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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경제 "죽어서 더 서러운 비정규직"

최인화( 1) 2003.03.05 15:36 추천:3

수많은 인명을 앗아간 2월 18일 대구 지하철 화재참사. 운명을 달리한 이들 중에는 3명의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이 있었다.

비정규직으로 용역업체에 고용되어 대구 지하철 역사를 청소하던 고 김순자, 김정숙, 정영선 씨는 당시 화재인 줄도 모르고 연기를 피해 통신 기계실로 들어갔다가 유독가스에 질식해 숨졌다.

어처구니 없는 사고로 목숨을 잃었지만 대구 시와 지하철 공사, 이들을 고용했던 용역업체는 피해 보상에 대해 책임회피는 물론 인간적인 처우마저 외면해 유가족들의 분노를 샀다.

"그 사람들은 우리 직원이 아니다"

일반 시민 희생자들에 대한 대구시 차원의 보상과 달리 지하철 공사에서 일하던 직원들에게는 회사 차원에서 보상이 나오게 되지만, 지하철 공사 측에서는 "정직원이 아니"라며 용역업체에 책임을 돌렸다. 용역업체 역시 지하철 공사 측이 노무관리, 임금지급 등 모든 것이 사실상 공사 측의 책임이라고 발뺌했다.

전국여성노조연맹의 한 관계자는 공사 측의 이런 태도에 대해 "보상금을 정직원 수준으로 지급하려면, 겉보기엔 용역업체에서 파견된 노동자들처럼 보이지만 업무 지시, 노무관리, 임금 등 실 내용은 공사 측의 직고용과 다름없는 불법적인 도급계약을 맺고 있는 것이 걸리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유가족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더욱 분노하게 만든 것은 공사 측의 숨진 청소용역 노동자에 대한 처우였다.

공사 차원에서 사망한 직원들을 위한 분향소를 차렸지만 숨진 청소용역 노동자들은 포함돼 있지 않았다. 왜 함께 분향소를 설치하지 않았느냐는 항변에 공사측의 답변은 "그 사람들은 우리 직원이 아닌데 왜 우리가 분향소를 차리느냐"는 것이었다.

숨져간 동료의 흔적을 치워야 했던 청소용역 아주머니들의 설움

또 공사측은 화재 다음날 현장조사도 이루어지지 않고 유독가스도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용역업체에 화재현장 청소를 지시했다. 용역업체와 노조가 유독가스가 남아있기 때문에 안된다고 하자 일방적으로 다른 역사의 청소용역 노동자들을 데려와 화재더미를 치우도록 했다.

며칠전까지 함께 일하던 동료가 숨져간 현장을 치우고 온 아주머니들은 유독가스를 마시고 얼굴이 퉁퉁 부은 채 "너무 억울하고 슬프다"며 눈물을 흘렸다.

이어 조촐하게 치러진 여성 노동자 세명의 장례식장에는 유가족과 청소용역노조 조합원들만이 참석했을 뿐, 지하철 공사와 용역업체, 대구시 관계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오히려 실종자 확인과 책임자 처벌 등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대구지역 대책위와 유가족들이 전동차 운행을 중단시키는 몸싸움을 벌였지만 공사측은 "운행중단이 되면 청소용역 등 도급계약으로 일해온 노동자들이 일을 할 수 없고 임금도 줄 수 없다"는 입장만을 고수했다.

화재참사 진상규명과 희생 노동자 추모를 위해 현장에서 뛰고 있는 대구지하철공사 청소용역노조의 차은남 간사는 "우리가 문제삼는 것은 피해 보상금의 액수가 아니라 공사 측이 최소한의 인간적인 도리라도 지켜주길 바라는 것"이라며, "죽어서까지도 인간적인 대접을 받지 못한다면 개죽음이랑 뭐가 다른가"라며 분노를 토했다.

전국여성노조연맹, 민주노총 대구지역 본부 등으로 구성된 대책위는 현재 공사 측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처우의 부당성을 알리고 추모집회를 갖는 등 투쟁을 계획하고 있는 중이다.

살아서 몸이 바스라지도록 일하고도 최저임금도 받지 못했는데 죽어서도 정규직과 차별받아야 하는 청소용역 아주머니들의 죽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죽음은 더 서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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