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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는 새 내각에 여성 장관을 전례 없이 무려 4명이나 등용하였고, 여러 국정영역에도 이전에 비해 많은 여성을 등용하였다. 또한 노무현 정부는 대선 시기 선거 공약으로 여성계의 오랜 숙원인 호주제 폐지와 "아이 맘 놓고 낳으십시오. 노무현이 키워드리겠습니다"라며 보육문제 해결에 적극적인 의지를 보인바 있다.

이런 일련의 모습 때문에 주류 여성단체들로부터도 노무현 정부는 이전의 어떤 정부보다 여성의 입장에서 성 평등한 정책을 펼 것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물론 이렇게만 된다면 좋을 일이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가 김대중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이어받고 있다는 점을 상기할 때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신자유주의 정책 계승, 노무현 정부

김대중 정부는 IMF 이후 경제위기를 극복한다는 명분 아래 신자유주의 정책을 폭력적으로 진행해왔다. 신자유주의란 자본축적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지배계급이 금융의 세계화와 노동의 불안정화(유연화)를 추진하는 전략을 말한다.

한국사회에서 '노동의 유연화'의 구체적인 현상을 살펴보자면


첫째, IMF 초기 남성이 생계부양자라는 이데올로기의 동원 속에서 여성들이 노동시장에서 대대적으로 퇴출되었다가 열악한 생계를 보충하기 위하여 노동시장으로 재진입하면서 오히려 여성 경제활동인구가 증가하고 있는 점이다.

둘째, 대다수의 여성이 임시직, 일용직, 파트타임직 혹은 특수고용직과 같이 노동법 적용이 안되는 불안정한 노동층으로 진입하여 저임금의 열악한 조건에서 노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셋째, 대대적인 구조조정의 영향으로 감소한 가계의 수입을 보충하기 위하여 기혼여성들의 취업이 증가하고 있다.

넷째, 공공서비스의 축소와 상품화가 가족의 재생산에 일차적 책임이 부여된 여성에게 절약과 무임금의 보살핌 노동을 강요하고 있다.

다섯째, 여성의 고용창출이 주로 경제의 금융화와 연계된 금융, 서비스, 유통 산업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것은 남성이 생계부양자라는 이데올로기 하에서도 여성의 취업률이 증가하는 이유이다. 이런 현상을 일컬어 '노동의 여성화, 빈곤의 여성화'라고 한다. 즉 신자유주의 시대 '노동의 유연화 전략'의 타겟이 바로 '여성'이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김대중 정부가 여성정책의 기조로 "21세기 여성인력의 양성과 활용을 생산성 향상과 경쟁력 확보의 핵심적 요소"라고 강조하고, 뒤이어 노무현 정부가 "여성의 경제활동이 국가경쟁력의 주요전략"이라고 당당히 외쳐대는 배경에는 여성의 권리 신장이라는 순수한 목표를 압도하고 활용하는 자본의 위기 극복 전략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노무현 정부가 여성정책의 핵심으로 제출하고 있는 '차별의 시정과 보육문제의 해결을 통한 여성의 참여 확대'는 그 자체로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여성에겐 절실한 요구이다.

왜냐하면 이전부터 여성이 생계부양자가 아니라는 성역할분업 이데올로기로 인해 여성들은 가족의 재생산에 필요한 가사와 양육 등의 노동을 떠맡았고, 노동시장에 진입하더라도 저임금의 불안정 노동 층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노동시장의 성차별을 제거하고, 여성의 경제활동에 크게 장애가 되는 보육의 문제를 국가 차원에서 해결하겠다는 것은 아주 반가운 소식이다.

자본의 이해관계에 따른 한계선

그러나 새 정부의 여성정책이 진일보한 측면이 있다고 해서 간과해선 안 될 엄혹한 현실이 우리 앞에 있다. 여성인력의 적극적 활용이라는 목표가 자본의 요구에 조응하는 것이라면 '차별의 시정과 보육문제의 해결'의 과제는 성 평등보다는 자본의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진행될 것이기 때문이다.

즉 그것이 불평등한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여성의 지위를 상승시키는 역할을 한다기보다 자본의 이해와 맞닿는 제한된 범위에서 허용되는 조치의 성격이 강하다는 것이다. 이 지점이 '참여정부'의 한계를 예견할 수 있는 대목이다. 따라서 그 한계를 인식하지 못한 채 정부의 제도적 보호 조치를 긍정적으로 수용하기만 한다면 또 다른 정세 하에서 언제든지 다시 박탈당할 수 있다.

이 점은 현재 한국의 주류 여성운동진영이 보여주는 모습 속에서 더욱 우려되는 부분이다. 노동의 유연화 전략으로 여성의 지위를 하락시켜 전반적인 민중의 삶을 하향평준화하고 구조조정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여성에게 전가시키려는 노무현 정부에 대해 비판과 저항을 조직해야 할 운동진영이 오히려 노무현 정부의 '참여'라는 민중 기만적인 형식상, 절차상의민주주의를 조작하는 경향 속에서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힘을 실어주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공조는 여성운동에서 저항의 흐름을 조직하고, 변혁의 주체를 결집하는 운동성이 탈각되는 과정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그렇기에 '참여'는 경계해야 할 점이다. 오히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자본에 의해 움직이는 정부에 기대를 걸기보다 성차별적 구조가 재생산되는 구조적 메커니즘에 대한 분석 속에서 이를 성 평등하게 재구성할 전략을 추구하는 것이다.


- 이인숙 / 자유기고가
- 노동자의집 소식지 [노동이 즐거운 세상] 4월호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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