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뉴스

<편집자 주>필자인 이재천 씨는 제5대ㆍ6대 전주시의회 의원으로 활동했으며, ‘의정활동에서 시민운동까지’, ‘지방의회 여성의원의 삶과 도전’, ‘의회의 리비히 법칙’ 등 의원활동의 경험과 생각을 담은 책을 펼쳐낸 바 있다.

필자는 지방자치제도와 관련된 4대 제도 지방의원 유급제, 비례대표제, 중선거구제, 기초의원 공천제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정치관계법 글에 이어 두번째 글을 보내왔다.


나는 조금씩 세상을 알아가면서 우리 세상에 기적이 참 많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기적은 다른 어떤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전혀 원치 않는 일이 일어나고 또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우리의 소원은 통일’인 것에 이의를 단 사람은 한 명도 보지 못했는데도 통일이 안 되고,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라는 데 동감하지 않는 학부모와 교사와 학생은 결코 없음에도, 아이들은 자신들이 처한 교육 상황을 지옥이라 부른다. 국민 누구도 원치 않는 정치가 하늘 아래 국회의사당 안에서 이루어지며, 국민을 국회로 보내주는 권력을 가진 유권자가 정치 무력증을 가지게 되는 것, 이것이 바로 ‘기적’이 아니고 무엇인가 했다.

왜 이렇게 조용한가?

나는 몇 일 전, 정치관계법 개악을 보고서 ‘국민 누구 한 사람 원치 않은 일’이 일어났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더 놀랐던 것은 정치관계법이 의결되고 난 이후 언론에서 이에 대한 비판 기사나 칼럼을 거의 발견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시민단체 역시 너무 조용한 것이 묘한 허탈감마저 들게 하였다.

정치개혁특별위원회의 입안 과정에서 한 시민단체가 유급제와 중선거구제에 대한 비판적 의사를 표명했고, 여성계에서 여성의원 확보를 위해 ‘남녀동반 선출제’를 촉구했던 것이 전부로, 의회 의결 이후에 정치관계법에 대한 저항은 찾아볼 수 없었다. 당초 개정 논의에 끼이지도 않았고, 심지어 마지막까지 생각지도 못했던 기초의원 공천제까지 포함되어 나머지 제도들의 순기능을 다 차단시켜버렸는데도 말이다.

언론은 ‘연정 논의’라는 정치적 이슈가 너무 커 보인 나머지 지방자치 관련법들은 정말 ‘지방적’인 일로만 보았을까? 아니면, 유급제야 뭐야 기존의 논의를 늘 무시하고 원상태로 돌려 재논의 하고 싶어만 하는 민노당까지 나름대로 이익을 챙긴 터에 뒷말이 나오지 않으니 차라리 함께 조용히 넘어가 주자라고 마음먹은 것일까? “언론 그 자체가 충분한 법률, 아니 충분 이상의 법률이다. 실제로 공동사회는 서로 손을 잡고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합의에 도달했다”라고 말한 소로우의 말이 다시 실감날 지경이다.

그리고 시민단체들은, ‘국회의원의 오만과 이기성을 당해낼 수가 없구나, 의회에서 통과시킨 것을 장차 어찌해볼 수가 없지’ 하며 체념하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무엇보다 진정 국민들의 의식 속에서는 중앙 정치가 더 중요하고 지방자치는 부차적인 것이라는 생각이 팽배한 것일까? 아니면, ‘우리의 수준이 정치인의 수준이니 그들을 더 비판해서 무엇 하나. 정치인이 무슨 짓을 하던 간에 우리나라는 그래도 유지되어 온 것이 아닌가’ 하는 낙관이 살아 있어서인가?

무엇보다 정치관계법이 통과된 이후, 행자부장관을 비롯하여 자치단체의 단체장들, 심지어 공직자 협의회 같은 단체들까지 공천제를 비판하며 나서는데 정작 당사자인 기초의회 의원들은 단 한마디도 없다. 그 직전까지 공천제를 강력하게 비판했던 사람들이 말이다. 국회의원과 지방의원의 주종관계를 증명이나 하듯 그것에 반대하며 나서는 의원 한 명 찾아보기 힘들다. 바로 국회의원들의 계산이 그대로 맞아 떨어지고 있다는 산 증거들이다. 정치권 안에서 누구보다 빨리 머리를 숙이고 머리를 드는 동네 정치인의 속성을 잘 드러내었다. 이것만 보아도 기초의회의 공천제는 결코 이루어져서는 안 되는 것임에는 틀림없다.

정치관계법 저지 운동, 아직 늦지 않았다

의회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권력은 입법권이다. 그리고 국민 역시 국민의 권익은 법과 제도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깨달아 법제정에 대한 관심을 높여가고 있다. 시민단체나 여성단체, 그리고 이익단체들이 청원을 하고, 입안 과정에 개입하고, 또 법안 승인을 저지하는 등의 집단행동을 하는 것은 바로 가장 적극적인 정치 참여의 한 형태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모든 행동들은 의회의 의결 이전까지이며 의결이 이루어진 이후 그들은 모든 것을 체념하며 혹은 잊기도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국회의원들이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절차이기도 하다. 국회의원 자신이 여러 형태로 비판을 당하고 곤욕은 치른다 하더라도 그것은 일시적인 일에 불과하며 장기적으로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확신에 그들은 국민의 어떤 반대에도 굴하지 않는 것이다.

국민이 다시 보아야 할 점은 바로 이것이다. 국민은 사실, 제도나 정책에 대해 문외한일 수밖에 없다. 정치에 있어 전문가들은 정치인이며 그들을 당해낼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국회라는 아성 속에서 그 안의 구성원간의 이해문제만 해결되면 이루어지지 않을 일이 없는 것이다. 그러니 국민이 파악해야 할 것은 그들의 반국민적 행태와 속성인 것이고 거기에 국민이 얼마나 민감하며 대응력을 가지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진정 우리가 지방분권을 이상시하고, 국회의 오류로 인해 지방자치제도가 무참히 표류되는 것을 방치하고 싶지 않다면, 지금 이 시점에서는 지방자치를 무력화시키는 정치관계법을 다시 보아야 한다. 정치관계법은 아직 발효되지 않았다. 국회에서 통과된 정치관계법이 아직 대통령에 의해 공포되지 않은 것이다. 국회가 의결한 후 정부에 이송한 정치관계법률개정안은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이 공포한 후 비로소 효력을 발생하게 되어 있다. 아직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는 셈이다. 따라서 정치관계법 저지 운동은 아직 늦지 않았다.

우리가 결코 원치 않는 일을 대통령으로 하여금 집행케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리고 국민들이 그렇게 원치 않은 법이 마구 시행되는 나라라면, “국가가 가야 할 정신병원은 어디에 있는가?” 라고 말한 소로우를 다시 인용하지 않을 수가 없다.


관련기사

· <기고>개정된 정치관계법을 보고



* 이 기고글은 오마이뉴스 20일자 에도 게재됐습니다. [주장] 개악된 정치관계법, 되돌릴 시간 남았다
위로