 병원식구가 아닙니다"

이것저것 실갱이 하다가 다시 결론은 이렇다. "이런 말 하기는 그렇지만 어디서 최저임금 다 받고 시간외 수당 다 받아 가면 일합니까? 노조나 있으니까 그렇지! 용역 단가 인상은 어렵습니다. 어디가도 마찬가지입니다."

노조가 있어서 최저임금을 받을 수 있고 시간외 수당을 받을 수 있다니 이게 무슨 말인가? 참 기가 막힐 노릇이다. 마찬가지 본심을 드러내는 말이다. 그 관리과 직원도 병원노조 조합원일지 모른다. 용역비를 깍는 노동력의 댓가로 임금을 받는 노동자 말이다.

같은 노동자에게 듣는 노동비하의 말

비정규직 일을 하다보면 기가 막힌 말들을 많이 듣지만 사장도 아니고 정치인도 아닌 같은 노동자에게 듣는 노동 비하적인 말은 그 어떤 말보다 가슴에 사무친다.

이 두 사람에게 나는 이렇게 이야기 해주고 싶었다. "이런 말 하기는 그렇지만 당신의 입을 쫙 찢어버리고 싶네요!" 그러나 나는 나의 본심을 드러내지 않았다. 아무 일 없듯이 "또 뵙죠!"하고 나온다. 주먹질로 될 일이면 벌써 주먹을 날렸겠지만 그래서 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런 사회 분위기는 노동을 하는 우리 조합원 스스로가 무능력한 인간으로 취급하게 한다. 우리 조합원 스스로가 이러한 편견과 차별로부터 떨쳐 일어날 때 비로소 내가 이야기하지 않아도 그렇게 말한 사람들이 자신의 말을 후회하게 될 것이기에 그렇다. 반드시 온다. 후회할 날이...!


* 이 글은 노동자의 집 소식지 [노동이 아름다운 세상]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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