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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경제 엄마가 새로 취직한 직장

윤철수( 1) 2003.05.12 13:16 추천:13

따르르릉...
"여보세요?"
"엄마 언제와? 응?"
"새로 취직한 곳이 늦게 일이 끝나거든. 좀 더 있다가 갈께."
"그럼, 올때 맛있는 거 사와!"
"알았어..."

군산 대성산업에서 일하다 부당해고 돼 복직투쟁을 하느라 노동자의 집에 출근하고 있는 한 아주머니와 초등학교 2학년짜리 아들의 통화내용이다.

전화를 끊은 아주머니는 내일 출근선전전에 나누어 줄 유인물을 만들고 있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타자를 잘 치니까 나중에 자서전 같은거 낼 사람에게 타자 쳐주고 돈받아도 되겠네"라며 말을 건넨다.

이 말에 번뜩 생각이 스친 내가 "뭐하러 먼데서 찾아요! 아주머니 자서전부터 당장 써줄께요"라며 의자를 끌어다가 아주머니를 옆에 앉히고 아주머니의 파란만장한 1년간의 이야기를 들었다.


아주머니의 파란만장했던 비정규직 생활 1년

아주머니는 작년 5월 대성산업(구 유진산업)에 비정규직으로 입사했다. 대성산업은 대우자동차 협력업체 주식회사 한산의 생산라인 도급업체이다. 그런데 이 도급업체는 최저임금 지급에 연차수당, 휴게시간, 산재 및 고용보험, 휴업급여는 일체 없는 노동의 사각지대였다.

지난 2월 아주머니는 임금지급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서 노동부를 찾아가 문의해보기도 하고 내가 일하고 있는 노동자의집에 찾아오기도 했다. 노동부의 상담기록을 보고 아주머니의 행보를 눈치 챈 사장은 아주머니를 몇일간 매일 불러다 "왜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냐"며 추궁해댔다고 한다.

이런 일이 있고 노동자의 집에서는 노동부 근로감독관에게 상담기록 등 노동자 개인정보 관리가 허술하게 되고 있는 점을 항의하며, 최저임금 시정과 휴업급여 시정명령을 받아냈다.


대성산업의 위장폐업과 찍은(!) 노동자 부당해고

그런데 3월 중순, 사장은 위법행위를 감추기 위해 위장폐업을 했고 들러리 사장을 내세워 구 유진산업에서 대성산업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그리곤 노동자들에게 노동조합을 탈퇴하지 않으려면 사직서에 도장을 찍으라고 강요하더니 회사사정이 어려워졌고 비정규직의 1년 계약기간이 만료되었다며 아주머니를 해고 했다.

지난 9일 여느때와 다름없이 출근승합차를 타려고 기다리던 아주머니는 "회사에서 태우지 말라고 했다"며 승차거부를 당했다. "무슨 소리냐"며 다른 차를 타고 가려고 했지만 출근용 자동차 한대는 아예 아주머니는 차로 밀어붙이고 가버렸다고 한다.

여기까지 받아적은 아주머니의 이야기. 뭔가 이상하다. 대성산업이 새로 개업한 것은 고작 2개월 전. 비정규직의 1년짜리 계약기간도 2개월밖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 또 회사 사정이 어려워져서 해고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는데 대성산업은 광고지 구인란에 사원모집광고를 버젓이 냈다.


"같은 처지 언니, 동생 나두고 그냥 나갈 수 없어"

아주머니는 "회사의 노무행위에 제동을 걸거나 노동조합 활동하는 사람은 용납할 수 없다는게 대성산업 사장의 입장"이라고 말한다. 해고 싸움은 10년이고 20년이고 기약이 없는데 각오는 돼있냐고 물었더니 대답한다. "최저임금에다가 온갖 위법행위를 저렇게 버젓이 벌이고 있는데 아직도 회사에 있는 같은 처지의 언니, 동생들을 어떻게 버리고 그냥 모른척 나갈 수 있겠어?"

수박이 한덩이에 3천원....

모든 걸 각오하고 싸우려고 오늘도 새로운 직장(!)에 출근한 아주머니는 아들의 전화를 받고 난 후, 사무실 옆 야채, 과일트럭에서 나오는 소리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다.

아들에게 가져다 줄 간식거리가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값이 쌌으면 하는 눈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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